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본 안보 3대 문서 개정과 한반도 정세
국방 예산 증액, 반격 능력 보유 선언…
새로운 한일관계 시험대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국가안전보장전략(NSS)’을 비롯한 세 가지 정책문서 개정을 결정했다.
그 내용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일본이 제2차 아베정권 때인 2013년 12월 17일 제정한 ‘국가안전보장전략(NSS)’은 일본 국가안보에 관한 최상위 정책문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NSS 개정을 결정했다. 9년 만의 일이다. 이 외에 방위 목표와 달성 방법 등을 제시한 ‘국가방위전략’, 자위대 체제와 5년간의 방위비 총액 및 주요 장비 수량을 담은 ‘방위력정비계획’은 4년 만에 개정했다. 이 두 문서 이름은 과거 ‘방위계획의 대강(방위대강)’과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이었는데, 일본이 동맹국 미국 전략문서와의 정합성을 고려해 이름을 바꿨다.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 규정
일본 정책문서 개정 배경에는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해지는데 자위대의 대응 능력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NSS는 중국과 북한 등의 군사 위협에 직면해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를 비롯해 “최악의 사태도 상정한 대비를 반석처럼 만들어” 일본의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기존 국제질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일본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자국에 바람직한 안전보장 환경을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강력한 외교를 전개해야 하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위력의 보유야말로 이러한 외교 기반을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전후 일본의 안보 정책을 실천 면에서 크게 전환하는” 문서 개정을 통해 일본의 국익, 즉 국가안전보장의 목표와 과제를 달성하고 좀 더 자립적인 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안보(방위) 담당 주체를 방위성과 자위대에서 정부 모든 부처로 확대하고, 특히 해양 권익 수호를 담당하는 국토교통성 산하 해상보안청과의 연계를 명확히 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NSS를 제정한 2013년 12월 당시 일본은 자국을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에 “한층 엄중함이 더해지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런데 9년 사이에 이 표현이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심각함의 정도가 커진 셈이다.
개정 NSS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다. NSS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강화”하는 중국을 “지금까지는 없던 최대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이 “종합적 국력과 동맹국·동지국 등과 연계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이 대만 통일을 위한 “무력 행사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면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에 급속하게 고조되고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북한에 대해서는 미사일 관련 기술과 운용 능력의 급속한 발전을 고려하면 북한 군사 동향이 일본의 안전 보장에 있어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이라고 썼다.
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 · 일 외무·국방 각료회의,
이른바 ‘2+2’회담이 끝난 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지난해 11월 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
3자 대담 이후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왼쪽)과 사무엘 파파로 미국
태평양함대사령관(가운데), 사카이 료 일본 해상막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NSS에는 러시아에 대한 내용도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일본은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결속과 연대를 강조했다. NSS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파괴하는 심각한 사태로, 유사한 사태가 동아시아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가 북방영토에서 군비를 강화하고 일본 주변에서 함정과 폭격기를 동원해 중국과 공동 훈련을 하고 있다며, 이것이 일본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지역 안보에 있어 “강한 우려”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은 종합적인 국력을 이용해 평화롭고 안정된 국제질서를 능동적으로 창출하고 국가안보의 최종적 담보인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를 추진하며 미국과의 안보협력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 동안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2%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방위력정비계획’에서 5년간의 방위비를 ‘43조 엔 정도’로 밝혔고, 2027년에는 현재의 1.5배가 넘는 8조9,000억 엔으로 하겠다고 명기했으며, ‘방위력정비계획’ 별표에는 앞으로 5년간 도입할 무기와 장비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이러한 계획이 종료되는 2027년이 되면 외부 침공에 대해 일본이 일차적 책임하에 대처하고 약 10년 뒤에는 “보다 조기에 원거리에서” 일본에 대한 침공을 저지·배제할 수 있도록 방위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점은 특기할 만하다.
