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Ⅰ
北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 분석과 전망
北 개헌 내용 비공개 ‘대남 적대 전략’의 일환
‘남쪽 국경선’ 긋고 중·러·북 결속 강화할 것
지난 10월 초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전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 중심의 대남 적대 정책을 공식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각종 미사일 발사와 오물풍선 살포를 비롯한 도발적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 결과와 최근 관련 동향을 분석하고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전망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10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가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10월 7~8일 양일간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헌법 개정 이외에도 ‘경공업법’과 ‘대외경제법’ 채택 여부, 품질감독법 집행검열감독 정형(경과), 조직 문제(인사) 등을 다뤘다.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헌법은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의 실시에 맞춰 공민의 노동하는 나이와 선거하는 나이를 수정했다. 이전 시기 11년제 의무교육제도에 비해 학생들의 졸업 시기가 1년 늘어나는 데 맞게 기존의 노동 연령(16세), 선거자 연령(17세)을 각각 1년씩 늘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경공업법과 대외경제법을 채택하면서 “경공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대외경제를 다각적으로 확대해나가는 데서 나서는 법적, 원칙적 담보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조직 문제는 국방상과 국가건설감독상,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을 새로 임명했다. 정작 주목됐던 적대적 두 국가에 관한 헌법 개정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이후 대남 관련 동향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北 ‘경의·동해선 폭파’ 개헌 후속 조치?
북한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적대적 두 국가에 따른 대남 적대 전략 방향을 공식화했다. 이후 국내외 관심은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대로 남북한 국경선의 개념과 영토와 영해, 영공 조항 신설을 비롯한 헌법 개정 여부에 쏠렸다. 북한은 이와는 별개로 연초부터 대남기구 폐지, 상징물 폐기, 공식 용어 삭제 등 ‘민족·통일 지우기’에 집중했다. 당초 예정보다 지연된 10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적대적 두 국가 관련 내용을 개정하고, 남북 간 지리적 차단 등 사전에 계획된 각종 군사적 조치까지 본격화했다.
북한은 10월 9일 인민군 총참모부 보도 명의로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전하며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헌법의 요구에 따라 공화국의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의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실행의 일환”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인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은 전쟁 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헌법 개정 절차를 통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전략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적 절차까지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10월 이후 대내외 긴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헌법 개정을 대남 적대 전략의 이벤트로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적정 시기를 선택하여 개정 헌법의 세부 내용까지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은 10월 15일 정오쯤 경의선 및 동해선 일대에서 연결도로 차단 목적(추정)의 폭파 행위를 자행했다”며
경의선(왼쪽)과 동해선 폭파 모습을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고심은 핵 통치 전략의 장기전에 따른 체제 부작용과 리더십의 결손(缺損)이다. 2012년 집권 이후 집중해온 핵 무력 정책의 근본적 모순과 취약성은 시간이 감에 따라 가중되는 형국이다. 대북제재 장기화에 따라 주민은 ‘핵 강국이 밥을 먹여주냐’며 눈앞의 민생고에 불만이고, 권력층은 ‘대북제재보다는 핵 개발 비용 때문에 경제가 망한다’고 뒤에서 비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기회 삼아 러·북 관계를 통한 핵전략의 실질적인 진전과 성과를 고대하고 있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이 거듭 핵 만능론과 당위성을 어필해도 갈수록 약발이 떨어진다. 당 회의나 경축 행사, 군사 훈련과 현지 지도, 심지어 자연재해 현장에서도 작금의 ‘고난의 원인은 미제와 대한민국 괴뢰들 때문’이고, ‘그 때문에 핵 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본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불가불 경제난과 민생고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적대 논리로 강변하는데 이게 이제는 너무 식상하고 판에 박은 방식이다. 주민들이 거듭된 체제 선전에 ‘안 봐도 비디오’라는 냉소와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 김정은과 노동당의 눈에도 갈수록 선명해진다. 이제는 대적 선전에서 ‘적들의 침략 위협과 군사적 도발이 날로 강화된다’는 말쯤은 통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대로 평양 상공, 김정은이 근무하는 중앙당 청사 상공에 무인기가 떠 있고 전단이 살포된다고 해도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다. 역으로 장기간의 경제난과 생활고에 지친 주민들이 정말로 전쟁 같은 실제 액션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즉 김정은 정권 지도부의 전략적 고심이 깊어지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핵 노이로제’에 걸린 행태와 같이 통치전략상 혼선과 호전성도 엿보이는 상황이다.
