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55마일
② 강원도 양구
피로 지킨 땅
평화로운 생태 터전이 되다
봄기운이 완연한 서울을 떠나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초입에 들어섰을 때 처음 시선을 붙든 건 눈으로 뒤덮인 산등성이였다. 강설량이 많고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양구는 봄이 늦게 찾아온다. 3월 초순까지 눈이 녹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양구에 들어서자 바로 그 풍경이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병풍처럼 드리운 대암산 능선 위, 왼쪽으로 길게 뻗은 도솔산 줄기 위가 온통 눈밭이다. 웅장한 산줄기 굽이굽이 펼쳐진 설경은 평화로움을 넘어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했다.
양구전쟁기념관 앞에 설치된 ‘지뢰 주의’ 표지판.
양구 펀치볼·도솔산지구 전투 전적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조명한 격전의 현장
6·25전쟁은 이 아름다운 땅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뻗은 도로를 달리니 전적비 행렬이 이어진다. 펀치볼 지구 전투 전적비, 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 도솔산 지구 전투 위령비, 백석산 지구 전투 전적비, 방산면 장령리 위령탑…. 비석과 탑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 가운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배경으로 알려진 ‘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피의 능선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 능선을 일컫는다. 1951년 8월, 국군 제5사단 36연대는 이곳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수십만 발의 포탄이 쏟아졌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이 참혹한 모습을 취재한 미국인 종군기자가 ‘피의 능선(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이 일대가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 전투의 승자는 국군이었다. 국군은 북한군을 펀치볼 북쪽 능선까지 밀어내고 백석산과 대우산 사이 측방도로를 확보했다. 피의 능선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담은 영화가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다.
현재 피의 능선은 비무장지대(DMZ)에 해당돼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다. 대신 양구군 동면 월운저수지 앞 언덕에 세워진 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넋을 기릴 수 있다.
포탄과 지뢰 골라내며 농토 일군 펀치볼 마을 주민들
이번엔 6·25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또 다른 공간인 펀치볼 마을로 향한다. 행정구역으로는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현리·오유리 일대. 해안면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는 면(面)이다. 면적(23㎢)은 서울 여의도(4.5㎢)의 약 5배로, 해발 1,000m가 넘는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가칠봉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화채 그릇(Punch Bowl·편치볼) 같다”고 한 데서 ‘펀치볼 마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도솔산 전투, 대우산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양구 지역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를 총망라해 소개하는 양구전쟁기념관 뜰에 옛 무기가 전시돼 있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 수는 470여 가구, 1,700여 명. 군사분계선과 맞닿은 지역에서의 삶은 어떨지 들어보기 위해 펀치볼 마을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한 현2리를 찾았다. 마을회관 인근에 붙은 빛바랜 아크릴 표지판 위에 ‘지뢰 주의’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왠지 떨리는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정충섭(67) 현2리 이장이 다가왔다.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으셨죠?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을 안팎을 오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민간인 출입 통제가 워낙 심해서 고개 하나 넘는 사이에 검문만 세 번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주민들도 늘 출입증을 갖고 다녔어요.”
정 이장의 설명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현2리를 포함한 해안면은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이 통치했다. 6·25전쟁 당시 뺏고 뺏기는 8번의 전투 끝에 우리나라 영토로 편입됐지만 땅은 황폐해졌다. 전쟁이 멈췄을 때 해안면 토지 소유주 80% 이상이 북으로 피난을 떠난 상태였다. 이들이 휴전선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서 일대에 960만6,809㎡에 달하는 무주지(국제법상 어느 나라 영토에도 포함되지 않는 지역)가 생겨났다. 정부는 이 땅을 관리하고자 이주자에게 경작권을 주는 정책을 폈다. 1956년 4월, 160세대 946명이 해안면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황무지에서 포탄, 지뢰를 골라내고 농토를 개간하며 삶의 터전을 가꿨다.
