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08 Vol.216

광복 80주년! 이재명 정부 출범,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다시 생각한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시작
‘광복’에서 ‘평화’로 가는 미래 설계해야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충돌이 벌어지고 국제질서가 예상 밖으로 급변하는 상황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 격변의 때에 이재명 정부가 새로이 출범하여 우리의 체제 역량을 재정비하고 미래지향적 정책들을 모색하게 되니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광복 80년 역사적 성취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반도를 꿈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했지만, 휴전선을 비롯한 군사분계선의 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한국의 발전은 정말 경이롭다. 경제 성장을 이룩한 동력의 바탕에는 잘살아보려는 열정과 노력이, 민주화를 달성한 기저에는 개성과 인권을 향한 헌신적 투쟁과 신념이 있었다. 한국 국민의 더 나은 삶을 향한 부지런함과 사회의식이 한국을 개방화, 세계화, 정보화로 이끌었고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과 K-팝의 역동성이 작동하게 만들었다.

탈냉전 30년의 교훈과 시대적 변화

한국의 역량 가운데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세계사적 격동기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대처한 능력이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체제 전환을 하면서 냉전이 종식될 즈음 곧바로 북방정책으로 한국의 외교, 경제, 문화의 지경을 넓혔다. 중국이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면서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고, 이후 한중 간 경제적 사회·문화적 관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전 세계가 각종 교통, 물류, 정보, 투자, 문화로 연결되는 가운데 한국은 세계화와 정보화, 개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급변하는 세계사적 대전환을 계기로 성장의 동력을 만들었으니 정말 놀라운 성취였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탈냉전으로 이어지던 1988년에 나온 ‘7·7 선언’은 더 이상 북한이 적대 관계가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 동반자 관계임을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독일이 통일되던 상황에서 성안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을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로 규정하고 교류 협력과 긴장 완화를 통해 민족공동체성을 확대 강화하는 점진적 통일 방안을 자리 잡게 했다. 이런 합의에 기초해 남북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다양한 남북 교류가 진행됐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이루어졌다. 한국의 여러 민간단체와 종교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도 활발했다. 국민들의 인식도 좋아졌고 한반도 지정학 리스크도 크게 줄어들었다. 정치적 변동에 따라 롤러코스터 같은 기복을 겪기도 했지만, 남북관계 진전을 향한 목표는 변함이 없었고 광범위한 공감대가 작동했다. 그것이 한반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바탕이기도 했다.

2025년 우리가 접하는 시대 상황은 탈냉전 30년의 기조와 현저히 달라졌다. 세계화 시대를 뒷받침하던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미국의 압도적 패권 능력,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 그리고 자유무역 체제는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미·중 패권 대립의 심화와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역시 이런 세계 질서의 동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동맹 가치나 자유 무역보다 미국의 이익과 관세 방벽을 강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안보적 경제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은 핵 무력에 더욱 의존하면서 더 이상 남북 간 교류와 협력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인터레그넘(Interregnum), 즉 ‘기존 질서는 약화되는데 새 질서는 출현하지 못한’ 전환기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는 불확실성과 복합 위기가 커진다. 탈 냉전기에 우리가 활용한 세계 질서나 국제 환경이 크게 달라졌고,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초연결성이 복합성을 더함으로써 작은 충격이 큰 위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나비 효과도 커지고 있다. 향후의 충격과 위험은 경제, 심리, 문화, 기술, 감정 등 여러 차원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도래할 수 있기에 다가올 미래충격에 대비할 복합 역량의 구축이 더욱 필요하다. 동북아에 신 냉전을 초래할 우려도 높아진다. 한미동맹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큰 한국으로서는 이런 변화가 초래하는 충격파가 적지 않다.

