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평양냉면의 남한 정착기
다양한 브랜드와 트렌드로 남한에서 꽃피우다
남한에서 자리 잡은 평양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역사와 문화, 이산의 아픔이 담긴 특별한 존재다. 6·25 전쟁으로 남하한 실향민들에 의해 전해진 이 음식은 남한에서 변형과 발전을 거듭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됐다. 이제는 남북을 잇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평양냉면. 그 깊은 맛 속에는 한반도의 지난 역사와 미래의 희망이 담겨 있다.

평양냉면의 기원과 전통
평양냉면은 조선시대부터 평양 지역에서 겨울철에 먹던 음식이었다. 주재료인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었고, 이에 메밀국수를 주식으로 하는 음식 문화가 자리 잡았다. 초기의 평양냉면은 육수 없이 비빔 형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평양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와 면에 있다. 소뼈와 돼지뼈, 닭고기 등을 고아 만든 담백한 육수는 한층 깊은 맛을 내며,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은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럽다. 과거에는 동치미 국물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고명으로는 삶은 고기와 오이, 배 등을 올려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완성했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전쟁을 피해 남하한 수많은 피난민 가운데 평양 출신의 요리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남한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만들어 팔았고, 그중 하나가 평양냉면이었다. 전쟁 직후 남한에서 냉면은 귀한 음식이었다. 당시 남한은 전쟁으로 인해 식량난이 극심했고, 메밀과 같은 곡물은 물론 기본적인 식재료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메밀이 귀한 상황에서 감자 전분을 섞어 면을 만들었고, 육수도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평양냉면은 서서히 남한의 입맛에 맞춰 변형되었다.
남한에서 자리 잡은 평양냉면
남한에서는 전통적인 평양냉면 육수를 재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동치미 국물보다는 소고기 육수를 중심으로 한 방식이 정착되었다. 또한 메밀보다 감자 전분 비율이 높은 면이 사용되며 쫄깃한 식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서울식 냉면은 평양냉면과 달리 육수가 짜고 달며, 고명으로 삶은 달걀과 고추기름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50년대 이후 남한에서 냉면이 보편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전쟁 후 부족한 식재료를 보완하기 위해 감자 전분을 이용한 면이 개발되었고,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육수는 간장과 설탕을 가미해 더욱 진하고 강한 맛을 띠게 되었다. 이후 서울 지역의 식당들이 냉면을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서울식 냉면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남한 사람들의 강한 맛 선호 경향과 맞물려 발전하게 되었다.
평양냉면의 대중화와 현대적 변화
1980년대 이후 평양냉면은 방송과 언론을 통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유명 평양냉면 전문점이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평양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남북 화합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남한에서는 평양냉면을 즐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며 하나의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제 평양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현재 남한에는 정통 평양냉면을 표방하는 다양한 전문점이 있으며,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냉면집도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기존의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미한 현대적 평양냉면이 진화해 맛은 더욱더 특별해지고 풍미는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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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천면옥(경기도 평택시)
평양 출신의 이윤선 대표가 운영하는 정통 평양냉면 전문점. 이 대표는 평양 통일거리에서 냉면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옥류관 주방장에게 육수와 면 제조 비법을 전수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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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도(경기도 고양시)
북한 국영 식당의 총주방장을 역임한 조리장이 운영하는 평양냉면 전문점. 메밀 함량 80%의 면과 소·돼지·닭 육수를 사용한 깊은 맛의 육수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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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눈(서울시 서초구)
1977년부터 북한에서 평양냉면집을 운영하던 대표가 한국으로 와서 개업한 곳으로, 평양 고려호텔의 레시피를 재현한 ‘고려 물냉면’을 제공하고, 계피 향이 도는 국물과 메밀 향이 강한 쫄깃한 면발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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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밥상(경기도 고양시)
북한 대표 음식점인 옥류관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따뜻한 들깨죽을 식전으로 제공하며, 사태 수육이 올라간 평양냉면이 인기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