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22024.11·12

10월 24일 오전 서울 중랑구 면목역광장에서 열린 탈북민 정착 지원을 위한 기금 마련 바자회에 참석한 민주평통 서울중랑구협의회 자문위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사 온 이웃

서울 중랑구협의회
탈북민 정착지원기금 마련 바자회

탈북민 지원 위한 다양한 사업 전개
“탈북민 자녀 안정적인 돌봄·교육의 길 열 것”

가지런히 진열된 갈색 참기름 병들 위로 가을볕이 쏟아졌다.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 이가람(가명) 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10여 년 전 서울 중랑구에 정착한 지역 주민이다. 이 씨를 맞이한 이들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협의회(회장 차보권) 자문위원들. 이 씨가 식품 코너를 시작으로 의류, 생활용품 코너를 한 바퀴 돌 때까지 친숙하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며 물품 홍보와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이 씨는 “최근 일이 바빠 장 보는 걸 계속 미뤘는데, 평일 오전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 무척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5만 원어치 물품을 구매한 이 씨는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의 어려운 실상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탈북민이 지역사회에서 통일을 위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

“자긍심 갖고 살도록 꾸준히 지원할 것”
10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소재한 면목역광장에서는 ‘조금 특별한’ 바자회가 열렸다. 서울꿈드린예술단이 부채춤 공연을 선보이고, 가수 송혜옥 씨가 트로트를 부르며, 기타리스트 윤성준 씨가 기타와 색소폰을 연주한 것은 여느 바자회 풍경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주평통 중랑구협의회 차보권 회장과 이상춘 간사, 전주영 실향민중랑구협의회 겸 희망사랑나눔봉사단 회장 등이 분주히 오가며 행사장을 챙겼다. 공연장 객석에는 중랑구민을 비롯해 북한이탈주민, 민주평통 자문위원, 정계 인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이 바자회는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이기에 다양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일까.

차보권 중랑구협의회장은 “탈북민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중랑구에 정착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는 민주평통 중랑구협의회에서 주최한 ‘탈북민 정착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였다. 민주평통 의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사를 통해 탈북민 정착 지원을 강조한 만큼 이번 바자회 목표도 “탈북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기금을 마련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차보권 회장은 인사말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탈북민의 정착을 위해 자문위원과 지역 주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을 모았다”며 “탈북민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중랑구에 정착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자회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프로그램은 자문위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됐다. 자문위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후원금으로 바자회 물품을 조달한 것이 그 예다. 지역에서 청과물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문위원들은 버섯, 꿀, 참기름 등 특산품을 후원 물품으로 내놨다. 이상춘 간사는 바자회 흥취를 돋울 공연단을 섭외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부채춤, 장구, 트로트, 색소폰, 드럼, 민요, 지전춤, 국악, 축원무, 양반변검 등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다.

일부 자문위원은 소속된 직장과 사업장에서 휴가를 내고 급히 바자회 현장으로 달려왔다. 더 많은 탈북민 가정에 기금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이날 30여 명에 달하는 바자회 운영단이 구성됐다. 자문위원들과 지역 단체, 기관장 등 여러 도움의 손길과 물품 및 비용 후원 덕분에 바자회 물품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식품 코너에는 가래떡, 새우젓갈, 버섯, 꿀 등을 진열했고, 패션 코너엔 성인 및 아동 의류, 속옷, 신발, 에코백, 장신구를 차려놓았다. 생활용품 코너엔 수세미, 목베개, 장난감, 염색샴푸 등을 구비했다.

차보권 회장은 “아무리 취지가 좋은 행사라도 나 혼자 할 수 없다”며 “탈북민 정착 지원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모두 나서야 하는 일인 만큼 이번 바자회에서 중랑구협의회 자문위원들과 지역 단체장, 주민들이 똘똘 뭉쳐 저력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체계적인 준비와 봉사 정신 덕분일까. 바자회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민주평통과 중랑구협의회가 국가와 지역, 탈북민 정착을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중랑구 주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탈북민 자녀 ‘장학금 장기 후원’ 목적
이날 바자회의 수익금은 후원 쿠폰 판매액과 판매 물품 판매액, 참석자들에게서 즉석에서 모금한 기부금 등을 포함해 총 1500만 원에 달했다. 이 수익금은 중랑구에 정착한 탈북민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의 장학금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 간사는 “수익금을 그냥 장학재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중랑구협의회 차원에서 직접 도움이 필요한 탈북민 가정을 알아보고 아이들을 장기적으로 후원하는 방향으로 장학기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그간 중랑구협의회가 탈북민 지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면서 얻은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새 삶을 찾아 대한민국 땅에 온 탈북민 가정의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돌봄과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

중랑구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자회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 와 있는 탈북민은 3만 명이 넘는다. 정부가 임대아파트, 정착지원금, 직업훈련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지만 이들의 생활은 어렵기만 하다.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경제 활동에 참가하더라도 일용직이나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탈북민 가정에서 자녀의 양육은 뒷일이 되기 일쑤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이유다.

중랑구협의회의 탈북민 정착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 왔다. 민주평통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탈북민 멘토링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을 밀착 관리하며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탈북민 단체를 지원하는 활동도 활발하다. 2023년 창설된 희망사랑나눔봉사단은 한국 사회에 먼저 정착한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 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 된 탈북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봉사단이 사무실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차 회장이 자비를 들여 사무실 임대료를 지원해준 것은 물론 각종 사무기기와 활동비까지 지원했다. 전주영 회장은 “자유 대한민국에 희망과 꿈을 안고 찾아온 탈북민들이 통일이 된 후 대한민국 정착 과정에서 얻게 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국가와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우리 단체의 창립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탈북민은 3만 명이 넘는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지만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경제
활동에 참가하더라도 일용직이나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탈북민 가정에서
자녀의 양육은 뒷일이 되기 일쑤다.

전 회장은 북한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2005년 7월 탈북해 홀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배려와 도움을 받고 있으니, 나도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전 회장은 “남을 도와주고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한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즈음 제21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전 회장은 탈북민 시각에서 탈북민 가정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역 내 탈북민 정착 지원을 위한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숨어 있는 탈북민 마음 열렸으면…”
탈북민의 한국 생활을 돕는 것은 통일 미래에 대한 실질적 준비다. 바자회는 물론 탈북민의 지역 활동을 유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남북한 주민이 하나로 어울려 살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중랑구협의회 자문위원들은 믿는다. 이 간사는 “목숨을 걸고 자유와 꿈을 찾아온 이들을 한국 사회에서 더는 상처받고 방황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며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적응 훈련을 시키고 직업도 알선해줘야 한다. 정부와 민주평통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치와 이념 노선을 떠나 정계와 사회단체, 시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랑구협의회의 향후 활동 목표는 탈북민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지역사회로 이끄는 것이다. 차 회장은 “지자체나 경찰이 파악하지 못하는 탈북민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며 “민주평통의 본령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려면 숨어 있는 탈북민을 양지로 이끌어 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건희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