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을 버티게 해준 ‘긍정’과 ‘끈기’
이젠 ‘평범’ 속 ‘행복’한 미래를 꿈꾸다
조현정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 부연구위원
탈북과 북송, 각고 끝에 밟은 한국 땅에서 치열하게 버티며 보람을 일궈낸 순간들. 먼 길 돌아 도착한 대한민국에서 남북을 잇는 연구로 통일한국을 꿈꾸고 있는 조현정 박사를 만났다.

처음 만난 대한민국
조현정 박사는 1997년,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했던 중국에서 ‘진짜 대한민국’을 처음 알게 됐다. “북한에서는 남한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만 들었는데, 중국에서 한국 미디어를 접하며 ‘저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깨달았죠.”
그때쯤 조현정 박사의 전부였던 외할머니가 북한에서 기아로 돌아가셨다. “아픈 어머니 대신 젖동냥으로 키워 주신 분이에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지금의 저라는 존재를 만든 분이죠. 할머니에게 이밥(쌀밥)에 고깃국 대접하는 게 제 꿈이었는데 그걸 못해 드렸어요.”
북한에 돌아갈 이유가 사라지자, 조현정 박사는 불법 체류 중인 중국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채 동남아와 중국 국경을 떠돌다가 결국 북송되고 만다. 포기하지 않은 조현정 박사는 보위부 구류장에서 출소한 후 다시 향한 중국에서 브로커를 구해 2003년, 드디어 대한민국 땅에 다다랐다.
긍정과 끈기로 대한민국에 터를 잡다
도착한 한국에서 조현정 박사는 빠르게 적응했다. “큰 혼란을 겪지는 않았어요.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미 자본주의와 현대적인 대도시를 경험하기도 했고, 드라마 속 화려한 삶은 드라마 속 이야기라는 점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정착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보험 영업 일을 구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 계약 따기가 어려웠고, 월급이 적으니, 새벽부터 밤까지 여러 부업도 병행해야 했다. 사투리를 고치는 일도 큰 난관이었다. “젓가락을 물고 신문 읽는 연습은 기본이었고, 아나운서 스피치학원에 등록해 발음 교정도 받았죠.”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건 긍정과 끈기였다. “‘보험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팔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못해낼 일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버텼지요.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많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을지언정 빚은 없으니 괜찮다고 저를 다독였어요.” 그렇게 노력한 끝에 보험 영업을 은퇴할 때는 월 800만 원 수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북한, 통일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이 되다
공부하는 삶을 시작한 건 한국에 도착한 지 5년째가 되던 해의 일이다. “‘부자’라는 목표가 문득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얼마나 가져야 부자인지, 그 기준은 각자 다르잖아요.” 그때 북한에서 못다 한 공부가 생각났다. 대학에 진학했고, 그 길이 북한 교육 연구로 이어졌다. “‘탈북청소년의 학교생활’을 주제로 교육학 학사 졸업 논문을 쓰면서 제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북한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24년 1월에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좋은 결실로 이어져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임용되었다. 북한이탈주민 당사자로서 북한을 연구하는 강점을 조현정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남한에서 성장한 북한 연구자들이 북한이탈주민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언어는 그 나라 사회와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존 연구와 이론 공부를 통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자 항시 노력하고 있는 조현정 박사다.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 속 그리는 미래
요즘 조현정 박사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들과 보내는 일상이다. “사실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밖에 없어요. 북한을 떠난 이후에는 줄곧 중국과 동남아를 떠도느라, 한국에서는 돈 벌고 공부하느라 세심하게 돌봐주지를 못했으니까요. 최근 아들이 취업하고 중고차 한 대를 샀는데, ‘엄마, 모시러 갈까요? 엄마, 오늘은 제가 밥 살게요!’ 전화 걸곤 해요. 그런 순간들이 참 소중하죠. 가장 어려운 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 같아요.”
어렵게 일군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에서 조현정 박사는 이제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통일이 된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기여하고 싶습니다.” 조현정 박사의 발걸음을 따라 자분자분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