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10 Vol.217

‘여성 연대’의 힘으로 통일을 꿈꾸다

광복 80년, 여성이 만들어가는 평화통일

2025년 7월 10일 목요일 아침, 서울 호텔 PJ 카라디움홀에 광복 80주년과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채택, 25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온 민주평통 여성 리더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의는 개회식, 기조 강연, 패널토론, 토크콘서트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회의장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은 한 사람의 발표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진심 어린 경청으로 화답했다.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진 순간순간마다, 모두가 함께 평화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었다.

2025년 7월 10일, 여성 평화통일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여성 리더들이 모였다.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평화의 미래

이날 열린 여성평화통일회의는 여성의 시선으로 평화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 온 경험을 나누며 연대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여성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평화의 미래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삶과 지역 속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개회식에서 권애영 민주평통 여성부의장은 복잡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여성의 연대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별, 세대, 지역을 넘어 우리는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성의 리더십은 돌봄과 협력, 상생을 통해 평화를 지속시키는 힘입니다.” 여성의 시선과 감각, 그리고 실천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평화의 언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회의 전반에 공유된 문제의식과도 일치했다. 회의 전반에 흐른 중심 기조는 바로 ‘여성의 실천’이었다.

여성,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

기조 강연자로 나선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은 ‘광복 80년, 여성이 만들어가는 평화통일’이라는 주제로,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의 도약 속에 묻어있는 여성들의 기여를 조명했다. 그는 “역사는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관한 것이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온 여성의 역할을 되새겼다. 한강의 기적, 정치적 성숙, 교육혁명, 문화강국으로의 성장 등 대한민국의 주된 성취 이면에는 여성들의 참여와 노력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통일 역시 여성의 참여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민주평통을 ‘평화통일을 위한 실험실’로, 자문위원은 ‘그 실험을 수행하는 연구자’로 비유하여, 참석자들에게 각자의 책임과 사명을 일깨웠다.

그는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와 2250호를 언급*하며, 성평등한 참여와 보호, 회복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핵심 조건임을 강조했다. 이 두 결의는 여성을 단지 전쟁 피해자나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분쟁의 예방과 해결, 평화와 안보의 유지 및 증진 과정에서 여성의 평등하고 실질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천명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여성이 평화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현장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는 분쟁 상황에서 여성의 보호를 강화하고, 평화·안보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 참여를 확대할 것을 촉구한 결의이다. 2250호는 청년이 평화 구축과 분쟁 예방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청년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한 결의를 말한다

돌봄과 연대로 싹트는 평화의 길

이어진 패널토론은 ‘광복 80년,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인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박현선 (사)한국가족문화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 중인 세 명의 발표자가 여성의 평화적 역량, 남북 교류, 청년 세대의 참여라는 세 갈래의 주제로 평화통일을 향한 논의를 이끌며 실천적 방향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지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엔 안보리 결의 제1325호가 채택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쟁 해결과 평화 구축의 현장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분쟁은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피해를 안깁니다. 따라서 평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젠더 관점이 반영되어야 합니다.”라며, 여성의 시선이 배제되는 현실을 환기시켰다.

이지순 연구위원은 특히 여성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갈등을 치유하고, 돌봄과 소통의 방식으로 평화를 실천해 온 주체라 말했다. 그는 전국 곳곳에 북한이탈주민과 지역 여성이 맺는 멘토-멘티 관계야말로 평화의 일상적 실천이라는 점을 짚었다. 아울러 여성의 언어로 시작된 평화 담론이야말로 지역 기반의 활동, 공동체 돌봄, 평화교육 등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정책적 뒷받침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다음으로 발표에 나선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남북교류협력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이어갔다. 그는 광복 80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며, 여성의 시각에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구상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여성위원들의 지역 활동을 사례로 들어 “우리가 만나고 나누고 교류하는 것 자체가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라며 여성 간의 교류가 지역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궁극적으로 남북한 주민 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이 교류와 협력의 주체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여성 자문위원들이 주체가 되어 각자의 지역에서 다양한 교류의 장을 주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연대와 실천이 평화통일의 중심입니다.” 연단에 선 권애영 여성부의장이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평화는 여성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이날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은 열정적으로 기조 강연을 펼쳤다.

