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공공외교
6·25전쟁 참전용사 대상 공공외교 펼치는 괌지회 방문기
“전쟁과 분단 아픔 겪은 평화의 섬”
“Hafa Adai(하파데이·안녕하세요)!”
괌의 관문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는 원주민 인사말이 적힌 간판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괌은 평온한 휴양지이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교훈이 되는 이야기가 많다.
괌과 사이판으로 구성된 마리아나제도에는 기원전 2,000년부터 원주민 ‘차모르족’이 살았다. 1521년 마젤란이 세계일주 당시 이 지역에 상륙하며 세계 역사에 등장하게 됐고, 이후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미국령이지만 괌 전체 인구의 약 75%가 가톨릭 신자이고, 지역 명소 이름이 스페인어로 돼 있는 건 그 이유에서다.
괌 수도 ‘하갓냐(Hagatna)’는 차모르어 이름으로, 1998년까지는 스페인어 ‘아가냐’로 불렸다. 하갓냐 시내 곳곳에는 대성당과 스페인광장, 산타 아규에다 요새 등 스페인 점령기 건축물이 가득하다.
스페인광장 남쪽으로 걸어가면 ‘라테스톤 기념공원’이 나온다. 라테스톤(Latte stone)은 차모르족 선조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는 상징물로, 괌 남부 메포마을에 있던 8개의 라테스톤을 옮겨다 1950년대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8개의 돌 뒤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방공호까지 보존돼 있어, 과거부터 근현대까지 괌 역사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갓냐 차모르 마을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열리는 야시장에 가면 차모르 전통 공예품과 음식이 가득하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관광객과 현지 주민 구분 없이 남녀노소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 필자는 현지에서 괌 소재 조지워싱턴고교 학생들이 공연하는 차모르족 전통춤을 구경했는데, 전통 문화를 계승하려는 차모르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1898년 발생한 미국·스페인 전쟁은 괌과 북마리아나제도의 분단으로 이어졌다. 괌은 미국령으로, 사이판이 포함된 북마리아나제도는 독일령으로 각각 나뉘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엔 일본령으로 편입됐다. 한반도가 제3자에 의해 분단된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군은 단 3일 만에 괌을 점령했고, 31개월 후 미군이 탈환해 현재까지 미국령 괌과 북마리아나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두 곳 모두 차모르족이 많이 살지만 외세에 의해 오랜 세월 분단돼, 현지인들은 하나의 ‘마리아나 제도’로 통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외세에 의해 분단된 섬이자 평화의 섬
관광객으로 가득한 투몬 해변이 있는 타무닝(Tamuning)과 하갓냐를 지나 괌 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나타난다. 먼저 가볼 곳은 1944년 미군이 일본에 점령된 괌을 탈환하고자 상륙해 10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인 아산만(Asan bay) 일대 ‘태평양전쟁 국립역사공원’이다. 이곳에서 미군 3,000여 명, 일본군 1만8,000여 명이 전사했다. 아산만 전망대에는 희생된 미군과 차모르인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어, 필자도 그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전망대에서 본 노을이 마치 희생된 분들의 영혼처럼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졌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우마탁(Umatac)과 메리조(Merizo) 지역이 나타난다. 해안선과 산을 따라 트레킹하기 좋은 곳이다. 메리조는 마젤란이 상륙한 곳으로 작은 스페인 마을 같다. 우마탁에는 19세기 스페인 통치 시절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은 솔레다드 요새와 3개의 대포가 있고, 스페인풍 성당과 이국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괌에는 6·25전쟁과 태평양전쟁, 베트남전쟁을 겪은 다수의 미군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으며, 섬 곳곳에 국립묘지가 있다. 민주평통 괌지회(지회장 유은상) 자문위원 21명은 6·25전쟁 당시 목숨을 바친 괌 거주 참전용사의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활동을 주하갓냐 출장소, 한인회 등과 함께 벌이고 있다. 유은상 지회장은 “하와이협의회에 소속된 괌지회는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인 동포와 함께 무궁화나무 심기 운동,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 등 평화통일 운동을 비롯한 봉사활동에 열심이다”라며 “제20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멀리서나마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며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주평통 괌지회 자문위원들이 괌 현충일을 맞아 6·25전쟁 참전 희생자를 위해 헌화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미국령 괌·북마리아나제도에서 평화통일 활동 지원과 영사 업무를 책임지는 김인국 외교부 주하갓냐 대한민국 출장소장은 필자에게 “괌이 있는 태평양(pacific) 지역에서는 전쟁이 여러 번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이 지역에는 평화를 소망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영어로 퍼시퍼시스트(pacificist)는 평화주의자라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인에게 괌은 ‘휴양지’ 또는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 공군 전투기·폭격기가 날아오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괌과 북마리아나제도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아픔의 섬’인 동시에 ‘평화의 섬’으로 인식되고 있다. 차모르인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용서할 수는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We can forgive but we should not forget)”라는 말을 한다. 과거에 대해 용서와 화합은 하되 힘을 길러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괌 역사 기행을 통해, 역사를 직시하면서 한반도 문제와 외교 문제를 ‘담대히 해결’하는 데 국내외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심 요 섭
민주평통 서울광진구협의회 청년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