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북한 경제 읽기1)
데이터 교차 검증을 통한 북한 경제의 이해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이전부터 북한은 경제 통계를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아 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다양한 간접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 경제를 들여다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각각의 자료는 접근성과 신뢰도에서 한계를 가지지만, 상호 보완을 통해 북한의 경제 흐름과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북한경제를 분석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보이지 않는 북한 경제 분석
북한은 정보를 아주 엄격하게 통제하는 ‘은둔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행정 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경제 통계는 거의 공개하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북한 경제 연구는 다양한 자료와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북한 경제 연구에 쓰이는 여섯 가지 주요 데이터를 간단히 소개한다. 인공위성 데이터, 국제기구 자료, 무역 데이터, 북한 시장 가격, 탈북자 설문, 그리고 북한 당국의 공식 문서가 그것이다. 이 자료들은 각각 한계가 있지만, 북한 경제를 이해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위성 기반 데이터

인공위성 데이터는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북한처럼 접근이 어려운 곳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널리 쓰인다. 인공위성에 달린 센서가 자동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이 적고, 보통 경제 통계보다 더 빠르게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주 관측할 수 있으며, 특정 지역의 경제 활동을 자세히 볼 수 있어 통계가 부족한 곳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야간 조도(Nighttime Lights)’는 밤에 보이는 불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데이터로, 북한의 경제 흐름, 지역 간 성장 차이, 대북 제재의 효과 등을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예를 들어, 야간 조도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북한 경제가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점차 성장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제재 관련 산업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대북제재 이후 불빛이 더 어두워지는 현상도 발견돼, 제재가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는 증거가 되었다.
주간에 찍힌 인공위성 사진은 주요 시설의 운영 상태나 시장 위치를 살피는 데 쓰인다. 최근에는 주간 사진을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다. 이 밖에도 위성 자료는 농업과 환경 분야에도 활용된다. 식물의 성장 상태를 보여주는 식생지표나 대기오염 정도를 나타내는 자료를 통해 북한의 농업 생산량, 환경 실태와 기업 가동 현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공위성 데이터도 한계가 있다. 북한처럼 특수한 경우에는 야간조도의 밝기가 실제 경제 활동과 꼭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럼에도 위성 기반 데이터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정보를 얻는 중요한 방법으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국제기구의 자료

북한은 국제기구 등 외부 지원을 받을 때 조건에 따라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국제기구들은 제한적이지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UNICEF)는 북한 아동의 영양 상태를 조사해, 북한 아동의 영양 상태가 점차 개선된 것을 확인했다. 이 데이터는 북한과 다른 저소득국을 비교하거나, 북한 내 지역 간 경제 격차를 분석하는 데도 활용되었다.
식량농업기구(FAO)도 북한 당국과의 협력 하에 협동농장을 방문해 표본조사를 진행함으로써 작물 생산량을 추정했다. 이 수치는 북한의 식량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렇게 국제기구가 수집한 정보는 북한 내부 상황을 비교적 직접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보여주어 북한 경제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데이터에도 한계가 있다. 조사 지역이 제한적이고, 표본이 북한 전체를 잘 대표하지 못해 신뢰성에 약점이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국제기구의 현장 활동이 중단되었고, 해당 데이터의 공백이 더욱 심해졌다.
무역 데이터
북한은 공식 무역 통계를 공개하지 않아, 연구자들은 ‘거울 통계(Mirror Statistics)’라는 방법으로 북한의 무역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한다. 이 방법은 북한과 거래한 다른 나라의 수출입 기록을 이용해 북한의 무역 흐름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주로 한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교역국의 통관 자료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북한 무역 규모, 적자 추이, 품목 구성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16~2017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강화 이후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무연탄과 의류 제품 수출이 크게 줄어든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2020년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무역 규모가 급감한 것도 드러났다. 한 연구에서는 북한 수출이 중국의 원자재 수요에 치우쳐 있어 장기 경제 성장에 불리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무역 통계에는 한계가 있다. 남한과 북한의 자료가 혼동되거나, 상대국이 일부 거래를 누락하거나, 민감한 품목을 숨기거나, 밀무역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대중국 원유 수입은 2014년 이후 중국 통계에서 빠졌는데, KOTRA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추정치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무역 데이터를 활용할 때는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거울 통계는 북한 무역 구조와 외부 경제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 가격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장마당(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후 시장의 역할은 북한 경제에서 점차 커졌고,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시장 가격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가격 조사 기관들은 평양, 신의주, 혜산 등 주요 도시에서 쌀, 옥수수, 달러와 위안화 환율, 휘발유 및 경유 가격 등을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이 정보는 인플레이션, 외환시장 변화, 대북제재의 영향을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시장 가격에 따르면, 2009년 화폐개혁 이후 2013년까지 쌀값이 급등했으나, 이후 2020년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국경 봉쇄로 중국과의 교역이 끊기면서 다시 가격이 상승했다. 또 제재로 인해 수입 제한 품목의 가격은 급등하고, 수출 제한 품목의 가격은 하락하는 등 제재가 시장에 미친 영향도 확인되었다. 시장 가격은 북한 경제가 중국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다만 이 데이터는 비공식 경로로 수집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며, 조사기관 간 수치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탈북자 설문조사
탈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나 설문조사는 북한 내부의 경제 구조와 생활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가계 소득 구성, 비공식 경제활동 참여율, 시장 이용 경험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북한사회변동조사’는 2012년부터 매년 탈북자 설문을 활용해 북한 사회의 변화를 분석해 왔으며, 최근 통일부도 6천 명 이상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실험경제학을 활용해 북한에서의 경험이 경제적 선호나 남한사회에서의 적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 조사는 표본이 북중 접경지역과 여성에 편중되어 있고, 정치·경제적 불만을 가진 이들이 주로 탈북하기 때문에 편향이 생길 수 있다. 또한, 탈북 과정에서의 기억 왜곡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탈북자 설문조사는 북한의 생생한 경제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북한 당국의 공식 문서
북한 당국은 『경제연구』와 각종 법령집을 통해 지도자의 정책 구상과 제도 개혁 방향을 중앙·지방 당 간부, 경제 관료, 국영기업 관리자, 학자 등에게 지침으로 제공한다. 『노동신문』은 경제 성과, 생산 증대, 혁신 사례 등을 주민에게 전달하며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 외부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북한 당국의 경제 우선순위와 정책 변화를 추적해 왔다. 예를 들어, ‘우리식 경제관리 체계’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같은 제도 개혁 조치를 통해 북한 경제 구조의 변화 방향을 분석한다.
최근에는 머신러닝 기반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활용한 연구도 활발하다. 산업연구원은 『노동신문』에 언급된 기업소 데이터를 수집해 수천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성 자료인 텍스트를 정량 데이터로 전환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활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다만, 이들 자료는 정치적 선전 목적이 강해 실제 경제 상황과 괴리가 있을 수 있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북한의 공식 문서는 당국의 정책 의도와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데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된다.
데이터 교차 검증으로 신뢰성 높여야
북한과 관련해서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특정 자료만으로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각 자료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데이터를 교차 검증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북한 경제를 보다 현실적이고 신뢰성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방법과 체계적인 분석을 병행한다면 북한 경제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이러한 과학적 접근법을 장려하고, 정책 결정에 활용할 체계적 연구 기반을 마련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