평화통일 칼럼
담대한 구상과
통일 독트린의 재구성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 ‘8·15 통일 독트린’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 개선을 대북정책의 의제로 설정하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연합이 규정하는 ‘불량 국가’가 대규모 살상 무기 개발과 반인도주의적 인권유린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규범을 위배한 핵심적 요소로 파악한다는 사실에 조응한다. 인권 가치의 확산을 대북정책의 중요한 정책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은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목도한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 및 냉전 체제 극복과 관련한 안보와 인권의 연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주장한 국경 불가침 원칙을 유럽 자유주의 진영이 수용하는 대신 자유주의 진영이 주장한 인권 존중 원칙을 공산주의 진영이 수용하는 내용의 1975년 ‘헬싱키 최종협약’에서 출발해 이후 14년 동안 점진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을 지칭한다. 헬싱키 최종협약이 내장한 인권 존중 국제 규범은 동구권 개별 국가 내의 인권 단체들의 국제 연대라는 ‘네트워크 공명’ 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인권의 가치가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자유주의 진영의 정책적 압력 수단으로 기능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냉전 체제 붕괴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대북정책에서 비핵화와 인권의 연계를 통해 단기적인 차원에서 헬싱키 효과와 유사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의 출발점이 동서 데탕트라는 국제적 환경과 최소한의 시민사회 공간이 존재했던 동구 공산국가들의 국내적 조건이 맞물려 있었고, 공산주의 진영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개혁과 개방을 기치로 내 건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집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현 시점의 남북관계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 혹은 2016년 한국 국회가 채택한 ‘북한인권법’이 기대했던 헬싱키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을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인권 연계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진지하게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는 인권 가치의 전파를 촉발할 최소 수준의 시민사회 공간이 부재하다는 사실과 북한 정권이 헬싱키 프로세스의 안보·인권 연계 효과를 학습해 비핵화·인권 연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발간 이후 북한이 그동안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 검토’에 협조해 오지 않았던 태도를 바꿔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 대응을 시작한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장기간에 걸쳐 국제사회에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의 심각성을 반복적으로 환기시켰고, 그 점진적 축적 효과로 인권 문제에 북한의 관여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윤석열 정부의 안보·인권 연계 전략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정부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내장한 인권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대북정책에 통합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정책 지지 수준을 높이는 전략을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인권 연계 전략을 윤석열 정부의 8·15 독트린이 설정한 자유, 민주, 통일의 장기적 목적을 달성하는 대북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 정
북한대학원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