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교육현장
기차 타고 개성 여행, 나진항에서 광물 발굴…
3차원 메타버스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
“북한 땅을 한번 밟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1월 초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타워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철책선 너머 펼쳐진 북쪽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 통일된 한국에서 북녘 땅을 여행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놀라운 건 기약 없는 바람으로 그칠 줄 알았던 이 꿈이 얼마 전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평양 올레길을 걷고, 고려 옛 수도 개성에서 역사 퀴즈를 풀고, 신의주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국제무역항구 나진항에서 북한 광물자원도 발굴했다. 이 모든 체험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건 메타버스 플랫폼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다.
국립통일교육원이 선보인 첫 메타버스 통일 교육 콘텐츠
메타버스는 가공,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쳐 만든 말로,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국립통일교육원은 1월 20일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북한 평양·개성·신의주 등 다섯 개 지역을 본떠 만든 가상의 공간을 구현했다. 이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각종 미션과 이벤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구성한 콘텐츠가 바로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다. 이 메타버스에서는 △기차를 이용한 도시 간 이동 △각 도시 지리·역사·문화를 배경으로 한 미니게임 △북한 관련 퀴즈 풀이 등을 할 수 있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10대와 20대라면 특히 더 흥미를 느낄 만하다.
기자는 모바일 환경에서 가상 통일 한반도를 체험하고자 로블록스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회원 가입 후 처음 한 일은 3차원 아바타 생성. 현실의 ‘나’를 대신해 통일 한반도를 여행할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취향에 따라 얼굴과 머리 모양, 체형, 의상 등을 고르자 아바타가 완성됐다. 아바타 모양은 체험 도중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가상의 나’를 좀 더 멋지게 꾸미고 싶다면 역사퀴즈 같은 미션을 수행하거나 이벤트에 참여해 코인을 모으면 된다. 코인이 있으면 기본형보다 더 멋진 머리 모양, 액세서리, 의상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기차로 북한 곳곳 여행하며 퀴즈 풀고 미션 참여
이제 통일 한반도 여행을 시작할 때다. 개성행 기차에 오르자 “북한에서는 양배추, 파란 토마토, 가지 등의 재료로도 김치를 만든다”, “남한 면적은 북한의 면적보다 크다” 등의 OX 퀴즈 문항이 화면에 등장한다. 정답을 맞히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상으로 코인도 얻었다.
아바타가 처음 도착한 곳은 개성의 한 거리. 여러 건물 사이로 유리 궁전 형태의 개성역사(驛舍)가 보인다. 언젠가 언론 보도에 등장했던 개성역 풍경 그대로다. 이 메타버스에서는 고려 태조가 창건해 거처한 것으로 알려진 만월대도 둘러볼 수 있다. 만월대를 둘러싼 성벽 안으로 본궐이 자리 잡고 있어 실제 만월대에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이 느껴졌다. “역사책에서 본 만월대 풍경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이곳은 보물 다섯 개가 걸린 체험 공간이다. 게임을 통해 ‘일휘문 수막새’를 아이템으로 획득했다. 일휘문 수막새는 기왓등 끝에 사용한 기와로, 만월대 발굴 과정에서 실제로 출토된 유물이다.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 속 개성역 모습(왼쪽)은 실제 개성역을 본떠 만들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다시 기차에 올라 지도를 보고 무역도시로 불리는 ‘나선’을 눌렀다. 북한의 북동부 끝에 있는 나선의 과거 이름은 나진이었다. 이곳엔 국제무역항구 ‘나진항’이 있다. 현장에 가니 많은 아바타가 모여 있었다. 기자도 게임 공간에 입장해 트랙터를 운전하며 광물을 발굴, 코인을 얻었다. 각종 퀴즈와 미션에 참여하며 북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 가상 통일 한반도에서의 체험이 만족스러웠다.
국립통일교육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구현한 통일 교육 콘텐츠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 화면.
기차를 타고 북한 곳곳을 여행하는 방식인 이 메타버스는 다양한 미션을 통해 참가자가 북한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쉽고 재미있는 북한 공부 … 통일 필요성 이해하게 돼”
통일부가 콘텐츠 수요층으로 기대한 10대와 20대 반응은 어떨까. ‘통일 한반도, 또 하나의 세계’를 체험한 초등학생 최인호(12) 군은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병 속에 든 편지를 확보하는 미션을 통해 고려 역사를 알게 됐다. 북한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학생 허연수(20) 씨는 “평소 북한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통일의 필요성도 깨닫기 어려웠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북한과 통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명 모두 이 콘텐츠에 대해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평했다. 국립통일교육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변화하는 교육 환경을 반영해 새로운 형태의 통일교육 콘텐츠를 계속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