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72023.03.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운영하는 콜·종합지원센터에서 한 상담사가 탈북민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평화통일 현장


남북하나재단 콜·종합지원센터 & 심리상담소 ‘마음숲’을 가다

탈북민 어려움 어루만지는
진심의 힘, 희망의 시작

지난해 11월 평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과 극단 라파가 선보인 ‘희망을 걸어 드림’이 바로 그 작품이다. 무대가 열리면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콜상담센터가 보인다. 극중에서 탈북민들은 이곳 상담원과 통화하며 탈북 및 남한 정착 과정에서 겪은 여러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는다. 상담원이 그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웃이자 친구로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애쓰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현재 ‘국민대 통일교육선도대학’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탈북민의 이웃이자 친구가 되는 콜센터 상담원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낸 김주현 극단 라파 단장은 “이 작품에서 콜상담센터 전문상담원과 탈북민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꿈도 생기도 없이 지루하게 흐르던 탈북민의 삶이 점점 환하게 변해간다. 그 모습을 보며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는 관객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대화를 통해 탈북민의 가족이자 이웃, 친구가 되어주는 콜상담센터 상담원은 탈북민에게 등대 같은 존재”라고도 설명했다.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 속 콜상담센터 모델이 실존한다는 점.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운영하는 탈북민 전용 상담 창구 ‘콜·종합지원센터’(콜센터)가 그것이다. 201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콜센터는 탈북민의 초기 정착을 지원하고 심리·의료·교육·복지·취업 관련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로, 전국 어디서나 지역번호 없이 1577-6635번을 누르면 상담사와 통화할 수 있다.

과연 이 콜센터 풍경은 ‘희망을 걸어 드림’과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 궁금증을 안고 2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콜센터를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칸막이로 구별된 책상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자료를 검색하며 탈북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고자 분주한 상담사들 모습이 보였다. 김동현 상담사는 전화기 너머 탈북민에게 자녀의 학습지 지원 신청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현재 탈북민 자녀는 학습지 외에도 교육상담,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콜센터에 관련 문의가 크게 늘어난다고 한다. 김동현 상담사는 “탈북 아동·청소년의 경우 한국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기초 학습 부진을 겪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 내용을 최대한 쉽고 꼼꼼하게 안내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이 온라인으로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와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의 책상에는 각종 교육 관련 서비스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하나센터 전문상담사 연계 서비스도 제공
이곳에서 상담사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민원 개수는 평균 40여 건 남짓. 전화 통화는 짧게는 3분 안팎에서 길게는 30분 넘게까지 이어진다. 상담사는 전화를 받으면 1차적으로 수화기 너머 탈북민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한다. 이후 직접 관련 서비스를 소개해주거나, 사안에 따라 전국 25개 하나센터에 배치된 전문상담사와 연결해준다. 하나센터는 남북하나재단이 운영하는 탈북민 정착 지원기관으로, 2022년 10월 기준 전문상담사 수는 86명이다. 이들은 탈북민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바탕으로 활동하며,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민원을 해결하기도 한다.

김윤지 상담사는 “조금 전 한 탈북민이 ‘이력서 작성이 어려워 구직 전선에 나서지 못한다’는 고충을 토로해왔다”며 “이런 전화를 받으면 해당 탈북민 거주 지역에 있는 하나센터 전문상담사와 연계해 이력서 작성법부터 직장생활 예절까지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악화된 경기 탓인지 탈북민의 취업 관련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한에스더 ‘마음숲’ 상담팀장은 “탈북민 특성을 고려한 상담 서비스를 전액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음숲은 탈북민에게 안식처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콜센터에는 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 쉽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경제적 손해를 보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사례들이다. 김윤지 상담사는 최근 진행한 상담 내용을 들려줬다.

“한 탈북민이 전화를 걸어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줄 알고 주택을 분양받았는데, 공사가 계속 미뤄져 힘들다’고 했다. 알고 보니 주택 사업자가 아직 분양 계획조차 확정되지 않은 주택을 바로 입주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전단지를 거리에서 나눠줬고, 그걸 받은 탈북민은 저렴한 비용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말에 홀려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최근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탈북민 사이에서 ‘분양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김윤지 상담사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참 안타깝다”며 “현재 탈북민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 하나원에서 12주간 교육을 받는데, 그것만으로는 사회에 적응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보완하고자 콜센터는 탈북민이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온라인 피해 예방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대한변호사협회와 협의해 매주 수요일마다 무료 법률상담도 실시하고 있다.

탈북민 전문 상담센터 ‘마음숲’은 탈북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심리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남북통합문화센터 상담센터 마음숲 제공)
탈북민 속사정 귀담아 듣는 ‘마음숲’
탈북민을 괴롭히는 게 경제적 어려움만은 아니다. 목숨 걸고 탈북해 정착한 남한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냉혹함, 이웃의 편견 어린 시선 등에 맞닥뜨리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도 적잖다. 통일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2021년 하반기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약계층으로 분류된 탈북민 1,582명 중 약 20%가 정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황예빈 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 차장은 “특히 탈북민은 내밀한 속사정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20년 5월 남북하나재단이 위탁사업으로 탈북민 전문 심리상담센터 ‘마음숲’을 개소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콜센터에서 자리를 옮겨 이번엔 서울 강서구에 있는 ‘마음숲’을 찾았다. 탈북민 출신 전문상담사가 상주하며 동료 탈북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공간이다. 현재 마음숲 운영 책임자 또한 2003년 북한을 탈출한 한에스더 상담팀장이다. 한 팀장은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 기관은 많다. 하지만 거기서 탈북민이 마음의 문을 열고 고충을 토로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라며 “우리는 다르다. 마음숲에서는 탈북민 특성에 기반을 둔 상담을 진행하고, 모든 서비스 비용이 무료”라고 소개했다. 탈북민들은 이곳에서 놀이치료·미술치료·언어치료·인지학습치료를 비롯해 심리검사, 심리코칭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탈북민이 마음숲에 상담을 신청하면 전문상담사가 심리검사를 진행한 뒤 전문가 면담을 통해 탈북민에게 알맞은 상담사를 선정해 상담을 실시한다고 한다. 심리상담은 기본적으로 회당 60분씩 총 24회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고통을 비롯해 각종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한 팀장 얘기다.

“한번은 결혼을 약속한 탈북민 여성과 남한 출신 남성이 예기치 않은 문제로 갈등을 겪다 헤어질 뻔한 일이 있다. 당시 탈북민 여성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 등 여러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먼저 여성을 상담하고, 이후 부부상담을 통해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알려지면서 최근 마음숲 이용자 수는 크게 늘었다. 한 팀장은 “2020년 1,463건이던 상담사례가 2022년 3,205건이 됐다. 최근엔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까지 마음숲을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탈북민 부모가 자녀와 함께 방문해 ‘우리 아이의 발달 연령을 검사하고 양육 방법에 관해서도 도움을 얻고 싶다’고 요청한 일도 있다. 탈북민 전문 심리상담센터를 표방한 마음숲이 탈북 가정의 국내 정착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서울 강서구 남북통합문화센터에 있는 ‘마음숲’ 내부 모습. (뉴시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 입국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정착한 탈북민은 3만3,882명이다. 탈북민 수가 3만 명을 돌파하면서 이들의 남한 적응은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가 됐다. 한 팀장은 “탈북민의 남한 정착에 도움이 되도록, 향후 마음숲 이용자의 상담 사례를 분석해 좀 더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확대·개발하고 싶다. 또 탈북민 출신 전문상담사를 더 많이 양성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탈북민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돼 탈북민들이 큰 어려움 없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