청정 자연에서 인삼·사과 재배하며 키우는 ‘부농의 꿈’
1956년 현2리에 정착한 1940년생 라풍흠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때는 트랙터는커녕 경운기도 별로 없던 시절이에요. 소달구지는 힘이 약해 땅에 박힌 버드나무 뿌리 하나 제대로 뽑기 어려웠고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먹고살자면 농토가 필요하잖아요. 목숨 걸고 땅을 일굴 수밖에요. 숱하게 넘어지고 굴렀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어요. 척박한 땅에 감자, 옥수수, 콩을 길러 먹으며 버텼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펀치볼 마을은 친환경 농경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이제 주민들은 수십 년에 걸쳐 가꾼 대규모 농경지와 풍부한 산림 및 수자원을 바탕으로 인삼·사과를 재배하며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9℃ 안팎인 펀치볼 마을은 고랭지 채소 재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충섭 이장은 “우리 마을 시래기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아느냐”며 “고랭지에서 무청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아주 부드러워져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시 찾는 지역 특산품이 됐다”고 자랑했다.
2011년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DMZ 펀치볼 둘레길’도 조성됐다. 평화의 숲길(14㎞), 오유밭길(20.1㎞), 만대벌판길(21.9㎞), 먼멧재길(16.2㎞) 등 4개 구간 72.2㎞로 구성된 ‘국가 숲길 1호’다. 이 길을 걸으면 잘 보존된 DMZ 숲 생태계를 감상하며, 전쟁의 흔적을 돌아보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 특히 높은 산을 사방에 두고 오목하게 들어앉은 분지 형태의 마을 풍경이 기가 막힌다.
한 공간에 어우러진 남북 동식물
양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또 있다. 양구수목원이다.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대암산 해발 450m 자락에 위치한 이 수목원은 웅장한 산세와 어우러진 외관부터 탄성을 자아낸다. 볼거리도 풍부하다. 이름은 수목원이지만, 전시물이 식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DMZ야생동물생태관에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산양을 비롯해 DMZ 중부지역과 두타연(계곡)·대암산 일대에 자생하는 희귀 야생 동식물을 한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DMZ야생화분재원도 빼놓으면 안 된다. 이곳에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대암산 용늪에 서식하는 금강초롱, 백두산 인근에서 자라는 백두산구철초 등 남북의 진귀한 식물이 보존돼 있다. DMZ 인근에 서식하는 애기목련, 향나무, 동백나무 등을 보존·증식하기 위해 만든 분재에서도 눈을 떼기 힘들다. 군사분계선을 코앞에 둔 분단의 현장이지만 남북 동식물만큼은 한 공간에 어우러져 함께 숨 쉬고 있었다.
DMZ 인근에 서식하는 남북 동식물을 관람할 수 있는 양구수목원 입구.
함께 둘러보면 좋은 양구 여행지
양구전쟁기념관
도솔산 전투, 대우산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백석산 전투, 가칠봉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949전투,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양구군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를 총망라해 소개하고 선열의 희생정신과 업적을 기리려는 목적으로 개관했다. 전시장 내부는 무념의 장, 환영의 장, 만남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확인의 장, 추념의 장, 사색의 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양구통일관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를 고취하고 북한의 실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통일교육의 장이다. 북한의 생활용품, 수출품 등과 각종 사진을 살펴볼 수 있다. 양구통일관 인근엔 1990년 3월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 ‘제4땅굴’과 금강산 비로봉 등 내금강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가 있다. 양구통일관에서 이곳 출입 관련 업무도 처리한다.
국립DMZ자생식물원
DMZ는 희귀 야생동식물이 다수 서식하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이곳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자원을 수집·보전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DMZ 분포 식물의 61%에 해당하는 1,1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함박꽃나무, 가침박달, 설앵초, 갯활량나물, 애기자운, 너도개미자리, 백두산떡쑥, 오랑캐장구채, 만병초 등 다양한 식물을 계절별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