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길에서 만나는 통일⑤
서해 서해랑길-김제·군산
전설 같은 역사 깃든 풍요의 땅
황금빛 들녘 위로 내려앉은 바다
어느 장소든지 간에 동틀 때와 노을 질 때 하늘빛이 다르고, 맑은 날과 구름 낀 날이 다르고, 바람 없는 날과 비바람 부는 날이 다르다. 김제·군산평야로 향하는 길, 하늘은 목젖을 울리며 웃는 듯이 맑고 개운하다.
김제평야에 들어서니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만큼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죽산면에서 광활면으로 이어지는 평야 지대는 ‘그 끝을 알 수 없다’ 하여 만경 들, 만경평야라 불렸다. 곡식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만경평야는 작가 조정래의 글처럼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판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헛제자리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논에서 태어나 논에서 잠드는 농부들에게 김제의 너른 들녘은 삶의 희망이며 풍요의 땅이었다. 그런가 하면 절망이자 약탈의 땅이기도 했다. 김제평야와 군산평야 사이를 가르는 만경강 위에 놓인 ‘새창이다리’가 이를 증언한다.
1928년에 공사를 시작해 1933년 완공된 이 콘크리트 다리는 본래 만경대교라 불렸으나 1989년에 바로 옆에 새로운 만경대교가 생기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다리를 통해 일제는 김제평야에서 난 양질의 쌀을 군산항으로 운반해 일본 본토와 만주 등지로 실어 보냈다. 말하자면 우리 쌀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강탈하기 위해 만든 다리인 셈이다.
새창이다리는 6·25전쟁 때는 호남 지역을 침략하러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는 방어선이 됐다. 북한군은 전주를 목표로 남하하기 위해 만경강 유역을 완전히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 국군 주력부대는 정부를 지키기 위해 낙동강 방면으로 내려가고 있어서, 자연스레 호남 지역은 몇 안 되는 경찰 병력 위주로 방어해야 하는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제 몸이 겨운 듯 고개 숙인 벼이삭들 사이로 콤바인이 지나는 김제평야 풍경(왼쪽), 9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새창이다리(오른쪽).
1950년 7월 17일 충남 서천의 장항 전투를 시작으로 북한군 대병력이 밀물처럼 몰려왔고, 7월 19일에 군산을 점령한 후 이튿날에는 만경강 방어선에 다다랐다. 우리의 경찰과 해병대원으로 구성된 연합부대 800여 명은 사투를 벌였지만 북한군 두 개 사단의 병력을 저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새창이다리를 사이에 두고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양쪽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난간이 군데군데 파이고 바닥은 철근 속살을 드러내며 그 위에 많은 젊은이의 선혈이 뿌려졌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단편소설 ‘기억 속의 들꽃’에도 이 다리는 ‘끊어진 철근 다리’, ‘남자들도 함부로 못 가는 다리’로 묘사돼 있다. 지금 새창이다리를 찾으면 풍화돼 떨어져 나간 난간 파편들, 검붉게 산화돼 부스러진 철제 조각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근대사 위에 현대사 덧씌워진 군산
만경강을 건너면 다시 넓은 군산평야가 펼쳐진다. 김제평야와 다른 점은 100m 남짓 야트막한 산들이 듬성듬성 자리해 있다는 것이다. 서해랑길 53~54코스는 만경강변을 따라 가다가 군산평야를 가로질러 군산호수와 은파호수, 월명호수로 이어진다. 너른 들판과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골목길을 지나고 호수 둘레길을 걸어보는 호젓하고 여유로운 길이다. 생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군산호수도 걷기 좋지만, 해 질 녘 물결이 은빛으로 반짝인다고 하여 불리게 된 은파호수는 꽃잎 모양의 호수 형태, 용의 형상과 하트(♥) 모양을 조화시킨 물빛다리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녁이 되면 형형색색 조명으로 불 밝히는 물빛다리를 걷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드는 장소다.
군산시민의 정신적인 상징인 월명공원에 자리한 해병대 전적비
충혼불멸탑
월명호수를 품고 있는 월명공원은 봄이면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전국의 상춘객들이 몰려드는 명소다. 월명산과 장계산, 잠방산 등을 잇는 능선과 골짜기 사이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군산 구석구석은 물론 금강 하구, 서해 바다, 군산 외항, 군산 비행장, 옛 장항제련소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공원 시작점인 해망굴은 원래 일제가 물자 반출을 쉽게 하려고 1926년에 완공한 터널이었는데, 6·25 전쟁 중에는 북한군 지휘본부가 주둔해 있었다. 이 때문에 유엔군 항공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그 흔적이 터널 안팎에 여전히 남아 있다. 해망굴 왼쪽으로는 흥천사라는 작은 절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는 안국사라 불렸지만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참전용사들의 영령을 봉안하는 사찰이 돼 흥천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일제의 물자 수탈로였다가 북한군 지휘본부가 된 해망굴
흥천사 옆으로 계단길이 나 있는데, 끝까지 올라가면 오른쪽에 ‘충혼불멸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군산의 6개 학교에서 참전한 211명의 학도병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951년 6월 25일에 건립됐다. 계급장도 군번도 없었던 이들 학도병에게 주어진 것은 총 한 자루뿐이었지만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 전투에서, 또 이 땅을 되찾기 위해 펼쳐진 무수한 전투에서 의미 있는 전과를 올렸다.
