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06 Vol.215

국제사회의 패권국 위상을 포기한 미국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1973년의 저서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경제 대혼란은, 지배적 경제를 가진 세계적인 지도국의 결여가 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 패권국이 있어야만 세계평화가 유지된다’는 패권안정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패권안정이론은, 글로벌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는 시스템의 규율을 만들고 집행하는 패권국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패권국은 글로벌 질서를 지도하는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능력도 중요하나, 패권적 지배체제를 창설하는 의사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려는 의지가 있었으나 능력이 부족했다. 반면 미국은 능력은 있었으나 의지가 없었다.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하고 세계질서는 혼란에 처했다는 것이 찰스 킨들버거의 지적이다.

패권의 존재는 공공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글로벌 질서 유지를 위해 공공재를 제공할 것인가? 트럼프 시대 미국이 더 이상 지구적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패권유지가 힘들고 세계질서는 급격하게 흔들릴 것이다. 트럼프 시대 미국은 글로벌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으며 그럴 의지 또한 없어 보인다. 사실 능력이 축소되면 의지도 반감된다. 능력 없이 의지만 있으면 국력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물려받은 미국의 빚은 36조 달러(약 5경 2,200조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는 선거공약으로 감세를 주장해 국세수입은 더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는 관세로 세수를 충당하려 한다. 미국이 촉발한 관세전쟁은 미국이 처한 경제능력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이런 미국의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명분과 여론을 중시하다가 실리를 취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본 트럼프는 미국의 힘과 능력에 맞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고자 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미국의 힘을 쓸데없이 사용하지 않고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다만 미국이 전통적인 고립주의 정책으로 돌아갔다고 하나, 이스라엘이 포함된 중동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고립정책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정책결정이다. 이는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미국에 사활적 이익이 아니고서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활적 이익인지의 관점이 사안마다 달라지면서,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단기적 차원의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질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공공재에 기반한 질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질서에 참여하는 구성원은 누구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에는 이러한 비용지불 여부로 미국과 동맹국들 간에 많은 논란이 발생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거래에 기반한 정책요구로 한반도 정세도 요동칠 수 있다. 트럼프가 가치와 신념의 정치보다는 이익과 거래의 정치를 전개함으로써 한미관계에 변화가 초래될지 모른다. 우리 앞에는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 북핵 문제 등 염려스러운 일들이 많이 놓여 있다.

이런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는 전통적 동맹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경제와 안보를 균형 있게 관리하면서 국가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적인 사안마다 한국의 입장을 설파하고, 대북정책에서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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