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22024.11·12

진단Ⅱ

남북 ‘두 국가 평화공존’이라는 환상과 현실

‘화해·협력’은 北에 최고의 안보 위협
남북 냉전은 앞으로 더 격화 예상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남북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교전국가 간 관계’(이하 ‘적대적 교전국가’론)로 재정의했다. 이를 놓고 한국에서는 남북 ‘두 국가 평화 공존’론이 제기돼 거센 논란이 일었다. 과연 실현 가능한 주장일까? 이는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사상·제도의 차이 그리고 분단국가라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남북한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동 안보장치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이 ‘적대적인 교전국가’론을 거론했을 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보자. 그 핵심은 한국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고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즉, 한국이 북한의 주권을 침해할 때 북한의 “(핵) 공격력이 사용된다면 그것은 동족이 아닌 적국을 향한 합법적 보복 행동이 된다”(김정은, 10월 17일)는 것이다. 또 김정은은 적들(즉 한국)이 “공화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든다면 가차 없이 핵무기를 포함한 수중의 모든 공격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확언”(조선중앙통신, 10월 4일)했다.

남북 ‘두 국가 평화공존’이라는 환상
이처럼 북한의 ‘적대적 교전국가’론의 핵심이 한국을 핵 공격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면, 한국에서의 논란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돼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생뚱맞은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됐다. 논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북한이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론을 채택했다. 둘째, 통일을 앞세우면 평화가 위태로워지니 이참에 한국도 남북 두 국가 간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인식과 정책을 바꾸자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보수적 논자나 진보적 논자나 똑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남북관계 문제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주요 논자가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진귀하고 반가운 일이다. 대표적인 한 보수 신문은 한 논평에서 “시급한 것은 민족 통일이 아니라 가장 근접한 이웃인 남과 북이 평화적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일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라고 했다. 또 다른 보수 신문도 “한국도 차제에 동·서독 관계를 모범 삼아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로 재정립해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대북 정책 수립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했다.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진보 측의 논자로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금 우리가 불러야 하는 노래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진보 측 논자는 “장기 과제로 통일을 지향하되 ‘잠정적 두 국가’ 관계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감을 해소하며 평화와 화해·협력의 길을 여는 데 우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양측 주요 논자의 주장처럼, 남북한이 서로를 두 국가로 인정하면 남북간 평화로운 협력과 경쟁 또는 ‘적대감 해소와 평화와 화해·협력’이 가능할까? 필자의 답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다. 그 이유를 보자.

북한 김정은 당 총비서는 10월 17일 조선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해 “우리 군대는 대한민국이 타국이며 명백한 적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새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고 10월 18일 북한 노동신문이 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남북 간 사상·제도 경쟁
먼저 국가들 간의 관계에는 어느 한 측의 존재 자체가 다른 측에 위협이 되는 관계가 존재한다. 유감스럽게도 남북관계가 그런 관계다. 두 국가 간 사상·제도의 차이는 상대 측 사상·제도 자체가 우리 측 사상·제도에 대한 위협, 즉 내부 질서의 정당성에 대한 위협을 제기하며, 체제 전복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을 만들어낸다. 한 측의 사상·제도가 상대적으로 번성할수록 다른 측의 사상·제도에 대한 국내적 정당성은 위협은 증가한다. 이 때문에 사상·제도가 다른 국가끼리는 상호적으로 상대방의 최악의 의도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제도 경쟁의 치명적 위협은 남북한 경우의 상대적으로 극대화돼 있다. 남북한은 내전형 전면전을 치렀고, 지리적 경계를 공유하며,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인적 연계가 두터운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명적 경쟁 관계에서 만약 한 측이 다른 측이 우세해지는 것을 용납하면 군사적으로 제압당하고, 내정이 불안해지고, 종국적으로 정치체(국가) 자체가 없어질 개연성이 존재한다. 남북 간 적대성과 고도 갈등의 연원이 남북이 사상·제도를 달리하는 분단국가라는 구조적 조건 때문이라면, 이러한 원인 구조를 없애지 않고,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남북 간 심각한 안보 딜레마
다음으로 남북한에 공히 안보를 보장해줄 공동 안보의 틀, 즉 그 안에서 남쪽도 북쪽도 상대방에 대한 안보 우려를 완화한 상태에서 ‘평화공존’을 할 수 있는 안보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첫째, 사상·제도 경쟁을 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양측의 사상·제도가 동일해지기 전에, 즉 어느 한 측이 국가로서 소멸하거나 또는 내부의 사상·제도를 바꾸기 전에, 장기 안정적 공동 안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북한이 하고 있는 것처럼 사상·제도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당한다고 판단하는 측은 생사를 건 군사력 증강과 공격성 강화를 통해 상대방을 결사코 억제 또는 제압하고자 한다. 또한 한국의 대북 화해·협력론자들이 평화와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남북 교류·협력 증진은 사상·제도가 열세인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안보 위협 중 하나다.