충혼불멸탑에서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면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라는 푯말이 보인다. 높이 20m에 이르는 이 탑은 금강 방어선을 사수한 해병대의 전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 곳곳 새겨진 전설 같은 옛 이야기
1949년 제주에서 창설된 해병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최초 작전을 하달받았는데, ‘작전 명령 1호’가 바로 장항·군산·이리지구 전투다. 당시 해병대 고길훈 소령은 휘하 1개 대대 병력을 이끌고 7월 16일 군산에 진출, 금강을 기습적으로 넘어가 장항 북방 4km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전투 결과로 전황은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가 됐고, 해병대는 정부비축미 약 1만3000가마와 주요 물자를 후방에 보낼 수 있었다. 이후 금강 일대와 군산 시가지, 이리(지금의 익산) 지역에서 방어전을 펼쳤고, 이때 적에게 공포와 전율을 안기며 이후의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영예로운 신화를 얻었다.
당시 해병대가 상륙한 군산항의 맞은편에는 지금은 어항으로만 쓰이는 장항항이 있다. 정작 항구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옆 전망산에 터 잡은 장항제련소의 높다란 굴뚝이다. 1936년 건설된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의 대형 제련소로 명성이 높았다.
6·25전쟁 이후에 전국에서 수집된 탄피, 포탄피, 전선피복 등이 이곳으로 모였다.
장항제련소 뒤편으로는 서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 명소 장항스카이워크, 해변을 넓게 감싸고 있는 장항송림, 언제나 초록의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 맥문동과 수크령이 지천이다.
갯벌에 토해내는 태양의 마지막 숨결
인근에 거주하는 봉희 어르신(87세)은 “지금이야 자연미 넘치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넓디넓은 갯벌과 백사장뿐이었다”고 회상한다.
“북한군이 장항에 집결해서 군산으로 넘어간다고 하더라고. 내가 그때 열세 살이었어. 두어 달이 지났을 때인데, 참외를 따 먹으려고 밭에 갔더니 우리 군인들이 줄지어 서태산 쪽으로 걸어가데.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북으로 전쟁하러 간다고 했어.”
지역사를 꿰듯 전설 같은 옛이야기를 풀어놓은 어르신은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1만2000여 그루 해송을 심을 때 그 역시 손길을 도와 흙을 지어 날랐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며 격세지감이라 말한다.
갯벌 쪽을 바라보니 조개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물길 위를 뽐내듯 어선이 스쳐 지나간다. 농게, 밤게 등 바닷게들이 요리조리 바삐 숨어든다. 곳곳에 볼거리 많은 이곳이지만 그보다도 역시 사람과 자연이 조화되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서해랑길은 계절이 변하는 길목에서 거닐어본 휴식의 길이다. 수평선의 붉은 해가 지는 시간.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 숨결을 바다와 갯벌에 토해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갯벌 아래로 뚝 떨어지더니 바다 위에 붉은 여명을 남기고 군도의 섬들 사이로 사라졌다.
글·사진 이 종 철 기자
함께 둘러보면 좋은 김제·군산 여행지
말랭이마을
말랭이(산비탈, 산봉우리란 뜻의 방언) 마을은 6·25전쟁의 화망을 피해 하나둘 모여 만들어진 난민촌에서 시작했다. 얼마 전 타계한 김수미 배우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월명산 자락의 낮은 언덕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은 적이 낭만적이고 푸근한 인상을 준다. 곳곳에는 옛날 생활 모습을 그린 벽화가 포토존이 돼주고, 각 공간마다 공예 체험, 고전영화 감상 체험, 막걸리 만들기 체험 등이 펼쳐진다.
청암산 둘레길
군산에는 호수 주변으로 산책하기 좋은 몇 개의 길이 있다. 군산호수를 품은 청암산 둘레길은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가볍게 거닐 수 있는 산책길이다.
금산사·수류성당·금산교회
김제 모악산은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의 성지가 한데 이어져 있다. 미륵성지로 동양 최대의 미륵불이 있는 금산사,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천주교 신자들을 몰살하기 위해 불 지른 아픈 기억을 가진 수류성당, 전화(戰火)로 말미암아 쑥대밭이 된 금산마을에서 유일하게 불타지 않았다는 금산교회가 그곳이다. 저마다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까지 여러 신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