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22024.11·12

(사진 왼쪽부터)김희선 정하늘 이해정 윤기철 류성현

사회통합

북한이탈주민 멘토·멘티 특별 대담

“멘토는 앞서가는 삶의 선배이자 본보기”
“탈북민들 이제 당당해지면 좋겠어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남한 사회 정착 지원을 위해 올해 초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민주평통 각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의 자문위원들이 멘토로 참여해 탈북민 멘티와 결연을 맺은 사례는 모두 700여 쌍. 멘토와 멘티, 서로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사회 이해정 상임위원, 현대경제연구원 통합경제센터장
멘토 윤기철 성동구협의회장, 김희선 경기여성위원장
멘티 정하늘 영화감독 겸 배우, 류성현 한국항공대 학생(3학년)


이해정 먼저 멘토 두 분 본인 소개와 멘토링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윤기철 개인적으로는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고요. 민주평통 성동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 탈북민 가정과 청소년, 청년, 경력단절여성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멘토링과 지원 프로그램을 총괄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탈북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조기에 파악해서 문제가 심각하기 전에 예방적 조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분들이 언제든지 대화하고 찾아올 수 있도록 ‘탈북민 의견수렴 창구’라는 것도 개설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붕어빵 장사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요. 탈북민들이 무조건 받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희선 16기부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금 경기지역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하다 2012년쯤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탈북민들이 많으니까 도움을 좀 주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인연이 돼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배추를 팔면 그 배추를 사다가 탈북민들에게 주고, 겨울에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쌀도 지원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그마한 활동부터 시작했죠. 그러다 탈북민 멘토링 사업에 참여해서 처음엔 1명이었는데 지금은 3명을 돕고 있어요.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여전해”
이해정 멘토 역할을 맡은 이유가 뭔가요?

윤기철 저는 개인적으로는 1명 정도 돕고 있는데요. 성동구협의회에 있는 분 중에 젊은 나이에 탈북해서 여기서 아이를 낳은 여성분이 계신데, 자녀 교육을 굉장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아이가 학교에도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 모자가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클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맡게 됐습니다.

김희선 탈북민들 대부분 여성이에요. 시흥에도 한 400명 정도 있고요. 제가 필요할 때 그분들이 와줘서 도와주고, 그분들이 물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리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하다 보니 멘토 역할을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어요.

이해정 멘토 역할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윤기철 탈북민들을 만나보면 경제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도와주고 싶어도 잘 나오려고 하질 않아요. 남한 사회에 어려워하고 적응을 못 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요. 어떤 분들은 노출되는 게 싫다 보니까 사진 찍는 것도 어려워해요. 그 때문에 그분들에게 다가가기가 좀 어려웠죠.

김희선 우리 사회에 탈북민에 대한 편견 같은 사회적인 문제도 조금 있는 거 같아요. 취직을 시켜주려고 해도 탈북민이라고 하면 일단 한번 더 고민하는 것 같아요. 탈북민들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서 보수를 많이 원하는 경우도 있고요. 또 탈북 여성들 중에는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곳에 취직하려면 공부를 하라고 많이 이야기해주죠.

이해정 멘티 두 분도 간략한 본인 소개와 멘토링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류성현 저는 한국항공대학교 3학년이고요. 하늘이 형이 연결시켜준 과천시협의회 회장(이순형)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친척집처럼 댁으로 찾아갑니다. 회장님도 뭔가 좋은 일 있으면 불러주시죠. 제가 이곳에 살면서 언제 오페라 같은 걸 보겠어요. 장학금 같은 거 받을 기회 있으면 받게끔 배려해 주시고요. 제가 지금 물류를 전공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물류기업 중 사업을 크게 일으킨 분과 연결시켜줘서 어떻게 하는지 들어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제가 정신적으로도 많이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정하늘 한국외국어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7년 지금 양아버지로 모시는 분을 알게 됐는데, 그분이 저의 멘토였죠. 그러다가 올해 초 양아버지가 ‘민주평통에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하는데 한번 해봐라. 내가 너의 삶의 멘토였다면 이제는 네 영역에서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탈북민 최초 영화감독인 김규민 감독이 매칭된 거예요. 그동안 참여한 프로그램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밥 먹고 사진 한번 찍고 별 의미도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얼마나 가나 보자’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민주평통 협의회장님도 열심히 하시고 김 감독님께 많이 배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단지 보고 DMZ 지뢰 뚫고 탈북 결행”
이해정 탈북한 이유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류성현 저는 2019년 8월에 DMZ를 넘어서 귀순을 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전단지도 봤고, 노동신문을 통해서 ‘서울에서 데모를 한다’는 기사도 봤어요. 그런데 데모를 했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는 표현이잖아요. 또 촛불시위에서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는 뉴스가 있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북한은 김정은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고 그럴 인물도 없거든요.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대통령을 그랬을까?’ 이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거예요. ‘남조선은 뭔가 자유가 있는 땅 같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정하늘 저는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전단지를 많이 주워왔고요. 또 직접적으로 눈앞에 보이고,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넘어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한 가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어느 순간 작용하면서 결심을 굳힌 거죠. 저도 DMZ를 통해서 왔어요. 지뢰를 피하기 위해 맹수들이 다닌 발자국 자리를 따라서 내려왔는데요. 마침 그때 비가 많이 와서 지뢰가 많이 유실됐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정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적은 없었나요?

