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국제정치
미국 우선주의가 초래할
글로벌 혼돈과 한반도 안보의 미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국제질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한 그는 불법 이민 단속, 중동전쟁 종식, 중국과의 무역전쟁 심화를 추진하며 기존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군사 개입을 줄이고 미·중 경쟁에 집중하는 동시에 동맹국과의 협력을 축소하는 대외정책은 글로벌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정세 또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질서를 안정시킬지 혼란을 가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채 백일이 되지 않았으나, 국제정세는 매일 혼돈 상태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선거 기간 동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 하에 미국 유권자의 대내적 결핍을 활용한 포퓰리스트 내셔널리즘의 정책 공약을 쏟아낸 바 있다. 선거 기간 동안 특히 강조한 것은 미국의 국경보호와 불법이민자 추방, 중동전쟁 종식,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이었다. 이는 미국이 지난 반세기 넘게 유지해 온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공고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 지극히 내향적인 미국의 국가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공약이었다. 물론 선거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유권자들은 대외정책보다 대내정책을 중시하며, 특히 경제문제가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과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공개한 정책들은 지극히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조는 오히려 미국을 약화시키며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추동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 대외정책의 특징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자제(restraint)를 통한 위기 고조 억제 및 예방이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의 미국이 국제질서 속 우위(primacy) 지위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현상 변경 강대국과의 군사적 위기 고조는 부적절하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강력한 억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허용한 대러 장거리 미사일 사용제한 해제 조치와 관련해 불필요하게 러시아와의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켰다며 비판한 바 있다.
둘째, 축소(retrenchment) 대외정책 기조 속에 트럼프 행정부는 불필요한 분쟁 개입을 중단하고, 미·중 경쟁을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여 이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는 사실 트럼프 행정부에만 국한된 특징은 아니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중동지역에 대한 관여를 축소하며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인데,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을 마주하고 있어 더더욱 축소적 대외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이는 미국 국방부 내에서 오랜 시간 논의됐던 전략적 파산(strategic insolvency)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즉 두 개의 전구에서 전쟁이 발생할 시 미국이 모두 승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를 위한 전략과 역량이 갖춰져 있는가의 문제인데, 현재 미 국방부의 판단으로는 전략과 역량 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동맹국과의 안보 분담과 동맹국의 국방비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원하는 안보 분담은 단순히 비용 분담을 넘어서 실질적인 역할 분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미·호 동맹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핵 억제력과 호주의 재래식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역 내 집단 방어(collective defense)를 구축하려는 노력과 같이 지역별로 동맹국의 거부억제 역량과 미국의 처벌억제 역량, 그리고 역할의 조합과 통합을 통해 역량 기반 지역 안보 아키텍처를 구축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가치외교의 방기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국들과의 협력을 독려하며 권위주의 현상 변경 국가들, 즉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도발에 집단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또한 유사 입장국들이 공유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가치뿐만 아니라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이 유지해 온 국제질서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을 무력으로 침범한 사건으로,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의 많은 전쟁범죄 증거를 확보했고, 역내 미국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유럽에서의 현상 변경을 막으려 노력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aggression)이라는 표현 대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갈등(conflict)이라고 표현했고, 러시아와의 일방적인 종전 협상 과정에 우크라이나는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는 광물 협정 체결을 협상하며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의 희토류 채굴 이권 50%를 확보하려 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오히려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를 대담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미국의 동맹국들은 판단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유럽 안보 공약이 약화함에 따라 유럽 주도의 핵 확장억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미국의 권력은 군사력과 경제력뿐만 아니라 규범과 제도적 권력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자발적 방기는 결국 미국 국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력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도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또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다극화되고 분절화된 질서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강대국 관계 설정과 한반도로의 함의
위와 같은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 속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경쟁에 집중하고자 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를 팽창주의적 정책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며, 미국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어떠한 접근법도 채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축소 대외정책 기조 속에서 미국이 집중해야 할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으며, 그 우선순위는 미·중 경쟁에서의 우위 확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우선 불필요한 분쟁에 대한 관여를 철회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바로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단기간에 종전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는데, 현재의 미·중 경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러시아를 대중국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미국과 러시아의 최우선 협의 현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기도 하지만, 미·러 핵 군축조약 재협상이 더 시급할 것이다. 현재의 핵 안보 지형은 비대칭 핵 다극체제로 재편되고 있고, 특히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미·러 간 핵 군축 협상에 중국을 포함해야 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미·러 간 핵 군축 조약 협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그간 진척이 어려웠는데, 인공지능 등 신기술 발전으로 촉발된 전략적 안정성 약화의 문제를 포함해 양국 간 논의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미·러 관계 정상화가 강대국 경쟁의 맥락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특히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24년 10월 우크라이나 전선에 특수부대 등 12,000여 명(4개 여단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올해 초에는 1,500여 명을 증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북한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대미·대남 레버리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취약한 대내적 내구력을 공고화하려는 조치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이후로도 현재의 북·러 제휴 수준이 지속될 것인지 아닌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미·러 관계 회복을 통해 대중, 대북 관계에 대한 레버리지 마련을 목표로 할 것이나,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관계 유지를 통해 대미 레버리지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제휴가 북핵의 암묵적 동의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 역시 대러, 대미 레버리지 확보 차원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세 강대국의 전략적 계산은 궁극적으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화를 심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렇다면 한국의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정책도 동력을 받기 어렵게 될 것이며,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대북정책이 북핵 위협 감소 수준에 그칠 경우 한반도 안보 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 2기, 미국의 우위 회복 가능할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여러 측면에서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 또한 취임 이후로 쏟아내는 각종 행정명령과 정책들로 바이든 행정부의 유산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미국에 이익이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추구해야 할 이익을 기존의 대통령과는 달리 정의하고 있으며, 국제주의에 대한 반감과 미·중 경쟁의 우선순위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주의적 접근법이 맞물려 현재 상황을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미 바이든 행정부 당시 협력했던 유사 입장국들과의 연대는 약화되고 있고, 이는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내러티브가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의 우위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