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08 Vol.216

남북 구조변화에 대응하는
창의적 통일 구상과 실천 전략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가 가장 확실한 안보”라는 신념을 피력하며, “한미 군사동맹에 기반한 강력한 억지력으로 북핵과 군사도발에 대비하되, 북한과 소통 창구를 열고 대화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의지는 대북정책의 현장에 곧바로 반영되었다. 정부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강력히 요구(6.9)하는 한편, 대북 확성기 방송 송출을 즉각 중지(6.11)했다. 지난 정부와 차별화하는 대북정책 변화의 신호를 명확히 보내며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Z세대와 기성세대의 통일 불필요, 불가능, 무관심 응답 비율(2008~2024) 출처: 2024 통일의식조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80도 달라진 북한의 대남 전략

신정부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상황이 3년 전과는 현격히 달라져 기존 프레임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은 최근 국제관계를 신냉전 다극화 질서가 강화되는 것으로 보고 대미·대남 대적 투쟁과 사회주의 국제연대를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적 위상 점유를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는 카드로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사활을 건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어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협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남한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며 통일·민족 정책을 폐기하는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천명했다. 지난 80년 동안 견지했던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폐기하고 ‘두 국가론’에 기초한 대남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그에 따라 통일 관련 조직과 기구를 모두 폐지하고 ‘통일’, ‘동족’, ‘화해’ 등의 표현을 완전히 삭제했다. 통일 상징물을 철거하고 남북을 연결한 철도와 도로를 폭파하는 등 북한의 결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몇 년 사이 정세와 환경이 급격히 달라져 과거의 방식으로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과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월 남한 대선 등의 상황이 북한의 대남전략을 전격적으로 전환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1년 9월 17일 뉴욕 유엔본부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국가기록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전원회의 (2023.12.30.)ⓒ조선중앙TV

남북관계의 구조적 변화

하지만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으로 대남전략을 선회한 근본적인 이유는 남북관계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탈냉전 35년 동안 남북관계는 민족관계에서 국가관계로 변화했다. 1991년 9월 한국(ROK)과 조선(DPRK)이 두 국가로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가로 공인되었다. 이후 35년 동안 한국과 조선 내부에서 대한민국 민족주의와 조선민족주의가 충만히 성장하여 명실상부한 한국과 조선의 두 민족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선대의 ‘민족제일주의’를 뒤로 하고 2012년 집권 이후 ‘국가제일주의’를 표방했다.

한국과 조선은 역사와 민족, 통일 의식이 완전히 다르다. 남북주민 80~90% 이상이 서로를 ‘다른 나라’로 인식하고,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회의적 의식이 한국(33.3%)과 조선(55.7%)에서 높게 형성되어 있다.1) 우리 민족을 한민족으로 보느냐, 조선민족으로 보느냐의 관점도 다르며, 민족의 근원도 신라와 고구려, 한족과 맥족으로 대립한다.2) 특히 젊은 층일수록 자국 정체성이 강하여 통일 공감대도 낮고 상호 적대 의식도 높다.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은 남한의 청년세대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질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한다.

실제로 남북의 괴리와 격차는 같은 나라, 같은 민족으로 간주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어졌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약 50배로 북한이 연평균 10% 이상 고속 성장을 30년간 지속한다 해도 남한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다. 특히 ‘한류’는 북한 안에 깊숙이 확산되어 북한 청년들의 의식변화를 촉진하고 주체사상 의식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하고 있다.3)

이러한 남한의 존재는 북한에 심각한 체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12), 청년교양보장법(2021.9), 평양문화어보호법(2023.1) 등을 제정하여 청년들을 단속하고 있다.

김범수·김병로·김성희 외, 『2023 통일의식조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3), p. 42; 김학재·김병로·문인철 외, 『북한주민 통일의식 2020』(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1), p. 58. 김병로, 『한국과 조선: 남북한 정통성 경쟁』(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김병로·김학재·송원준 외,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주민 통일의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2), pp. 120-121.

공존형 통일구상

이러한 현실을 보는 국내의 의견은 양분된다. 한편에서는 우리도 독일처럼 북한이 아무리 통일·민족을 폐기하고 ‘투 코리아’를 주장하더라도 헌법에 명시된 통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민족관계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서독이 동독의 두 국가론에 맞서 민족관계를 관철하여 통일로 이어갔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시키며 북한의 ‘두 국가’ 선언을 거부하고 하나의 민족관계임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편에서는 남북관계의 현실이나 국민 의식변화를 놓고 볼 때 통일은 요원하므로 통일보다는 공존과 평화 우선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한의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고 두 국가론을 받아들여 당장의 통일보다 공존과 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둘 사이에서 현실과 비전을 융합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과 조선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되, 통일의 비전을 반영하는 창의적 통일구상이 필요하다. 국가관계이면서도 분단국으로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통합된 한반도 건설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하는 관계이므로 이러한 현실에 입각한 공존형 통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한 신냉전 국제질서 속에서 북한의 투 코리아 정책에 대응하여 한국의 신통일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창의적 대북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국가연합 방식의 공존형 통일모델이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사실, 한국이 1989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구상할 당시 그 모델이 바로 국가연합이었다. 당시에 국가성을 드러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남북연합’으로 표기하여 국가성을 애매하게 두었으나, 이제 달라진 환경과 현실에서 국가연합 방식을 통일방안으로 가시화해도 될 때가 되었다.

지난 6월 12일, 김대중평화센터는 김대중도서관에서 6.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기념식 및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창조적 관여-3축 평화기획과 북한 국제화

공존형 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략적 인내나 유럽식의 비판적 관여를 넘어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창조적 관여 정책이 필요하다. 창조적 관여정책의 핵심은 3축 평화기획과 북한국제화다. 3축 평화기획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핵문제와 평화체제, 경제협력 등 세 개의 차원을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실현은 힘으로 평화를 지키는 바탕 위에서 관계 개선와 외교정상화를 위해 대화를 추진하고 이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담보하는 경제협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한 차원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단선적 해법에서 벗어나 세 차원을 연계하는 대전략을 가지고 한반도 신통일구상을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극단적으로 폐쇄된 북한을 국제사회에 연결하고 편입하도록 돕는 북한 ‘국제화’를 목표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출하여 규범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세계적 수준의 관여정책인 것이다.4)

통일을 위해 북한의 경제력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 다음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북한을 지금보다 훨씬 개방적인 체제로 변화시켜야 한다. 극단적으로 폐쇄된 현재의 북한을 상대로 하여서는 핵 협상이나 통일대화 어떤 것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을 구호로 내걸고 탈 군사화, 현대화, 국제화를 향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제교류와 관심이 필요한 곳에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제거하고 청년동맹 명칭에 김일성·김정일주의 대신 사회주의를 소환하며, 사회주의 국제연대를 상징하는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를 도입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가는 곳마다 “세계와 경쟁하라, 세계에 도전하라, 세계를 앞서나가자”라는 북한식 세계화 구호를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고 국민의식이 달라졌음을 직시하고 과거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북한의 ‘두 국가’ 주장에 체제 경쟁적 맞대응을 하거나 반대를 위한 정책을 펴는 과거의 방식을 탈피하여, 국가연합에 입각한 새로운 통일미래를 구상하고 3축 평화의 복합기획과 북한 국제화를 증진하는 창의적 대북·통일정책을 적극 구사해야 할 때다.

박명규·전재성·김병연 외, 『북한국제화 2017』(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3), pp. 7-9.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 이후 아직까지 남북을 비롯한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건너편에 세워진 구호판. 2009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의 한 구절이다. ⓒ통일뉴스(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