류성현 제가 왔을 때 코로나19(팬데믹)가 터졌어요. 그래서 상당히 힘들었어요. 연결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제일 처음으로 연결된 사람이 정하늘 형이거든요. 제가 우울할 때는 일부러 형 집에 찾아가서 복싱 좀 하자고 했어요. 좀 맞고 싶은 거예요. 너무 우울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도 있고 한데, 저는 서울에 혼자 와 가지고 아무도 없었어요.

정하늘 가장 힘든 게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열아홉 살 때였는데, 한창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였던 거죠. 근데 그게 안 되니까 한 3년 동안은 혼자서 눈물도 많이 훔쳐보고. 그래서 교회에 가서 신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문화 차이도 좀 많이 느꼈고 언어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되는 부분이었어요.

이해정 멘토링을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나요?

류성현 코로나19 시기에 멘토 그분을 알게 됐어요. 종종 제가 전화도 하고, 그분이 전화도 주시고. 저는 원래 정치외교학과에 가려고 했거든요. 주변에서 다 말려 고민이 많았는데, 그분 역시 그러는 거예요. ‘정치는 무슨 정치냐. 좀 더 현실적인 대학교에 가라’. 그래서 그분 조언에 따라 항공대를 선택하게 됐죠.

정하늘 제가 양아버지를 만난 다음 해에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되게 안정적이었어요. 심지도 굳고. 그 친구를 만나면서 제가 중심을 잡았던 것 같아요. 마음이 안정되니까 뭔가 한곳에 집중할 수도 있더라고요.

이해정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뭔가 새롭게 느낀 점이 있나요?

윤기철 사실 처음엔 여성분이어서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얘기도 하고 생일도 챙겨주면서 조카 하나 생긴 것 같은, 참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보람도 느꼈죠.

김희선 10년 전부터 같이했던 탈북민들이 봉사단체를 만들었어요. 자기들이 받은 사랑만큼 새로운 탈북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건데요. ‘아, 내가 저분들의 인생에 큰 역할을 하고 있구나. 멘토 역할이 정말 중요하구나. 멘토로서의 역할을 좀 더 충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민주평통 북한이탈주민 멘토링 프로그램 특별 대담에서 사회를 맡은 이해정 민주평통 경제·과학분과 상임위원(가운데)과 류성현 한국항공대 학생,
윤기철 성동구협의회장, 정하늘 영화감독 겸 배우, 김희선 경기여성위원장(사진 왼쪽부터).

“노력만큼 대가 받아… 무조건적 요구 아쉬워”
이해정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멘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윤기철 탈북민들은 은연중에 무조건적인 지원을 원하는 게 있어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건데. 또 가까워지면 오히려 더 많은 걸 요구해요. 뭔가 필요하면 혜택을 받는 게 아니고 노력을 해서 얻는다는 걸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게 좀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탈북민들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서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잖아요.

김희선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많이 도와드리는데, 그분들이 무조건적으로 요구할 때가 있어요. 제가 힘들 때 그러면 저는 없다고 얘기해요.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주고 싶을 때 주겠다’고 하면 좀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좀 아쉽죠. 두 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그래도 너무 잘 따라주세요. 그분들이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잘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해정 멘토링을 받으면서 느낀 점이나 멘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류성현 저는 아직 경험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근데 제 멘토는 제가 할 경험을 이미 다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고민할 때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해주시죠. 정신적으로는 부모님 같아요. 앞으로도 제가 많은 시간을 빼앗을 수 있는데 ‘나중에 성장해서 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하늘 멘토인 김규민 감독님이 ‘내가 왔을 때는 이런 거 없었다. 막내부터 해서 다 했는데, 얼마나 좋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잘 챙겨주시는데요. 정말 감사하죠. 김 감독님뿐만 아니라 모든 멘토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해정 나에게 멘티(멘토)란 어떤 존재인가요?

윤기철 동료이자 이웃, 그리고 친구 같은 사람.

김희선 같이 성장하는 동반자이자 평생 파트너.

정하늘 제 길을 앞서가는 선배님.

류성현 제 삶의 본보기.



정리· 엄상현 기자 | 사진· 홍태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