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현장Ⅱ
탈북 외교관 초청 긴급 토론회
北 ‘두 개 국가론’은 ‘핵 통일론’
북한 주민 변화와 국제적 압박 필요
북한 외교관 출신 고위 탈북민 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안보분과위원회(위원장 손정목)가 10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개최한 탈북 외교관 초청 긴급 정세분석 토론회를 위해서다. 현재까지 한국 땅을 밟은 북한 외교관 12명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한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토론 주제는 ‘8·15 통일 독트린’ vs ‘두 개 국가론’.
손정목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강대국들의 대결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북한 정권의 거듭되는 대남 도발과 핵 무력 증강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면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헌법적 기준에 근거해 대내외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국론을 결집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北, 핵 도발로 한반도 위기 상시화할 것”
주 콩고민주공화국 북한대사관 참사관을 지낸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태 처장을 포함해 김동수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이영철 전 핀란드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한진명 전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태 처장은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를 마지막으로 한국행을 택했다.
토론회는 김동수 전 서기관의 기조 발제와 탈북 외교관들의 지정토론,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김 전 서기관은 먼저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해 “북한 주민을 통일의 주체로 공식화하고 자유와 인권, 민주적 절차에 기반한 자유통일의 지향점을 명문화한 것”이라며 “북한 내부의 경제난과 민생고, 집단주의 독려와 주민 통제 강화, 호전적 적대정책 확대 등 체제 경직성과 취약성이 점증하는 시점에 북한 주민 전체의 이해와 공감대를 추동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서기관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해서는 “핵 무력에 기반한 ‘핵 무력 통일론’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서 “이는 북한의 적화통일 가능성 상실과 체제 내구력 약화, 흡수 통일에 대한 위기감 등으로 말미암아 대남 적대 정책이 체제 유지의 핵심인 핵 통치 전략의 당위성 확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 등 공세적 행보를 지속하는 한편 한반도 전쟁 위기 상시화를 부각해 중·러·북 연대와 밀착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외교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전 서기관은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정부는 이를 반통일적, 반역사적, 반민족적, 반인권적 행위로 규정하고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대북 압박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는 북한의 시도를 저지하는 전 국민적이고 범정부적인 총력 대응, 국제적으로는 북한 대남 적대 정책의 국제적 파장을 안보 문제로 이슈화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주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외교관 대부분이 김 전 서기관의 기조 발제 내용에 의견을 같이했다. 리일규 전 참사는 “북한 내부에 외부의 정보를 많이 유입시켜서 북한을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며 “외부 정보를 접한 해외 파견자들이 평양에 돌아가 지인과 동료, 가족들에게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 방안이라든가 세계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과 주재관, 식당 종사자, 근로자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주민은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 지우기’에 대한 북한 주민 설득 부족
이영철 전 서기관은 “변하지 않는 탈북민 정책, 변하지 않는 정보 유입, 변하지 않는 국제적 공조야말로 북한 주민에게는 힘이 되고, 독재 정권에는 무서운 핵폭탄이 될 것”이라며 “국제적 공조, 압박, 여론은 김정은 체제도 대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10월 초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민족 삭제를 비롯해 적대적인 두 국가론과 관련한 헌법 개정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태영호 처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이해, 설득력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과 관련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통상 북한이 새로운 정책이나 이론을 발표하면 간부나 주민들이 관영매체에 나와서 적극 홍보를 한다”며 “그 과정이 끝나면 노동신문에서 이 정책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논설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영매체에 단 한 번도 북한 간부나 주민이 나와서 두 국가론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끝내 김정은이 이것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통일하지 말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류현우 전 대사는 “반헌법적이고 반통일적, 반국가적인 발언을 한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할 권리가 없다. 역사가 결정하고 민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하지 말자는 발언은 보수, 진보, 종교와 신앙을 초월해 문제 삼아야 한다고 본다”며 “김정은 발끝 밑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품어야지 누가 하겠느냐. 정말 무책임한 발언인 동시에 후대들에게 씻을 수 없는 반민족적인 발언”이라고 직격했다.
글·엄상현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