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한 경제 어디로 가나?
北 시장 환율·쌀 가격 급상승 배경
외화 부족, 양곡 정책 부작용 등 복합 요인
최근 북한의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북한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2013년 이후 8000원대를 유지하던 미 달러화 대비 북한 원화의 시장 환율이 최근 3~4개월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2023년 9월 이후 하락하던 시장의 쌀 가격 또한 다시 상승세로 전환해 팬데믹 시기의 고물가 수준에 근접했다. 북한 경제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인가?
북한 노동신문은 쌀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10월 13일 “온나라 농업부문 일들과 근로자들의 투쟁으로 지난 12일까지 전국적으로 벼가을이 기본적으로
결속됐다”면서 “쌀로써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가야 한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공식 통계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2020~22년 기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북한 전역에 창궐한 2022년은 북한 당국조차도 국가 최대의 위기라고 표현했을 만큼 어려운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하반기 이후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북·중 교역이 부분적으로 재개되기 시작했고 2023년에는 북·중 국경이 전면 개방되면서 대외무역 또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85% 수준을 회복했다(KOTRA). 리오프닝 효과로 2023년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고, 3년 연속 상승했던 시장 물가 또한 14.5% 하락해 2020년 수준으로 낮아졌다(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다만 석탄, 철광석 등 광물자원 외에는 이렇다 할 수출 자원이 없는 북한에 있어서 강화된 대북제재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히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팬데믹 시기에 억제됐던 수입 수요가 리오프닝으로 폭증했으나 수출 제재로 수입 대금 결제에 필요한 외화 획득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북·중 국경 개방 이후 수출이 증가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117%에 달했다고는 하나 금액으로는 3.3억 달러, 대북제재 강화 이전인 2016년의 1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수출 구조도 광물자원 위주에서 임가공품 위주로 바뀌어 2023년에는 가발, 눈썹이 대중 수출의 1위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에 전년 대비 126.8% 증가했던 북한의 대중 수입은 2024년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8.9% 감소했다. 대중 수입 감소의 주요 원인에 대해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불만으로 세관 검사가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외화 부족이 수입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올해 6월 이후 북한 시장의 미 달러 환율이 8000원대에서 1만4000원대로 상승한 데 이어 8월에 1만6000원대까지 폭등한 데는 대북제재의 장기화에 따른 외화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영향?
올해 1월 북한 당국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제시했다. 해마다 20개의 시·군을 선정해 10년간 북한 전역에 지방 산업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 자금을 어떻게 충당하는지인데,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워진 북한의 여건상 지방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북한의 2024년 국가 예산 지출 계획을 살펴봐도 지방발전 20×10 정책 관련 항목은 찾아볼 수 없다.
국가적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지방 공장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과 시멘트 등 가장 기초적인 자원은 국가가 보장하고, 그 외의 설비와 자재는 지방 자체의 자원과 주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화폐들. 일각에서는 2009년 화폐 개혁의 부작용으로 발생했던 물가와 환율의 폭등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동아일보 DB)
지방 자체로 조달해야 하는 설비와 자재 중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항목에 대해서는 자체의 외화 원천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를 해당 지역 당, 정권기관, 기업소의 정책 과제로 할당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경우 수출 자원 또는 보유 외화가 없는 기관과 기업소는 결국 시장을 통해 외화를 사들여야 한다.
올해 지방발전 20×10 정책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20개의 시·군이 대부분 비국경 지역과 비공업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밀수를 통한 외화 획득이 불가능하고 대북제재의 장기화로 보유 외화가 거의 고갈된 상황에서 정책 과제로 인해 발생한 외화의 초과 수요는 환율 급등을 초래한다. 외화의 초과 수요로 환율이 급등하게 되면 향후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의 영향으로 투기 행위가 성행하게 된다. 최근 3~4개월간 북한 시장의 대달러화 환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이 투기 행위에 있을 수 있다.
‘협동화폐거래소’를 통하지 않는 불법 시장 거래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 또한 거래 비용을 상승시켜 환율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환전상들에 대한 단속과 통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최근 3~4개월 사이 두 배 가까이 오른 환율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라 20개 시·군에 지방 공업 공장을 건설 중인 조선인민군 제124연대 군인 건설자들이 줄지어 행군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신양곡 정책’과 근로자 임금 인상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 당국이 노동자 사무원들의 생활비(임금)를 인상했다는 소식이 북한 전문 매체들을 통해 전해졌다. 아직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를 통해 확인된 것은 없지만 평균 40배 정도 인상했다고 한다. 임금 인상의 목적에 대해서도 확인된 바는 없지만 추측컨대 최근 북한 당국의 ‘신양곡 정책’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이후, 북한 당국은 식량 가격과 유통을 국가가 통제·관리할 목적으로 ‘양곡판매소’를 설치하고 2022년 10월경부터 본격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곡 전매제’, 즉 국가가 양곡을 전량 수매하고 공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장을 통한 양곡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오랫동안 묵인 또는 허용해왔던 시장을 통한 양곡 유통을 강제로 금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강제적인 방법은 소득과 가격이라는 수단을 통해 시장을 청산하는 것, 즉 양곡판매소 판매 가격을 시장 가격보다 낮게 설정하고 소득을 그에 맞게 인상하는 것이다. 물론 소득을 인상해주는 것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2002년 7·1 조치와 같이 실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급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민들로부터의 식량 수매 가격 또한 시장 가격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최근 북한 시장의 쌀 가격 상승은 임금 인상에 의해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상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화폐를 증발해야 할 것인데, 화폐량 증가는 총수요를 증가시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 시장의 곡물 가격은 주로 전년도 가을 수확 작물 생산량과 당해 연도 봄철 수확 작물 생산량, 그리고 해외로부터의 도입량의 합계로 표시되는 총 공급량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올해 7월 말까지 북한의 대중 곡물 수입을 고려한 총 공급량이 작년에 비해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의 쌀 가격 상승을 총 공급량의 변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의 곡물 유통 정책이 지난해와 달라졌다는 조짐 또한 보이지 않는다.
환율 상승분이 쌀 가격에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나 식량의 거의 대부분을 자체로 생산·소비하는 북한의 특성상, 그리고 올해 중국으로부터의 곡물 도입량 등에 근거해볼 때 환율 상승의 직접적 영향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설명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근의 쌀 가격 상승이 주로 임금 인상에 의해 유발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임금이 40배 가까이 상승한 데 비해 쌀 가격의 오름세는 미미한 수준이다.
취약한 농업 여건 해결이 관건
종합하면 최근의 환율 상승은 북한의 외화 부족과 코로나19 리오프닝 효과, 지방발전 20×10 정책의 부작용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쌀 가격 상승은 주로 신양곡 정책 시행과 근로자 임금 인상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판단된다. 40배에 가까운 임금 인상, 두 배 가까이 오른 환율에도 쌀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북한 경제의 현 상황을 위기로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여전히 항시적인 위험 요인은 존재한다. 외화 부족이 상수화되고, 취약한 농업 여건 탓에 농업 생산이 주로 기상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향후 북한의 행보가 주목된다.
임 송
국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