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서사적 특징
영화 속 ‘탈북’ 코드의 모호함, 그리고 유연함
박동훈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는 탈북자 출신의 한 고등학교 경비원이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극장 관객 53만 여명을 기록함으로써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으나, 탈북의 과정이나 북한의 실상 등이 주를 이루는 기존의 ‘탈북 영화’와는 구별되는 서사적 특징을 선보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In Our Prime(2022)
2022-03-09
박동훈
최민식, 김동휘, 박해준, 박병은
탈북이 생략된 탈북자 이야기, 탈북이 가미된 수학자 이야기
영화의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작품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수학자로 살다가 탈북한 뒤 남한 사회에서 조용히 지내던 리학성(최민식 분)이다. 2019년 현재 그가 근무하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성적 상위 1% 이상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자율형 사립고인 ‘동훈고등학교’인데, 근면 성실하나 투박하고 무뚝뚝한 탈북자 출신의 경비원 리학성은 학생들에게 ‘인민군’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이가 있으니, 바로 1학년생 한지우(김동휘 분)이다.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이는 학우들과는 달리,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가족이라고는 홀어머니뿐인 지우는 의리가 강하고 붙임성도 있다. 다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담임교사(박병은 분)로부터 일반 고등학교로의 전학을 종용 받기도 한다. 이에, 지우는 수학을 배우기 위해 리학성에게 다가간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던 리학성도 지우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서 출신 지역 및 연령대가 상이한 이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고 교감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 결과, 리학성에게 수학 논문을 출력해 주려다가 시험지 유출 의심을 받아 전학 위기에 처해진 지우는 리학성의 도움으로 의혹에서 벗어나고, ‘리만 가설’을 증명할 능력을 지닌 세계적 수학자로서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리학성은 독일에 있는 연구소로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대학생이 된 지우가 리학성이 일하는 연구소를 방문함으로써 둘은 재회한다. 이와 같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주인공 리학성의 ‘탈북’ 이력이 바탕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그와 지우 간의 관계 구도가 서사의 뼈대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탈북이 생략된 탈북자 이야기 혹은 탈북이 가미된 수학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중의성과 연대의 가능성
보통의 경우라면, 작품명에 장식되어 있는 ‘이상한 나라’를 북한으로 단정하기 쉽다. ‘정상 국가’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듯한 북한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리학성이 탈북한 데에는 수학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당국의 통제로부터 탈피하여 학문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동기가 작용하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가 선택한 남한 역시 어떠한 면에서는 ‘이상한 나라’처럼 비추어진다. 단적으로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수학은 순수한 학문이 아닌 대학 진학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아울러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학생이 학생답고 교사가 교사다운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각박한 세상에서 지우 또래였던 리학성의 아들은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월북을 감행하다가 국군의 총격에 사망한 바 있었다. 이로 인해 리학성은 남한에서 자신의 전공이자 주특기를 살려 수학 분야에서 활동하지 않고, 그 대신 늦은 밤 홀로 앉아 맹목적으로 수학 공부를 이어갔던 것이다. 이렇듯,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비판의 날을 북한뿐 아니라 남한 사회에도 들이댄다. 그러나 동시에, 리학성과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인 한지우의 소통을 통해 탈북자들뿐 아니라 남한의 교육 체제와 경쟁적 풍토 속에 상처받고 도태되어 가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사회적 약자들 간의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나아가, 리학성에게 힘을 보태주는 새터민 지원본부 본부장 안기철(박해준 분)과 언제나 지우의 편이 되어주는 급우 박보람(조윤서 분)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대한다.

수학의 본질이 시사하는 것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한지우에게, 리학성은 자신과의 일을 비밀로 하며 수학과 관련 없는 질문은 하지 않고 성적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세 가지 조건에 대한 약속을 받아낸다. 이후 그는 문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좋은 답이 나올 수 없음을 역설하면서 중요한 것은 해답 자체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지우는 수학의 진정한 원리를 깨닫는데, 이로 인해 정답(정해진 답)을 상정한 채 문제 풀이만을 중시하는 담임교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험지 유출 사건의 주범이 담임교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함으로써, 영화는 리학성의 소신이 옳았다는 결론을 도출시킨다. 여기서 주된 메시지가 발산되는데, 그렇다 보니 이 작품에서는 난해한 문제에 대한 기발한 해법보다는 수학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및 그 원리에 대한 증명의 과정이 전개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 속에도 수학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가치적 명제가 공표된다. 그리고 이는 여러 등장인물들에 의해 수학자라면 수학자로서의, 학생이라면 학생으로서의, 교사라면 교사로서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당위와도 연결된다. 이처럼,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탈북’ 이야기에 관한 코드를 다분히 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포함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서사 구조를 통해 수학의 본질이 시사하는 바를 뚜렷이 전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