둘째, 북한의 과장된, 가히 편집증 수준의 안보 불안감을 완화해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연구자의 일부는 흔히 북한의 ‘피포위 의식’을 거론하며, 북한의 안보 불안이 매우 크며, 이 때문에 핵 개발을 했고, 우리가 북한의 불안을 완화시키면 핵 개발도 포기하고 개혁·개방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안보 불안 편집증에 사로잡힌 공격적 침략국가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들 국가의 경우, 상대 측의 공격에 따른 전쟁 발발 위험을 끊임없이 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언제든지 상대 측을 선제 공격(preemption)할 수 있기 위한 술책이었고, 안보 위협을 거대하게 과장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격적 침략 정책을 정당화하는 책략이었다. 어느 국가든 어느 정도 안보 우려를 가지고 있지만, 안보 편집증에 걸린 국가의 경우 합리적 조치를 통해 그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북 냉전은 격화될 것
객관적으로 해소 불가능한 주관적 안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유형의 국가를 혁명 국가라 한다. 혁명 국가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키자면, 우리가 거의 완전 항복 수준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안보 위협을 과장하는 혁명 국가를 상대로 ‘화해·협력’ 또는 유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성과가 없는 것을 넘어서 극히 위험스러운 정책이다. 예를 들어 2000년대 한국이 ‘화해·협력’이라는 단꿈에 빠져 있을 때, 북한은 이를 역이용해 핵·미사일·사이버 능력의 기초 축성에 성공했다. 또한 혁명 국가와의 외교와 협상은 끊임없이 미로와 교착 상태에 직면한다. 대북한 핵 외교와 협상이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다.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로 남북관계가 완전한 단절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 주위로 몇 달 전 진행해 완성된 철책이 보인다. (뉴스1)
남북한이 앞으로의 정세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관계는 ‘냉전’이다. 국제정치학자 벤저민 밀러(Benjamin Miller)는 냉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언제든지 열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단지 열전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다. 냉전의 특징은 군사 위기가 재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위기가 사전 기획을 통해 또는 우발적으로 전쟁으로 확전할 수도 있는 상당한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북한은 6·25전쟁 이후 1990년까지 이러한 냉전을 겪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남북 간 냉전이 중단된 적이 없다. 북한은 2000년대에도 내면적으로 대남 관계를 ‘적대적 교전 관계’로 보고, 그에 적절한 대남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이 10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 규탄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앞으로 남북 냉전 관계는 과거 냉전 시기보다 훨씬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상대방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패를 서로 가지고 있던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자유와 번영, 인권이라는 패를 가지고 있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사이버 무기라는 패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내정에 치명적 위협이고, 북한은 한국의 국방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다. 북한이 현재 추구하는 목표는 대남·대미 단순 억제를 넘어서는 목표, 즉 제압이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전망이 이러하다면, 한국 내 일부 논자의 ‘남북 두 국가 평화공존 추구 가능’론보다는 김정은의 ‘적대적인 교전국가 관계’론이 보다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정세 판단이 정확할수록 앞으로 정책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북한식 ‘힘의 정치’ 전략
한국이 ‘두 국가 평화공존’ 추구라는 현실 도피를 선택한다면 20년 후 분단 100주년이 됐을 때, 북한이 핵 군사 우세와 핵 사용 협박을 바탕으로 ‘조선반도 평화 체제’를 획득하고, 이에 기초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허울로 한국 정치를 장악할 것이며, 그리하여 포악하고 착취적인 그리고 전체주의적인 한반도 패권 국가가 돼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전략과 사고는 매우 거친 힘의 정치(power-politics)론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논자는 남북한 간 힘의 정치 관점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한국의 대북 전략 사고에서 치명적 약점 중의 하나다.

박 형 중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