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10 Vol.217

반달 너머의 ‘통일 온달’을 꿈꾸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남북의 연결다리’로
경기도 연천군 횡산리 마을

횡산리 마을이 속한 경기도 연천군 중면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반달처럼 생겼다.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 지역과 중면을 함께 조망하면 온달 모양이 완성된다. 이곳 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반달이 온달로 변하듯, 남북도 평화통일을 통해 온전한 한 나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냐”며, 분단의 최전선인 횡산리 마을이 앞으로는 남북의 연결다리 역할을 맡게 되길 희망했다.

연천군의 북쪽에 자리한 횡산리는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고 전쟁과 평화를 되새기는 공간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고요한 평온과 불편한 긴장의 공존

횡산리 마을은 여느 산골 마을처럼 푸르고 평온했다. 불과 10분 전 군 초소와 양옆이 지뢰밭인 도로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에서 농업과 목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은금홍 횡산리 노인회장이 마을 뒤편의 야트막한 산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를 넘어서면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남방한계선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3km 정도밖에 안 돼요.” 경기도 연천군 유일의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 내 마을이라는 점을 알려주듯, 마을 초입에 세워진 횡산리 표지석의 뒤편에는 ‘DMZ 청정마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평일 오후의 횡산리 마을은 고요했다. 은금홍 노인회장이 “다 논밭일을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50여 세대가 살았는데, 2010년 군남댐 준공 후 마을 내 수몰 구역이 생기면서 많은 주민이 타지로 나간 끝에 현재는 약 20세대, 50여 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쌀·율무·콩 농사를 짓는데,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40%에 육박하다 보니 논밭을 제대로 돌보려면 외지 인력의 도움이 필수다. 따라서 주민 대다수가 전문 영농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다수 고용하는데, 은금홍 노인회장은 “마을이 민통선 안에 있다 보니 시간적·경제적 손해가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통행증을 발급받은 주민들은 별다른 불편함 없이 초소를 드나들 수 있지만, 외지인은 신원 조회 등의 출입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보통 한 사람당 5~10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10명을 데려오면 길게는 1시간 40분 정도를 초소에서 보내야 합니다. 이 시간 동안의 시급은 지불해야 하는데 실제로 논밭에서 일하는 시간은 줄어드니, 생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몇 년 전 초소를 태풍전망대 앞으로 옮기기 위한 협의를 하고 새 초소를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실제 이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남북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으니, 주민들의 생업을 위한 출입 절차만큼은 군사 보안상 문제가 없는 선에서 간소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횡산리는 연천군 민통선 안에 위치한 두루미 서식지이자, 생태관광의 주요 지역으로 ‘DMZ 청정마을’로 인정받은 곳이다.
은금홍 노인회장은 남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반가워하며 횡산리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접경 지역의 평화를 불러온 반가운 변화

새 정부 출범 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되고 북한이 이에 화답해 대남 소음 방송을 멈추자, 접경 지역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은금홍 노인회장은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 덕분에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인한 지장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같은 접경지 주민으로서 타 지역에서 소음 피해를 겪는다는 소식을 들으며 참 마음 아팠기에, 남북의 확성기 방송 중단 소식이 우리 마을 일처럼 반가웠다”며 활짝 웃었다.

대북 전단 살포가 자취를 감췄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횡산리 마을 주민들은 10여 년 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인한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경험했다. 지난 2014년 10월, 한 단체가 인근 야산에서 대북 전단 풍선을 북쪽으로 날렸다. 그러자 북한군은 풍선을 향해 기관총을 10여 발 발사했으며, 총탄 중 일부는 중면 행정복지센터 주차장과 인근 군부대 지역에 떨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은 대응 사격에 나섰고, 그 사이 주민들은 급하게 민방공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이듬해인 2015년 8월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겨냥한 북한군의 포탄이 날아오고 우리 군이 K-9 자주포로 원점을 타격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때에도 주민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횡산리 마을 탐방 도중 만난 주민 방금순 씨는 “남북이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이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니 정신이 없었다”면서도 “우리 군이 주민들을 잘 지켜줄 것을 알았기에 침착하게 대피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6·25전쟁 참전 용사예요. 국가유공자로서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지만, 머리에 포탄 파편이 박힌 채 평생을 반신불수로 살다가 이곳 마을로 이사 온 지 5년 만에 돌아가셨죠. 그런 남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기에 전쟁의 참담함과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과 2015년에 연이어 군사적 충돌이 있었을 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는데요. 최근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평화통일이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횡산리 주민 방금순 씨는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평화통일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었다.
방금순 씨의 남편은 6·25전쟁에 참전해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였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로 평생을 반신불수로 살아야 했고, 그녀는 그 곁을 지키며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이수석 부면장은 접경의 아픔을 기억하며, 동시에 세계평화정원의 미래를 이야기해주었다.

‘세계 평화의 상징’을 향해 나아가다

마을을 안내해 준 은금홍 노인회장의 배웅을 받으며 민통선 밖으로 나온 직후, 이수석 중면 부면장을 만나기 위해 인근의 중면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마중을 나온 이수석 부면장은 “행정복지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보여줄 게 있다”며 주차장 한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횡산리와 함께 중면에 속해 있는 삼곶리의 주민들을 위한 민방공 대피소가 마련돼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대피소 입구와 불과 한 발자국 거리에 2014년 10월 당시 북한군이 발포한 기관총탄의 낙탄지가 보존돼 있었던 것이다. 이수석 부면장은 “자칫 대피소에 찾아온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며 “남북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공격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껏 접경 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로 불편을 겪었지만, 최근 중면은 이전과는 다른 매력적인 면모를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횡산리 마을의 특산물인 율무로 기력을 보충하며 월동하는 까닭에 일명 ‘율무두루미’로 불리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횡산리 마을을 찾는다. 북한 지역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태풍전망대도 입소문을 탔으며, 더 쾌적한 관광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한 뒤 올 10월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한편 2000년부터 삼곶리에 조성된 임진강댑싸리공원은 작년 22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을 만큼 9~10월 대표 관광 명소로 굳게 자리 잡았다. 연천군은 이 같은 관광 자원을 활용해 중면을 세계평화정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장기적 비전을 수립했다.

“중면을 위에서 보면 반달 모양인데요.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나아가 평화통일이 이뤄진다면 비슷한 모습을 한 군사분계선 너머의 북한 지역과 연계해 전 세계인에게 평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온달 형태의 세계평화정원을 완성할 계획입니다. 그때가 되면 남북 분단의 최전선이었던 횡산리 마을은 남북 연결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평화와 통일의 노력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임진강댑싸리공원은 계절마다 색이 변하는 식물로 시기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연천군청
율무두루미는 매년 연천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번식을 위해 러시아, 중국 등지로 이동한다. ⓒ연천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