여성에서 청년으로 확장되는 평화 담론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윤세라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평화 담론의 확장을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를 넘어 2250호, 즉 청년의 평화 참여 확대를 위한 국제 기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청년은 말할 기회를 원하고 목소리를 낼 자리를 원합니다”라며, 현재 평화 관련 담론이 중장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다. 또한 이러한 구조적 배제를 극복하고, 청년이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윤 연구원은 여성 중심의 평화 담론을 청년 세대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주목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 감각에 익숙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대이다. 따라서 기존의 방식에 머무르기보다는 청년의 언어와 감수성으로 평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남북 여성 간 교류 협력이 가지는 기대 효과를 덧붙이며, 청년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방향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네트워크 및 연대 강화 측면에서는 남북의 여성단체, NGO,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국제사회와의 연대 및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청년 참여의 접점을 넓힐 수 있다. 이는 곧 외부와의 접촉 및 정보 교류 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공유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또한 경제적 역량 강화 측면에서도 청년 여성들의 참여 가능성이 크다. 남한의 경우 남북 여성 간 창업, 직업 교육 등을 통한 경제 협력 모델을 통해 청년 여성의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으며, 북한은 시장경제 경험이 부족한 청년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청년 세대의 교류를 기반으로 평화적 공존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통일의식·평화의식 증진 역시 청년 참여가 중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공동의 미래에 대해 청년이 직접 공감하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화는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모두의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윤 연구원은 거듭 강조했다.

‘광복 80년,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토론 좌장 박현선 원장과 세 명의 발표자

평화의 실천이 곧 증언

곧이어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를 주제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는 각 지역 여성위원장들의 생생한 활동 사례가 무대 위에 올랐다. ‘제21기 여성 평화통일 주요 활동’을 되짚으며 그간의 발걸음을 조명하는 자리인 만큼, 지역 활동 우수사례를 통해 여성 평화통일 활동의 지향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그동안 진행된 탈북여성 정착 지원, 인천 지역 학부모 통일 좌담회,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평화통일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었고, 그 속에는 평화를 일상에서 실현해 온 여성들의 꾸준한 노력과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상에서 평화를 확산하고자 진행된 다양한 프로그램들 역시 눈길을 끌었다. 전남 진도에서는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명량대첩체험관 등 역사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며 각자의 평화통일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공감대를 넓히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과거의 전쟁 유산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통일을 향한 대화를 이어간 특별한 시간이었다. 또한 대구 지역에서는 여성위원과 북한이탈주민 40여 명이 함께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저도 청해대 등을 탐방하며, 멘토-멘티 간의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갔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는 다짐이 오간 이번 활동은 남과 북의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따뜻한 동행의 사례로 주목받았다. 한편, 경북에서는 통일염원 합창제를 통해 유달산 스테이션을 찾은 관광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음악으로 평화통일의 메시지를 전했다.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는 통일에 대한 바람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장으로서 기능했다.

현장에서는 ‘여성에게 평화통일이란?’ 질문에 대한 자문위원들의 메시지도 함께 소개되었다. 누군가는 ‘보물섬’이라 답했고, 또 다른 이는 ‘사칙연산’이라 적었다. 덧셈처럼 함께하고, 뺄셈처럼 아픔을 덜고, 곱셈처럼 희망을 키우고, 나눗셈처럼 평화를 나누는 과정이라는 비유는 큰 공감을 얻었다.

또한 ‘피스메이커 버킷리스트’에 적힌 실천 약속들이 함께 낭독되었으며, 두 명의 참가자가 추첨을 통해 ‘피스메이커 상’을 수상했다. 행사는 마지막 순서인 합창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운 금강산’과 ‘우리의 소원’이 울려 퍼질 때,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사라지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평화통일이 더는 머나먼 이상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이 남아 그 울림이 생활로,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모두가 함께 꿈꾼 통일의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현장에 마련된 QR코드를 스캔하여 이벤트에 참여 중인 여성 자문위원들 참가자들이 자신의 실천 약속을 적은 ‘피스메이커 버킷리스트’를 낭독하고 있다.
미니 인터뷰

김미정 민주평통 서울 동대문구협의회 여성분과위원장

“처음에는 평화통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저와는 크게 관련 없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지난 2년간 활동하면서 오늘 같은 회의에 참석하고, 토론과 대담에도 참여하다 보니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더군요. 이제는 평화통일이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먼저 평화의 가치를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오늘 회의에 참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역으로 돌아가 평화를 나눌 힘과 용기를 얻게 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