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72023.03.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모형 위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특집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중점 추진과제 분석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의 선순환

北 도발 자제와 진정성 있는
비핵화 결단 필요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 정책 비전은 ‘비핵· 평화·번영의 한반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중점 추진과제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의 선순환’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이 완성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만인 2022년 11월, 우리 정부는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과 추진체계를 공개했다. 역대 모든 통일·대북정책이 그랬듯, 정부 출범 초기에 발표된 구상과 정책은 향후 4년여 동안 국민 안위와 민족의 미래, 그리고 지역과 세계 평화를 향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이제 다시 핵무기의 공포가 사라지고, 민족 번영이 넘실대는 꿈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 모두에게 이 항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외면할 수 없는 의무다. 이러한 취지에서 정부가 제시한 국가 비전과 첫 번째 중점 추진과제인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의 선순환’에 대해 설명하고, 참고 사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건설 위한 목표와 추진원칙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의 한반도 건설을 위해 3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첫 번째 목표는 ‘담대한 구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다. 우리 정부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고(Deterrence),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며(Dissuasion), 외교와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추진(Diplomacy/Dialogue)하고자 한다. 두 번째 목표는 원칙 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 추진이다. 정부는 그동안 이어져온 남북 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두되 북한의 불합리한 태도나 잘못된 관행은 개선해나가고자 한다. 세 번째 목표는 국민과 국제사회가 함께하는 평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적 지지와 국제사회와의 협력하에 통일·대북정책을 추진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실현을 위한 실질적 토대를 만들어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추진원칙도 제시한다. 첫째, 일체의 무력 도발을 용인하지 않는다. 정부는 북한이 핵 위협이나 무력 도발을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와 공조해 도발에 따르는 실질적인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적대 의사 또한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건한 안보와 열린 평화를 동시에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둘째, 호혜적 남북관계 발전을 지향한다. 대화를 통한 남북 간 문제 해결과 유연한 상호주의에 기반을 둔 호혜적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 추진원칙은 평화적 통일기반 구축이다. 우리 정부는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의 종착지로 통일을 상정한다. 하지만 이는 흡수통일이 아니며 헌법 4조가 부여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 추진의 결과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반을 두고 정부는 다음의 중점 추진과제를 추진하고자 한다.

추진과제 모두 핵 없는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진전되거나 달성돼야만 하는 소중한 책무들이다. 이 과제의 성공적 추진에는 공통의 필요조건이 있다. 바로 북한 비핵화 진전과 정상적인 남북관계로의 회복이다. 남북한 민족 동질성 회복과 분단 고통 해소, 그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에 대한 우리의 기여 모두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서만 추진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상호 호혜적 원칙에 기반을 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관계 회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텁게 형성되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진전될 수 있다. 북한 비핵화 과정이 순조롭게 전개된다면 남북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또한 비핵화 진전 과정에서 축적된 신뢰는 완전한 비핵화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 간 선순환을 중점 추진과제 1번으로 제시한 배경이다. 이는 과거 정부들이 추진했고 의지했던 단선적인 선(先)신뢰, 후(後)비핵화론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다음 날인 2월 19일 한미 공군이 연합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합참 제공)
한 단계 진화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의 선순환’ 과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는 우리 정부가 천명한 ‘담대한 구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담대한 구상은 대북정책의 핵심이자 북한 비핵화 추진체계다.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구상의 작동 여부와 그 결과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 신뢰구축의 성패(成敗)에 정확히 반영될 것이다.

