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04 Vol.214

화마가 할퀴고 간 ‘절망’에서
탈북으로 찾은 ‘희망’ 한 걸음

안성민 대전 모란봉교회 전도사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얼굴과 두 손을 덮은 화상은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6부 선발과 위병장 승진으로 앞날이 밝았던 군인에겐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그러나 한때 그를 옭아맨 상처는 오히려 세상을 바로 보게 했고, 마침내 탈북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바로 대전대흥침례교회 안의 탈북민교회인 모란봉교회에서 북한이탈주민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안성민(39) 전도사가 걸어온 여정이다.

"평화통일은 제 삶에 주어진 사명이죠."

굳게 믿었던 신념의 실체를 마주한 순간

북한 평양시 강동군에서 출생한 안성민 씨는 출신 성분에 따라 무려 약 51개로 나뉘는 세부 계층 가운데서도 제1계급이자 상류층인 기본 군중이었다. 자연히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하고 체계적인 우상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자못 특별한 성장 과정으로 14세 무렵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6부 선발 기회를 얻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1987년 11월 대한항공 858호기 폭파 사건 등을 주도한 부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3년간 집안 내력 조사, 더욱 심화한 우상화 교육, 극강의 특수훈련, 연 1회 신체검사 등을 거쳐야 했다”라고 술회한다.

그러나 10년 간의 군 복무 기간은 누구보다 공고하게 믿었던 신념이 단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 시기였다. 결정적인 계기는 복무 5년 만에 위병장 승진을 거쳤을 때 발생했다. 2011년 5월 새벽 1시 내무반 건물 2층에서 전기사고로 화재가 일어났는데 불이 출입구를 막아 모든 대원이 살기 위해 창가에서 뛰어내려야 할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죠. 불이 나면 상식적으로 인명 구조가 먼저잖아요. 그런데 당시 저는 우상화 교육을 받은 대로 살려달라는 대원에게 화마 속에 있는 김정일 일가 초상화부터 구하라고 외쳤습니다. 심지어 직접 물을 뒤집어쓰고 들어가 초상화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화마가 아른대는 현장에서 문을 열었을 때 들렸던 폭발음을 끝으로 안성민 씨는 정신을 잃었다. 훗날 들은 바에 의하면 뒤따라온 대원이 그를 내보내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을 벗어난 운명이 탈북민을 돕는 사명으로

극적으로 생존했지만, 불길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은 결국 밝은 내일을 그리던 청년의 얼굴과 두 손에 남았다. 그간의 공로로 당연히 받아야 할 영예군인증마저 무려 미화 300달러의 뇌물을 원하는 당 간부의 요구에 포기해야 했다. 안성민 씨는 “주입 받은 사상의 실체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외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가 목숨을 건 탈북에 나선 배경이다.

2015년 6월 드디어 도착한 대한민국에서 잠시 방황했지만, 곧 신앙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찾았다. 희망의 끈을 다시 잡고 보니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에게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남북하나재단과 한림화상재단의 탈북민 의료비 지원으로 화상 상처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2020년 3월에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고 지금은 대학원 학위과정을 수료 중이다. 2021년엔 결혼해 두 아이의 아버지로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대전 모란봉교회에선 사역으로 탈북민의 남한 정착과 정서적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신앙생활은 자칫 한국 사회에서 고립 상태에 머물기 쉬운 탈북민들이 폭넓게 소통할 창구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서로 대화 나누며 탈북 과정 중 경험한 심리적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못 긍정적입니다.”

아울러 그는 대학 북한선교동아리 노스 코리아 미션(North Korea Mission, NKM)을 만들어 남북한 대학생이 함께 기도하고, 북한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 5월부터 탈북민 2세를 대상으로 1박 2일 통일캠프를 진행해 오고 있으며, 해마다 개최할 계획이다.

“북한을 떠나올 때 저는 ‘쓸모없어서’ 버림받았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았습니다. 탈북을 결심하고, 우리나라에 온 저의 운명은 곧 평화통일을 이루는 사명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