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남북 강대강 국면과 한반도 위기관리 방안
오판·우발적 충돌·부적절한 대응
‘함정’ 피하고 확전방지,
확전우세 방안 마련해야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무인기 침투 등 각종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위기 관리 방안을 살펴봤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안정-불안정 역설’이 한반도에 적용될 것이라는 전문가들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전략핵무기 개발이 지연되면서 북한은 전술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의 비핵 동맹국인 한국, 일본 등을 위협함으로써 미국과의 핵균형(nuclear balance)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전략적 핵억제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반면 단거리탄도미사일이나 초대형방사포 시험발사는 억제보다는 실제 사용을 위한 전술핵무기 개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北 전술핵무기 개발 가속화, ‘안정-불안정 역설’ 현실화 우려
북한은 2022년 1년 간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8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2회를 제외하면 전술핵무기 투발 수단인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가 53회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 이후 공개된 600mm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을 통해 ‘전술핵무기의 대량 생산과 핵탄두의 기하급수적 증대’라고 하는 김정은의 지시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여기에 소형화된 전술급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2016년 북한이 공개한 직경 700mm 전후의 원자탄 모형보다 작은 핵탄두 개발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폭발 위력을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핵분열물질(Pu 또는 HEU)을 사용하면 ‘핵탄두의 기하급수적 증대’라는 목표도 추구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상호 핵억제력(안정)이 확보되면 대규모 전쟁은 아니지만 소규모 충돌(불안정)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안정-불안정’ 역설을 2023년 한반도 상황에 적용해보면, 이미 북한은 전술핵무기로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상쇄했다고 인식하고 모종의 도발을 기획하고 있을 수 있다. 핵 개발이 한창이던 2018년 이전에는 북한이 한미 연합연습 기간 동안 미사일 시험발사나 도발을 자제했다. 자칫 전쟁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은 한미 연합연습이나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 여부와 무관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한 의도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미사일을 날려 보냈으며,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다수의 무인기를 침투시키기도 했다. 2015년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강력 대응에 놀라 고위급 군사회담을 먼저 제의했던 북한의 상황 인식이 이제는 달라졌다고 판단된다. 소규모 충돌에서 위기가 고조(확전)되더라도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통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확전우세에 대한 자신감이 저변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잠시 시곗바늘을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기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많은 전문가와 각국 정보기관은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심지어 러시아의 푸틴조차 전쟁이 쉽게 끝날 것으로 오판한 것 같다. 즉 많은 군사적 충돌이 지도자와 정보기관의 오판에 기인해 발생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오판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증강하면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인해 우발적 충돌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우발적 충돌이든 의도된 도발이든,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두려워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확전우세를 달성하려고 과잉 대응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오판, 우발적 충돌,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하는 세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한반도 위기관리에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위기 발생 이후의 대응조치 과정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위기관리는 위기 발생 이전과 이후 조치를 포괄해야 한다. 일련의 위기관리조치를 시간 흐름으로 표현했을 때 위기 발생 이전(left of crisis)과 발생 이후(right of crisis)로 나눈다면, 오판과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발생 이전의 조치이다. 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것은 발생 이후 조치에 해당한다. 필자는 이 원고에서 위기 발생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위기관리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장거리탄도미사일이 공개되고 있다. (평양=AP/뉴시스)
첫째, 위기가 발생되기 전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오판에 의한 위기 발생의 경우, 상대의 힘이 나보다 작다고 착각해 먼저 도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북한 지도층이 우리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한미 연합연습을 강화하고,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의지를 확고히 하며, 한미 간 민감한 정보 공유와 핵 공동기획, 전략자산 전개 등을 통해 북한의 오판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로 상호 억제된다고 가정하고 재래식 도발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재래식 억제력과 사용 의지를 북한이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능력 면에서 한국형 3축체계(3K)가 독자적으로 북한의 군사 도발을 거부하고 북한 지도층에 대해 효과적으로 보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북한의 전자기펄스탄(EMP) 공격이나 화생 위협에 의해 쉽게 무력화될 정도로 3K는 방호 면에서 취약하다. 북한은 기습공격으로 먼저 우리의 3K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야만 확전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3K의 방호력(Protection)을 보강해 ‘3K×P’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필자가 ‘3K+P’가 아니라 ‘3K×P’라고 한 것은 3K와 P가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독립적 관계라면 P가 없이도 3K가 작동되겠지만, 상호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에 P가 작동해야 3K도 최대효과를 발휘하고, 3K가 있기 때문에 P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방호력(P)이 향상되면 북한의 기습공격 효과가 낮아지고 기습공격의 유혹도 줄어들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오판의 가능성은 확연하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위기 발생 이전 단계에서 ‘우발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처럼 북한이 군사적 충돌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려는 분위기에서는 우연을 가장한 충돌까지 포함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군사적 충돌을 물리적·비물리적 방식으로 구분한다면, 총알이나 미사일, 함정이나 병력 등이 직접 부딪치는 사태가 물리적 충돌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사이버공격이나 지향성에너지무기(전자기 또는 레이저 공격)에 의한 비물리적 충돌 상황도 상정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 물리적 충돌 방지에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특히 도발인지 불분명하거나 도발 주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경우 같이 그레이존(회색지대) 방식의 도발에 의한 우발적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위기고조와 그로 인한 피해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도발 가능성 100가지를 분석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대비조치는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낮출 뿐 아니라, 북한의 의도된 그레이존 방식 도발에 대해서도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위기 발생 원인을 우리가 제공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위기 상황으로 발전되더라도 확전우위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더해 북한과의 통신체계(핫라인)를 유지하는 것이 충돌과 확전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만일 통신이 두절될 경우에는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신속하고 공개적으로 전파하거나, 평양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제3국을 경유해 비공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확전 발생 차단하는 위기관리 체계
셋째, 위기가 발생된 이후 ‘적절한 대응’을 통해 확전을 방지하거나, ‘계산된 확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자. 물론 위기 발생 전,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때로는 위기 상황을 이용해 위기 발생 이전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위기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가정하에 오히려 공세적이고 적극적으로 위기를 관리한다면 새로운 기회 창출의 창이 열릴 수도 있다.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위기관리 방안에서 중요한 건, 오판에 의해서든 우발적 충돌에 의해서든 일단 발생한 위기 상황이 더 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현장에서 조속히 종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텀업(bottom-up)식 위기관리 체계에 의한 신속한 상황 전파 및 정보 공유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하며, 현장의 군 지휘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구비돼 있어야 한다.
2월 18일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뮌헨 안보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현지에서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긴급 회동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해군 제공)
한편 탑다운(top-down)식으로 국가적인 위기관리 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면 위기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정교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준비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전연습(TTX, Pol-Mil 게임, 워게임 등)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화성-17형(액체추진 ICBM)과 신형 고체 ICBM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미국에 대한 핵공격 능력 달성에 한층 다가섰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성-17형은 비행 성공률이 20%도 되지 않고 대기권 재진입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탄도미사일이다. 고체 ICBM은 최초 공개한 2017년 열병식 이후 6년이 지나도록 시험발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자신의 핵능력을 과신해 현 상황을 오판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잘못된 확신에서 비롯한 우발적 충돌이라 할지라도 군사적 충돌이 북한 체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도 현재 상황에 대한 ‘오판’과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며, 위기 상황이 닥치면 ‘확전방지’뿐만 아니라, ‘확전우세’를 달성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이 상 민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