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72023.03.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월 1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헌법상 입법기관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북한 신규 법령 내용과 시사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허풍방지법’ 등
체제 위기 벗어나기 위한 ‘통제 강화’ 법령 봇물

김정은 정권은 최근 ‘사회주의 법제사업’ 강화와 ‘사회주의적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북한 법령 전반에 대해 정비를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의 최근 법령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본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수령의 세습적 1인지배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에서 법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이 있다. 법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법이 국가의 통치원리와 작용을 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고 알고 있기에 그렇지 않은 북한법에 대한 당연한 판단이다.

북한은 일방적 명령체제에서 법의 효용성이 없던 시기를 벗어나면서 최근 대내외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법제 정비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대응한 법제 정비는 국정 운영의 방향과 내용을 보여준다. 최근 정비된 법령의 특징은 체제 수호 및 경제난 타개를 위한 정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체제 정당화 및 수호 입법
수령과 당의 명령체제 아래 있는 북한에서 법이란 권력체제의 정당화 및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세습적 권력체제를 헌법적으로 제도화했다. 비록 헌법에 공민의 기본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 인권 보장으로서의 의미와 권한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는 부족해 북한 주민에게 법이 갖는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의 증언 등에 따르면 북한 주민에게 법의 존재와 본질적 목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헌법을 권력의 정당성 확보 근거로 삼고 권한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매년 12월 27일은 북한이 기념하는 헌법절이다.

북한은 체제 수호 입법으로 북한 주민에 대해 보다 강한 규범적 통제를 확대하고 있다. 헌법상 주체사상과 선군사상 용어를 김일성이즘과 김정일이즘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유일사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권력체제 이완을 경계하고 체제 이반행위에 대해 반국가범죄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비밀보호법’은 “국가의 안전과 이익,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적 진전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정작 무엇이 비밀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다. 경제난 속에 사회 전반을 통제해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입법인 셈이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는 것과 함께 ‘핵보유국법’을 대체하는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했다. 핵 선제공격 가능성과 광범위한 핵 사용조건을 명시해 자의적 핵 사용 의도를 노골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입법을 통해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고 이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위협적 자세를 분명히 보여줬다. 아울러 ‘우주개발법’은 미사일 발사 실험이 우주 개발의 일환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25일 개최한 ‘미제반대투쟁의 날 군중 집회’ 모습.
북한은 최근 체제 위기 타개 목적으로 문화 및 사상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의 경제 개선조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기본원칙을 일부 수정하는 것이었다. 외국과의 합영·합작 장려, 북한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합법적 권익 보장과 함께 경제특구정책 등에서 이 사실이 드러난다. 소유권의 범위를 보면 개인과 사회 협동단체가 소유할 수 있는 객체가 확대되고 국가 부분은 축소했다. 이는 북한 내 시장 합법화 등 경제 상황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합영·합작 장려, 외국인의 합법적 권익 보장, 특수경제지대(경제특구) 개발 등을 명시했고, 이를 근거로 외국인투자법제, 대외경제법제와 함께 라진선봉 등 경제특구법제를 만들었다. 대남경제법제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을 위한 법령도 그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외국인투자법제와 대외경제법제는 중국의 경제개혁과 개방 초기 법제 구축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추진된 경제개발특구 정책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으로 눈길을 끌었다. 국경 교역, 관광, 연안 및 산업 기반의 지방경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20여 지역을 설정(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수출가공구, 첨단기술개발구 분류)해 지방정부 차원의 경제 개방을 확대함으로써 경제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군발전법’의 제정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북한의 대내 경제 개선조치는 헌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경제 개선조치는 김정일 시대에 본격화했다. 농민시장을 활성화해 협동농장의 공동경리와 협동단체 농민들의 개인부업경리에서 생산된 농축산물 일부를 일정한 장소에서 직접 파는 상업 형태가 형성되면서 시장화의 기초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기업의 자유권 확대, 배급제 폐지 추진, 가격·임금·환율의 대폭 인상, 개인이 개간·경작할 수 있는 텃밭, 부업밭, 뙈기밭(산비탈, 하천 등 개간)의 면적 확대를 가져오고, 2003년 종합시장을 합법화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즉, 당국 관리하에 운영, 농민시장을 종합적인 소비품 시장으로 확대, 시장에서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공업제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설 종합시장으로 전환됐다.