7·7 선언은 1988년 7월 7일에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이다. ⓒ국가기록원 1991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 고위급회담 모습. 이 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통일부

‘평화통일’ 중요한 가치이자 미래 비전

이제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광복 80주년은 포스트 탈냉전 30년을 준비하는 시작이 돼야 한다. 세계 질서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지혜롭게 한반도 미래 비전을 추진해가는 유연함과 기민함이 필요하다. 탈냉전을 기본 전제로 삼고 추진해 온 그간의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여전히 견지해야 할 우리의 원칙과 비전을 재확인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엄중해지는 시대 상황에 대한 경각심과 대응력을 키우는 진지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란 두 화두는 더없이 소중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두 목표는 앞으로도 필수적이고 관건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지혜와 노력이 경주돼야 할 핵심의 가치 지향이다. 한국의 발전 동력이나 미래 전망은 모두 이로부터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냉전 시기나 탈냉전기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요구된다. 탈냉전 30년을 넘어선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비전을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우선 평화와 통일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고 미래 비전임을 명료하게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이 어렵고 현재 상황이 아무리 어두워도 긴 역사를 내다볼 때 이 두 가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민족을 단순히 혈통과 동일시해선 안 되지만 오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한 역사 공동체의 가치와 힘을 경시해선 안된다. 동시에 평화와 통일은 연결되면서도 구별되며 양자의 접합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평화 만능론이나 통일 지상주의는 모두 이 미묘한 상호관계를 무시한 태도다. 한반도에서 평화 없는 통일이나 통일 전망 없는 평화는 추구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치, 경제, 문화 영역별로도 구별되고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에서도 다층적인 관계가 작동한다. 이 복합적 연계를 무시하면 많은 비용을 치루고 긴장을 확대시킬 수 있다. 이런 복합적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심대한 변화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우선 세대 변화에 따라 민족 감정이나 대북 인식이 크게 변했다. 한국인 대부분의 의식 속에 분단과 전쟁의 체험이 자리할 공간이 옅어지고 있다. 60대 이상에게는 전후 복구와 산업화의 땀방울이 강렬한 세대 경험으로 자리한다. 40, 50대에게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역동적 변화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을 터이다. 현재 20대 청년들에게는 디지털 시대 이후의 시대는 모두 역사이고 전승이며 구성된 기억일 뿐이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주 외국인이 늘어나고 다문화 상황이 진전되면서 오랜 민족 감정과 혈통 의식도 많이 옅어졌다. 많은 국민의식 조사는 최근 한국 사회의 대북 인식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부차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북한이 통일이란 목표를 포기한 후 우리 내부에서도 2국가론에 호응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통일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탈냉전 초입의 정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7·7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포스트 탈냉전 상황에서 업그레이드하고 변형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아마도 그 핵심은 무리한 통일 추구는 포기하고, 의도적인 흡수 통일도 추진하지 않으며 평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로 통일을 상정한다는 정신일 것이다. 이 정신을 변화한 시대 상황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당사 섬유업체 내부 모습, 2004년 남북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이 조성되었으나, 201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전면 중단되었다. ⓒSPN

민주평통, 혁신과 소통 역량 키워야

또 하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는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과신하지만 그 위험은 위와 아래 모두로부터 올 수 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SNS의 확산으로 인한 정보의 왜곡, 편향된 집합 감정, 대중적 휩쓸림 등으로 인해 심대한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적 정보소통을 통해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사회 통합력을 확대하는 노력이 경주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불안과 롤러코스터 상황을 반복할 수 있다. 평화의 메시지는 군사적 충돌 위험이 커지는 시대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중시되는 가치다. 이미 6·25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최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방어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평화 외교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욱 요청된다. 더하여 남북한이 전쟁은 안 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메시지 발신과 관리가 필요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이런 고귀한 시대정신을 위해 설치된 헌법기관이다. 이름 그대로 민주와 평화통일이란 가치 아래 전 세계 디아스포라 한인 사회까지 망라된 세계 유일의 독특한 기구다. 그동안 다양한 차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지만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춰 혁신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지구촌 한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관심을 엮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우호적이자 비판적이고 민족적이자 세계주의적인 존재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탈냉전 이후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 민주평통 역시 진지한 자기 혁신으로 소통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상상력을 지구적으로 확대시키는 본연의 역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광복 80년, 이재명 정부 출범이 포스트 탈냉전시대를 감당하는 혁신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8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 악수 장면. ⓒ로이터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