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정권과 일본의 정치·외교
중의원 선거 패배로 권력 투쟁 조짐
기시다 대외 정책 계승 속 대북 관계 주목
10월 27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가 집권 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는 결과로 끝났다. 자민당의 변화와 쇄신, 대외 정책에서는 아시아판 NATO, 핵 공유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했던 이시바 정권은 출범 이후 한 달 만에 위기에 빠졌다. 이시바 정권 출범 이후부터 중의원 선거까지의 동향, 이시바 정권의 대외 정책에 대해 평가와 전망, 이시바 정권기의 일본과 한반도 관계 등을 살펴봤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1년 안에 물러날 수 있다.” 전 자민당 부총재 아소 다로(麻生太郎)가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2위를 차지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의원에게 한 말이다. 아소의 말대로 자민당 역사에서 3년 이상 총리를 지낸 사례는 7명밖에 없다. 일본 정국은 그의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중의원 선거의 패배로 벌써 자민당 내에서는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는 당의 간판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중의원 선거 직후 이시바는 사임을 부인했지만, 조만간 차기 자민당 총재 자리를 두고 당내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임에 분명하다. 그 때를 가늠하자면 내년 3월 예산안이 확정되고 참의원 선거가 시야에 들어오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시바 시게루(오른쪽에서 세 번째) 일본 총리와 새로 임명된 각료들이 10월 1일 일본 도쿄 이시바 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자민당과 민주당 이합집산 펼쳐지나
일본 국회로 시선을 돌리면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소수 여당인 이시바 정권의 자민당은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야당의 상황을 보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250석으로 과반을 차지해 의석수로는 정권 교체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 간의 후보 단일화는 289개의 선거구 중 53개에 그칠 정도로 야당 간의 결속력은 느슨하다. 이를 토대로 일본 정국을 예상하자면,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을 축으로 두고 정책과 의제에 따라 다수파 만들기, 이합집산이 펼쳐지는 형국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유동적인 정국에 처할 수 있는데, 만약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국정 운영이 경색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시바 정권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차기 총리를 노리는 당내 경쟁자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기시다 정권의 대외 정책은 쟁점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중의원 선거 후 국내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기시다 정권의 대외 정책 기조는 지속될 것이다.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정권은 3년 가까운 집권 기간 동안 내정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성과를 남겼다. 미·일 동맹 강화는 물론 국가 안보 전략을 개정해 반격 능력의 도입 및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에 나섰다. 또한 악화 일로였던 한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한·미·일 협력 체제를 재구축했다.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지역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일본 외교의 지역적 지평을 확대했다. 이시바 정권은 이 같은 기시다 정권의 성과를 토대로 같은 방향으로 대외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의원이 10월 9일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해산했다. 이어 열린 총선에서 이시바 총리는 하원 과반수 확보를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AP=뉴시스)
핵 반입·공유? 국민적 저항 일어날 수도
다만 이시바 총리의 지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시바 총리는 9월 27일 허드슨 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정책의 장래’에서 “아시아에는 상호 방위 의무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쉽다”며 “아시아판 NATO를 창설해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의 NATO와 같이 전술핵을 배치하고 미국과 공동 운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판 NATO 창설과 핵 반입·공유가 실현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이시바에게 중의원 선거의 패배는 대외 정책에서 자신의 지론을 추진하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내 정치적 조건을 차치하더라도 아시아판 NATO, 핵 반입·공유는 실현되기 어려운 의제들이다. 일본은 헌법 제9조(전쟁 포기, 전력 및 교전권 부인 조항)의 제약 때문에 NATO 가맹국으로서의 의무를 준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유럽식 집단 안보 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여기에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핵 알레르기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핵무기의 반입·공유가 실제 추진된다면 국민적 저항이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 또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시바 정권기에 일본의 대외 정책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의 지론을 뒷받침하는 문제 의식이 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아시아판 NATO 구상의 근저에는 미·일 및 유사국 간의 안보 협력, 지원에 관한 제도화가 미흡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이시바 정권은 미·일 동맹, 소(小)다자주의의 안보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상호 간의 연계성을 높이려 할 것이다. 둘째, 핵 반입·공유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제력의 신뢰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간 일본 정부는 미국의 핵무기 사용 계획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관여해왔다. 이시바 정권은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일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할 것이다.
이시바, 북·일 국교 정상화 추진하나
이시바 총리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역사 수정주의를 추종했던 아베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2019년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한국의 지소미아 종결 선언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근저이며,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이시바 정권 시기의 한일 관계에서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이 리스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시바 총리의 역사 인식이 일본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다.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이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변함없이 견고하다. 또한 중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이시바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서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지만 협력 강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시아판 NATO 창설과 핵 반입 및 공유와 같은 정책 의제는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다. 그렇지만 이시바 총리의 지론을 뒷받침하는 문제의식은 한국 또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안보 협력의 제도화, 미국의 확장 억제력 문제에 대해 한국은 일본과의 전략적 대화를 활성화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시바 정권은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도 모색 중이다. 이시바 총리는 총재 선거 과정에서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쿄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0월 4일의 소신 표명 연설에서는 “북·일 평양선언의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납치 피해자가 전원 귀국할 수 있도록 하고 북한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임인 기시다 정권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납치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시바 정권 또한 북한과의 대화를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이시바 총리의 대북 정책이 국내 정치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이 발언은 이시바 총리 본인이 ‘북·일 국교 정상화 추진의원연맹’ 소속 의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도쿄·평양 간 연락사무소 설치도 의원연맹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다. 좀 더 파고 들어가 이시바 정권의 자민당 인사를 보면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간사장,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국회대책위원장, 내각에서는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무상,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 등이 의원연맹 멤버다. 이시바 정권에는 당과 내각에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진지하게 고민한 인사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나라가 이시바 정권의 대북 정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윤 석 정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