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동맹 현대화의 도전과 능동적 변환 전략
한미동맹의 분기점, 비용 압박을 넘는 전략적 대응 필요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감축 및 역외 작전 활용 등 동맹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한미 간 위협 인식과 전략 방향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에 따라 한국은 단순한 동맹 유지를 넘어, 자강과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작권 전환과 군사주권 회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북핵 대응과 확장억제의 실효성도 함께 보완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미국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국익을 중심에 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동맹 재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워싱턴에서 시작된 동맹 변화의 파고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맞아 한미동맹에도 지각변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나토에 관철시킨 국방비 지출 기준(GDP의 5%)과 유사한 잣대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국에도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33% 수준이니, 현 국방비를 2배 이상 올려야 하는 엄청난 기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불과 9개월 전에 합의한 방위비 분담 협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현 분담금의 9배에 달하는 100억 달러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한미연합훈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통상적 동맹 활동에 대해서도 비용을 청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부담은 덜고 동맹국에 비용을 압박하며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재정적 압박보다 더 중대한 도전은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 가능성이다. 지난 5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28,500명 가운데 약 4,500명을 괌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최근에는 주한미군 규모를 절반 이상으로 감축해 1만 명 수준까지 떨어뜨린다는 급진적 제안도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이 제안에는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의 선임 고문을 지낸 인사가 관여되어 있어 관심을 끌었는데, 이에 따르면 지상 전투 부대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 대대 등이 철수 대상으로 지목됐다.
아울러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반적인 미군 태세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한미 연합방위태세에도 일대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년간 미국과 일본 간에는 미일 동맹의 일체화와 원활한 공동작전 수행 체계 확립 차원에서 통합군사령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즉, 일본은 2025년 3월 자위대의 통합 운용 강화를 위해 통합작전사령부를 창설했으며, 미국도 이에 상응하여 주일미군사령부를 작전지휘권을 갖춘 명실상부한 통합군사령부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만약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주일미군사령관은 4성 장군으로 격상되는 반면, 주한미군사령관이 3성으로 하락하는 ‘사령부 위상 역전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 기조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상군 위주로 북한 남침 격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주한미군에 비해 주일미군은 해·공군 위주의 기동군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필요시 대만 전구, 동·남중국해 전구에 대응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미국발 동맹 현대화의 모순과 한국의 딜레마

트럼프 시대 한국이 맞이한 동맹 도전은 단선적이지 않다. 첫째, 미국의 대한반도 방위 공약이 약화되는 ‘방기의 위험’ 측면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본토와 중국 견제를 제외한 여타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주된 책임을 감당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주한미군 감축 규모나 감축 대상 부대가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둘째, 원치 않는 강대국 충돌에 한국이 끌려 들어가는 ‘연루의 위험’이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이 “인·태 전략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한반도 역외 작전 활용에 대해 한미 간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동맹의 우선순위에 대한 차이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주둔과 운용에 대한 비용 요구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역할과 용도가 대한민국 방위에서 중국 견제로 중점이 옮겨가고 있음에도 비용 압박이 심해지는 건 논리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맹의 효용(북한 위협 억제)은 감소하는데, 동맹 비용(방위비 증액, 미·중 충돌 연루 위험)은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한미동맹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단순히 비용 압박이나 주한미군 규모의 변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위협 인식과 전략적 방향이라는 동맹의 기본적인 토대에 대해 한미 양국 간에 인식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 대북 방어에서 대중국 견제로 옮아감에 따라 지상군 위주의 대규모 미군 주둔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반도 역외 작전을 위한 기동성과 유연성 확보가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비단 트럼프 행정부에 국한되지 않는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또한 유럽과 같은 무임 승차국은 아니지만, 한국이 그동안 국력 신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에 크게 의지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 주도의 능동적 동맹 변환
그렇다면 워싱턴발 동맹 변화 요구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동맹의 이완과 균열을 막기 위해 한국이 방위비 증액에 대해 양보하거나,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요구에 전략적 동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개진한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 동맹의 결속력과 미국의 대한반도 관여를 담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워싱턴발 동맹 변화를 한국의 양보로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전략적 동조화라는 제안은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이라는 목적과 한미동맹이라는 수단이 전도되어 한국의 전반적 국익에 손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이런 상황에서 동맹의 결속과 효용 유지에 집착한다면 방위비 대폭 증액, 연루 위험 증가 등 막대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해 전반적인 국익의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따라서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미국의 전략 기조 변화를 현실로 인정하는 가운데 국익 중심의 능동적 동맹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 판단된다.
첫째, 한반도 방위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책임을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연합방위에 안주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적어도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해서는 대미 의존도를 낮추고 자강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전작권 전환은 한국의 일방적 요구가 아니라 현재의 동맹 변화 흐름을 활용하여 원만하게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태우 정부 이래 거의 40년 가까이 반복되어 온 시기상조론과 심리적 대미 의존도를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한미군 감축 논의에 대해서도 숫자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전력 감소를 보강하며 자강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스트라이커여단과 포병여단이 감축된다면 한국군의 기동 전력과 대화력전 역량을 보강하면 되고, 북한 핵심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항공 전력과 미사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대미 의존도가 높았던 감시정찰 자산과 미래전에 대비한 드론, 전자전 역량을 보강해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둘째, 자강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 차원의 노력과 대응이 불가피하다. 즉, 정보 공유 확대, 공동 기획, 위기 시 소통체계 확립 등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여나가는 양국의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북핵 위협 고도화로 확장억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으나, 확장억제는 단순한 한미 양자동맹의 이슈가 아니라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확장억제는 미국의 글로벌 동맹의 신뢰성과 비확산 체제의 존속과도 연관된 문제이므로 지나친 비관론보다는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대북 억제 효과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셋째, 중국 견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략 기조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나, 일정한 선을 지킴으로써 연루의 위험을 방지하는 한편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 가지 기준은 주한미군의 일회성 역외 차출은 대북 억지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인정하되, 한반도를 발진기지로 반복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어에 붙박이로 고정시킬 수 없다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되, 한국의 연루 우려를 일정 부분 고려하는 타협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동맹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상대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고,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트럼프 발 동맹 현대화는 한국 안보에 큰 부담을 주는 도전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맹 변화에는 기회의 측면도 존재한다. 즉, 전작권 전환을 통해 군사주권을 온전히 회복하고 국군의 역량 강화로 한국군 주도-미군 지원의 동맹 체제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지나친 위기의식이나 비관주의에 빠질 게 아니라 한미동맹이 미래에도 견고하게 유지되며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기조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한미 양국에 상호 이익이 되는 동맹의 공통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즉, 북핵 억제와 한반도의 안정, 동북아 핵 도미노 차단, 그리고 역내 세력균형의 급격한 변화 방지는 워싱턴과 서울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계속될 양국의 공통 국익이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대전환 시대를 맞아 인·태 지역의 군사적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현실을 수용하되, 동맹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트럼프 발 동맹 변환에 전향적·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