김정은 시대에도 실용주의적 경제정책에 입각한 경제 개선조치는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6·28 농업개혁조치는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에 자본주의적 인센티브제를 확대했다. 12·1 기업소 개혁조치는 기업소의 지배인 책임경영제를 실시하여 계획경제에 의한 생산목표량을 하달하는 기존의 계획통제 방식을 탈피하였다. 5·30 경제개혁조치는 모든 기업소, 상점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각 기업소가 노동자의 임금 및 가족 생계를 자체 해결하는 정책을 골자로 했다.

이 조치들은 직접 관련 법령에 반영됐는데, 농장법은 분조관리제 운영제도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해 북한의 시장화조치를 법제화했다. 기업소법도 개정을 통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명문화하고 기업소의 경영과 관련해 독립채산제 및 경영 분권화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취했다. 이들 법령은 북한 내 경제 개선의 현실과 제도 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헌법에도 기존의 경제운영 원칙인 대안의 사업체계원리를 삭제하면서 명기됐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모순과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북한의 자세 전환을 보여주는 법령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25일 북한 농민들이 평양 락랑구역 남사협동농장에서 벼를 심는 모습.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의 일환으로 생산성 평가 등이 강화되고 있다. (평양=AP/뉴시스)
인권보장의 허구성과 사상 통제
북한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그들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인권 보장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 헌법에 인권 보장 대목을 추가하고, 형사법, 변호사법 등에서 인권 보호 규정을 강조한다. 장애자보호법, 여성권리보장법, 아동권리보장법 등을 제정해 운용한다는 점을 유엔에 보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권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우리식 인권론’은 천부인권론에 기반을 둔 보편적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자주권을 기반으로 한 인권론으로서 인권 보장을 주장하는 것은 허구적이다. 법령의 존재만으로는 실질적인 인권 보장을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은 체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는 법령을 쏟아내고 있다. 먼저 ‘청년교양보장법’은 이름에 ‘보장’이라는 단어를 넣었을 뿐, 특정 분야는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엄벌에 처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교양은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머니처럼’ 세심히 보살피며 정신문화생활과 경제도덕생활 등을 강조한다. 북한 청년들이 서방 문화를 접하면서 생길 수 있는 사상의 이완 현상을 경계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청년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은 유일사상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북한 체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사상과 문화를 통제하는 법령으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들 수 있다. 이 법은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사상·정신·문화를 굳건히 수호하는 준칙을 규정한 것이다. 특히 남한 문화 콘텐츠의 시청 및 유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등록되지 않은 TV·라디오·컴퓨터 같은 전자기기 사용, 열람이 금지된 영화·녹화편집물·도서를 시청하거나 보관하는 행위에 대해 10년의 노동교화형에서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과도할 정도의 처벌을 규정했다는 건, 체제 결속을 저해하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허풍방지법’은 법명부터 흥미롭다. 북한 당국이 정책 기강을 확립하고자 강력한 통제를 가하기 위한 입법임을 보여준다. 이 법은 전국가적·전사회적 허풍 현상과의 투쟁을 통해 국가정책을 정확히 집행하고 인민의 이익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련의 사회주의국가 체제 운영 원칙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부패를 방지해 국가체제를 강화하고자 제정한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추진되는 입법은 알려진 것보다 많다. 북한 헌법상 입법기관은 최고인민회의이나 1년에 고작 며칠밖에 열리지 않아 실질적인 입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북한의 ‘법제정법’은 입법체제와 절차 등을 규정해, 제도화되고 있는 북한법령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한 안보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국면에서 외국인 투자 확대는 현실적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도 동결돼 교착 국면에 있고, 남북 간 교역은 중단 상태다. 그렇지만 북한이 태세를 전환해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되면 북한의 외국인 투자와 대외경제 개방은 확대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특구지역 내 법령에서 보이는 개방과 개혁의 자본주의적 경제요소가 특구를 벗어나 북한의 대내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북한의 큰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향후 북한법령은 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말하는 사회주의법치주의가 본질적으로 북한 주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요청된다.

박 정 원 국민대 법대 교수, 통일과북한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