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탈북민 화가 이지혜 초대전 ‘철책 넘어 지상락원’
재기발랄한 상상력 속 진정성
北 주민 자유를 향한 열망 담아
북한이탈주민 화가 이지혜 초대전 ‘철책 넘어 지상락원’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10월 2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는 북한에서 태어난 작가가 탈북과 남한 정착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독특한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평안남도 출신인 이지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체제 속에서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기회가 없었다.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이후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전문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비로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철책 넘어 지상락원’이라는 전시 제목은 이 작가가 북한을 떠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작가는 ‘지상락원’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북한의 현실과 남한에서 찾은 진정한 자유 사이의 차이를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20점의 작품은 크게 ‘북한 주민의 고통과 소망’, ‘분단의 아픔’, ‘남한 정착기’,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라는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옥수수 한 톨 없어 배 곯던 기억
이 작가는 처음부터 주제를 구분해 작업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북한에서 겪은 비참한 상황과 탈북 과정에서 마주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기록하듯 캔버스에 담았다.
작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어려웠던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하루만 일해도 한두 달 치 식량을 벌 수 있다는 현실에 놀랐다. 옥수수 한 톨 구하기도 힘들어 배를 곯던 기억과 남한에서 남아도는 옥수수를 보며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길 상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이런 상상력은 ‘인민의 소원 01’에 담겨 이번 전시에 소개됐다. 전시 작품들은 모두 이런 북한 주민들의 삶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관람객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 자유에 대한 소망을 독창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북한의 현실을 그림으로 마주한 관람객들에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단순히 북한 사람들의 고통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넘어서는 자유를 향한 열망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작가는 그림으로 남북한의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분단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켜 감동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 설명도 제공한다. 이 설명은 관람객들이 작품에 더욱 쉽게 다가가고, 작품의 깊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특히 북한 사회와 북한이탈주민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관람객들에게는 새로운 시각과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남북한의 현실을 예술적으로 해석한 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남북한 통일의 의미를 고민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미니 인터뷰 +
“통일되면 남북 교류에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이지혜 작가
- 언제부터 화가의 꿈을 꿨나요?
어릴 때 북한에서 만난 화가들은 특별대우를 받았어요. 북한이 평등 사회라고 하지만, 그들은 편안하게 앉아 그림만 그리고 밥도 대접받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생존이 우선이었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남한에 와서예요. 그동안 느낀 감정들과 사명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죠.
- 남한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어려웠어요. 특히 경제적인 부담이 컸죠. 미술 재료가 너무 비싸서,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어요. 지금도 잠시 학교를 휴학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저는 항상 삶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사회복지사 업무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에서 살아온 제 경험이 60~70대 어르신들이 자라온 환경과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힘들긴 해도, 그분들과 소통하면서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좋습니다.
- 작품이 사실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상상력이 많이 반영된 것 같은데요.
북한에서의 삶은 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어요. 어린 시절 굶주리면서 상상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 제 그림에 담겨 있어요. 핫팩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은 남한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북한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것들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해요. 물론 아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는 제 그림을 통해 너무 어둡고 슬픈 감정만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일부러 상상할 여지를 남기기 위해 추상적으로 표현했어요.
- 화가로서의 목표는?
남북한을 모두 경험한 것은 저만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을 살려 계속 그림을 그릴 계획입니다. 특히 남북한의 현실을 그림으로 알리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통일이 되면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 교류가 중요할 텐데, 제 그림이 그런 교류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북한에서의 삶에 비하면 남한에서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곳에 왔으니 그 용기를 잊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글·사진이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