담대한 구상은 우선 억제·단념·대화라는 3가지 메커니즘의 총체적 접근을 통해 북한 스스로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주력한다. 만약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임한다면 그와 동시에 정부는 북한 민생 개선과 남북 간 신뢰 조성을 위한 다양한 초기 관여 조치를 과감히 추진하고 북한과 포괄적 합의를 체결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실질적 비핵화 조치들과 경제·정치·군사적 상응조치를 동시적·단계적으로 이행함으로써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전진을 계속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처럼 담대한 구상은 ①여건 조성→②초기 조치+포괄적 합의→③실질적 비핵화→④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지는 일종의 비핵화 로드맵이라 볼 수 있다. 아울러 담대한 구상은 북한 비핵화 진전에 맞춰 북한에 대한 과감한 관여책을 제공해 대북관계 정상화를 촉진하고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정부 대북정책의 요체이기도 하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복귀하는 즉시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프로그램’과 ‘북한 민생 개선 시범사업’ 중심의 과감한 초기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북한과의 신뢰 회복 추진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은 과거 보수 정부와 차별화된 사항이다. 정부는 이러한 초기 조치가 현실화되면 이후 남북 간 비핵화 로드맵 구상을 마련할 전략 환경이 조성될 수 있고,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경제·정치·군사 분야 포괄적 조치를 동시적·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처럼 담대한 구상은 북한 ‘안보’와 우리의 ‘포괄적 패키지’의 교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안보 대 안보’, ‘안보 대 경제’ 교환을 강조한 정책 모델들과 차별화된다. 아울러 과거 정부의 통일·대북정책들의 교훈을 적절히 수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중시하나,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비핵화에 상응하는 포괄적 이행 조치의 단계성·동시성을 강조한다. 또한 대북정책 ‘이어 달리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비핵화 프로세스의 주요 과제를 수용하나, 비핵화 진전을 통한 실질적 평화 구축을 진정한 대북 신뢰 조성의 출발이자 시금석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점에서 담대한 구상은 과거의 교훈을 과감히 차용하고, 현실의 여건을 솔직히 반영하고, 미래 북한의 수용성을 적절히 고려한 진화된 구상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 비핵화와 남북 신뢰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정부의 기대는 달성될 수 있을 것인가? 대내외적으로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여러 질문과 걱정이 제기되는 것은 일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상황이 암울하다고 가야 할 걸음을 멈추거나 해야 할 일을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담대한 구상은 이 자체가 완성본이 아니라 계속 진화해야 할 것이다. 발전하는 구상과 정책을 위해 우리 정부가 유념해야 하는 ‘현실적’이고 ‘당위적’ 차원의 노력 사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우선 담대한 구상은 그 설계 구조상 ‘올바른 여건 조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 보유 결기가 강해 구상의 효과 창출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제약을 감안해 북한의 행동에 따른 강압과 관여를 한층 과감하게 운용함으로써 북한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견인 및 강제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확장억제를 통한 확전우세 확보에 주력한 것,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 관여 조건을 취임 초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서 지난해 10월 ‘북한의 대화 복귀’로 낮춘 것 등은 이러한 융통성 있는 전략적 자세의 일환이라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는 맹목적 대화 지상주의에 대한 유혹에도 의연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대화와 신뢰, 그 자체는 아름답지만 아쉽게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제 곧 북한은 과거처럼 연합훈련을 빌미로 핵·미사일 고도화 도발을 재개할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 위기 조성의 한 원인으로 연합훈련을 지목할 것이다. 하지만 연합훈련은 대북 억제책이지 위기 조성의 근원이 아니다. 북핵 억제력 강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 동기 약화, 핵무기 보유로 인한 손실 증대, 북핵 위협의 현실적·실질적 거부 등 3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억제는 담대한 구상의 기본축이다. 만약 우리가 과거처럼 연합훈련을 양보 가능한 협상카드로 간주할수록, 북한은 역설적으로 연합훈련을 중단·축소하기 위해 도발을 통한 군사적 강제(compellence)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과거 북한의 행태로 볼 때 북한이 연합훈련에 대한 우리의 유연한 태도를 신뢰 조치로 받아들이고 비핵화 결단의 동기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북한 지도부가 자신들의 강제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각인해야, 궁극적으로 군사행동의 필요와 효용을 낮게 평가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존속하는 한 연합훈련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북한에 각인해야 연합훈련을 둘러싼 다툼이 멈출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한미 연합훈련은 필수다. 북한의 군사 도발 자제와 진정성 있는 비핵화 결단이 남북 신뢰 회복의 초석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 성 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