‘반격 능력 보유’와 전수방위원칙 양립 가능성
‘국가방위전략’은 일본에 대한 침공을 억제할 “열쇠”는 스탠드오프(원거리 타격) 방위능력을 활용한 “반격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극초음속무기 등 미사일 관련 기술과 포화공격 등 미사일 운용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돼 기존 미사일 방위망만으로는 “완전히”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고… 탄도미사일 등에 의한 공격이 이뤄졌을 경우… 필요 최소한도의 자위 조치로서 상대 영역에서 유효한 반격을 가능하게 하는 스탠드오프 방위 능력 등을 활용한 자위대의 능력” 보유가 필요하다고 정당화했다.
일본은 적 기지에 대한 반격 능력 보유를 통해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 자체를 억제하고 상대의 추가적인 무력 공격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문제는 언제 반격 능력을 행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20일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은 “타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무력 공격에 착수했을 때가 무력 공격이 발생한 때다. 현실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국 미사일이 일본을 향한 것인지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 판단을 잘못하면 국제법이 금지하는 선제공격이 될 우려도 있다.
또 일본이 반격 능력을 행사하려면 미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 또한 NSS에서 반격 능력 보유와 관련해 “탄도미사일 등의 대처와 마찬가지로 일·미가 협력해 대처해갈 것”이며, “일·미의 역할, 임무, 능력에 관한 부단한 검토를 바탕으로… 영역횡단작전이나 우리나라(일본)의 반격 능력 행사를 포함한 문제를 일·미 간 운용·조정”한다고 밝혔다. ‘국가방위전략’에는 “정보 수집을 포함해 일·미 공동으로 능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협력태세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처하기 위해 육해공의 통상전력 외에 우주, 사이버, 전자파 분야 협력을 중시하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를 제시하고 있는 만큼 미국 관점에서 봐도 자국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본의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1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2+2’에서는 반격 능력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한 미·일 간 협력 심화가 합의됐다. 1월 13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일본의 반격 능력 및 기타 능력의 개발과 효과적인 운용에 관한 협력 강화”를 양국 각료들에게 지시했다.
반격 수단인 미사일과 관련해 일본은 현재 육상자위대가 보유한 12식 지대함유도탄의 개량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도 2026년 이후에나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도서(島嶼) 방위용으로 개발하는 사거리 2,000~3,000km 고속활공탄이나 극초음속유도탄 또한 2030년대에나 실전 배치될 것으로 예상돼 반격 능력 보유 시기는 사실상 미국제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도입 시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미·일 양국은 반격 능력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적 미사일의 탐지에서 반격에 이르는 과정에 관한 공동계획을 작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월 17일 각의 결정을 통해 일본 정부는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미국)에 대한 공격이 일본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태로 인정되는 경우 반격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평화국가를 자처해온 일본의 전수방위원칙은 형해화(形骸化)하고 일본의 방위력 강화가 역내 군비경쟁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거는 기대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악화한 한일관계 개선, 특히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왔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채권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으로서 한국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한국인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대위변제’ 방안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와 계속 협의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13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세 정상은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유롭고 개방되고,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으며 안전한 인도·태평양을 추구하는 데 있어 공동의 노력을 조율해나갈 것”에 합의했다.
NSS는 한국을 일본 안보에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라면서 안보 측면을 포함해 “일·한, 일·미·한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해가겠다”고 기술했다. 또한 동맹국·동지국 간 네트워크를 중층적으로 구축하고 확대함으로써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미·한, 일·미·호(호주) 등의 틀을 활용하면서 호주, 인도, 한국, 유럽, 아세안, 캐나다, NATO, 유럽연합 등과의 안전보장상 협력을 강화”해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법의 지배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미 및 미·일에 비해 한·일 간에는 이러한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오지 못한 게 사실이고, 일본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가 중요하다. 일본이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하고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폭 최대 피해자는 일본인과 한국인이며, 한·일 정상이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의 참상을 알리고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주도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본 정부와 기업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우리 정부가 피해자와 유족, 나아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1월 23일 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일본 기시다 총리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했는데,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그런 의지를 보여줄 시험대가 될 것이다.
조 진 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