가중되는 핵 통치 전략의 취약성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지금껏 써오던 대남 전략의 수정 방식보다는 근본적이며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은 이 같은 핵 통치 전략의 돌파구를 적대적 두 국가에서 찾았고, 이후 호전적인 민족·통일 지우기와 대남 적대 정책의 현실화로 그 승부를 보려 하고 있다.
대남 통일전략의 모순과 한계 드러내
북한의 국가 전략 체계는 전통적으로 대내와 대남, 대외 구조를 유지했다. 이는 통상 체제 대전략을 밝히는 당 대회에서 대내 정책과 조국통일 과업, 그리고 대외 전략으로 표방된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이와 동일한 구조로 대내외 측면과 ‘자주적 통일’이라는 대남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적대적 두 국가에 따라 전통적 통치 전략의 구조적 전환이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 주민과 권력층의 대남 인식에 장기간 세뇌교육 과정에 주입받은 적화통일의 인식과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점은 고민이다.
북한은 지난 기간 체제 선전 차원에서 조국통일을 김일성, 김정일의 업적으로 왜곡해 줄곧 강조해왔다. 6·25 전쟁 당시 ‘소총이 부족해서 낙동강에서 피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는 김일성의 통일 실패 회한과 그런 수령님의 천추의 한을 ‘해방된 남녘의 다도해에 모시는 것으로 풀겠다’는 호언을 김정일의 비장한 통일 의지로 노동당과 인민군에 줄곧 선전했다. 북한은 이 같은 허구적인 통일 시나리오를 전통적인 대남 전략을 포장하는 스토리로 활용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10월 18일 공개한 영상에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SPRAVDI 페이스북)
그러나 최근 김정은의 연설 등을 보면 당·정·군 지도층도 헷갈릴 대남 인식과 대적 논리가 다분하다. 적대적 두 국가 중심의 대적 논리와 국방종합대학 창립 60주년 축하연설에서 “우리가 그 무슨 남녘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맥락을 풀이하면 지금까지 세습 정권이 전통적인 통치 전략으로 활용해온 대남 통일 전략의 모순과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으로, 현재 김정은 자신도 심한 전략적 혼선과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의 전체주의적 모순을 전제로 내부적으로는 핵 통치 전략의 취약성이 가시화되고 외부적으로는 대외, 대남 전략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세습 정권의 전통적 명분인 적화통일의 전면적 포기로 보는 것은 분명한 전략적 오류이자 희망 사항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 속에서 높아가는 사상적 이완과 체제 불만을 해소할 방책을 여전히 대남, 대미 적대 정책 프레임에서 찾고자 한다. 주민이 바라는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 차원에서 그 정답인 개혁·개방 정책을 거부하고 강화된 핵 역량에 의지하는 체제 유지 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실현 불가능한 조국 통일, 적화통일의 궁극적 목표를 핵 무력으로 달성한다는 허구적인 전략 목표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김정은 정권과 핵 통치 전략의 당위성을 추구하고 있다.
北 주민 시각에서 현실 직시해야
북한은 대남 적대 전략의 헌법화를 기점으로 남북 간 지리적 차단을 비롯한 국경선화 관련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대규모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는 등 러·북 간 군사적 밀착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향후 대남 적대 전략의 현실화로 내부적으로는 체제 결속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대미 압박과 중·러·북 중심의 진영 강화에 집중할 것이다. ‘남쪽 국경선’의 현실화와 군사적 긴장을 주민들의 사상적 이완과 불만을 해소하는 데 활용하면서 대내외 유리한 정세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전통적인 적화통일 전략의 계승성과 지속성을 고려할 때 대남 적대 정책은 한시적인 조치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의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에 따른 대남 적대 정책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8·15 통일 독트린의 자유민주적 성격과 통일 방안의 추진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무력 중심의 국가 전략은 갈수록 근본적인 취약성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전략적 환경과 지점이다.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중·장기적인 대북·통일정책의 방향성을 견지해야 한다. 8·15 통일 독트린에서 “자유와 인권을 북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결국 통일”이라고 규정한 취지에 맞게 북한 주민의 시각과 관점에서 작금의 북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통일의 주체로 북한 주민을 명시한 점은 중요한 전략적 함의를 가지며, 이는 향후 반드시 거쳐야 할 자유·통일의 필연적 단계라고 판단된다.
김 인 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