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72023.03.

지난해 11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운데)가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진단

대북제재가 북한 인권에 미치는 영향

아사자 속출해도 군사 도발 포기 않는
북한, 핵과 인권 문제 함께 풀 해법 찾아야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무시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군사 도발을 계속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대북제재가 북한 인권에 미칠 영향과 바람직한 해결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2006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확대된 유엔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직후 대북제재를 결정했다.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저지를 때마다 제재 강도가 높아졌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수출과 에너지 공급 제한 등 경제 제재와 금융 제재를 포함한 전면적 제재로 확대된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은 2018년 잠시 도발을 중단하는 듯했을 뿐 곧 재개했다. 최근엔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방사포 발사 등 전에 없는 강도와 빈도로 도발해 지역과 세계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핵협상을 전면 거부하며 추가 핵실험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북제재 효과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는 반면 북한 인권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대북제재가 인권 악화로 이어지는 역설
북한의 식량 및 보건 상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한 국경 폐쇄 등과 맞물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의 식량 생산 및 수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근 북한 내에서 아사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군인 일일 곡물 배급량이 620g에서 580g으로 줄었다는 정보도 있다. 북한이 농업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한 것도 식량 위기를 방증한다.

보건 측면에서 보면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북한을 결핵 고위험국가로 재지정했다. 북한의 결핵 발생률은 2000년대 이후 국제사회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다소 낮아졌다. 2011년 당시 10만 명당 345명이었으나 2019년 513명으로 다시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제재 대상국의 인권 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제재 수준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협상 복귀와 북핵 문제 해결을 이루려는 국제사회의 노력 앞에 북한 인권 문제가 놓인 양상이다.

사실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 주민은 제재와 무관하게 이미 총체적 인권 침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에는 시민적·정치적 자유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신분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차별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북한 주민은 식량·보건·주거·교육 등 존엄한 삶을 위한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실효성 있는 조치가 요구된다.

유엔도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하며, 개선 방안을 함께 강구하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2014년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북한 인권 상황을 포괄적·체계적·심층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통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유엔 안보리의 북한 인권 논의는 중단되거나 비공개에 그쳤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11월 2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유엔 안보리가 인권 침해에 대해 제재하는 게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다.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 사용 등의 이유가 아닌, 인권 침해 자체를 이유로 유엔 제재가 이뤄진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에 대한 제재, 구유고연방의 인종 청소에 대한 제재, 아이티 독재정권의 인권 침해에 대한 제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안보리 제재가 제재 대상국에 엄중한 메시지를 주는 측면이 있지만, 인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제재로 인해 제재대상국 국민들 생활이 어려워지면 오히려 인권이 악화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막고자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로 인권 개선을 이끌어내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북한 당국과 주민에 대한 접촉을 늘리고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으로 위기를 해소하며, 북한 주민의 삶의 조건을 개선해 궁극적으로 인권 의식 향상과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포함한 인권 전반의 존중 및 보호를 이루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및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보고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경색되면서 ‘관여 정책’ 실현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기존 틀에서 북한 인권과 인도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인도주의적 제재 면제 조항을 포함해 제재위원회의 제재 면제 승인에 따라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골자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폐쇄한 국경이 다시 열리면서 대북 지원을 위한 접근이 가능해지면 제재 면제 신청과 승인 또한 함께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권과 인도적 상황에 대한 고려라는 목표와 별도로, 국제사회는 제재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기존 유엔 제재를 각국이 좀 더 철저히 이행하도록 독려하고,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조사 활동을 강화하며 북핵 문제에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한국·미국·일본은 물론 캐나다·영국·뉴질랜드·호주·프랑스 군이 한반도 근해 정찰을 통해 북한 선박을 통한 금수물품 불법 환적 등 대북제재 위반행위를 적발하고 있다. 각국 정찰위성 및 민간위성 전송 사진 분석을 통한 위반행위 발견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대북제재 위반국과 위반 사항에 대해 국제사회가 알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개별 국가가 관련 기관 및 개인에 대한 제재를 실행해 북한과 상대교역국을 압박한다.

국제사회는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고 인권에 미치는 부작용을 줄이고자 북한 핵 개발과 북한 인권 침해에 대한 표적 제재도 실행하고 있다. 경제·금융에 대한 전반적 제재는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제재 대상국 국민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준다는 인식하에 국제법 위반에 관련된 특정 기관과 개인을 제재 대상으로 한정하는 방식이다.

국제사회는 또한 북핵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가 본질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인식한다. 최근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악화는 북한이 한정된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하는 데 따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이미 대북제재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는 북핵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틀이 없다. 북핵 문제는 북핵 문제대로,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인권 문제대로 따로 논의되면서 핵 개발에 따른 인권 침해 및 인도적 상황 악화에 어떻게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고, 관련 국가들이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의 틀이 나뉘면 전문가가 나뉘어 서로 의견을 공유하지 못한다. 또한 나라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 사안별로 우리나라와 의견을 모으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진지한 태도와 의지를 갖고 행동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 이런 나라들을 찾아 함께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행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더 많은 나라의 동의를 이끌어내 국제사회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할 일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9월 2일 통일부 집무실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접견하고 있다. (뉴시스)
국제사회 협력 이끌어내기 위한 한국의 역할
짚고 넘어갈 것은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를 연관해 이해하고 해법을 강구할 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2018년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북·미간 핵협상이 이뤄질 때 우리나라와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북한 인권 문제를 선택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북핵 문제나 북한 인권 문제 모두 북한이 국제사회의 핵심 가치와 원칙을 준수하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핵심 가치와 원칙을 접으면 안 된다. 한번 인권 문제를 회피하면 이후 문제를 제기했을 때 정치적 공세라는 불필요한 논란을 가져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을 도모할 때 대북제재의 부작용, 핵개발 자원 전용이라는 알려진 연관성뿐 아니라 북한의 성립부터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며 북한을 형성시킨 요인을 이해하고 국제사회와 이를 공유하며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요인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제재의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거나 핵 개발로 자원이 전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조차 너무 단편적이다. 일제강점기 이뤄진 사회주의 세력 성립, 냉전시기 국가 수립과 강화, 탈냉전기 고립, 미·중 경쟁관계 속 생존 전략 등 북한을 이루는 대내외적 요인이 북핵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발생시켰는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하는 데 이러한 요인을 어떻게 극복 또는 이용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국제사회와 우리나라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한반도 차원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 완성, 세계적 차원에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쇠퇴라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대북정책 및 북한 인권 정책에 몇 차례 큰 변동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배웠다. 북한 인권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을 새로이 해야 할 이유다. 정부가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변화와 우리 사회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정책을 수립하고, 여기에 사회적 노력이 더해져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유 영 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