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가치를 가르치는 ‘중간 세대’ 교사들
“‘윗세대’가 일군 대한민국,
‘미래 세대’가 평화통일로 완성해야”
6·25전쟁 75주년과 분단 80년을 맞아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고 평화통일의 가치를 다시금 되짚어보는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대담에서는 실향민 3세, 참전용사 후손, 북한이탈주민 교사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교육자들이 세대를 넘어선 전쟁의 아픔과 가족들의 삶을 바탕으로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그 길을 함께 고민합니다. 전쟁의 상흔을 넘어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며, 평화통일이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DISCUSSION




본격적인 대담에 앞서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수원제일중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부모님 양가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들이 계십니다. 외조부모님은 황해북도 개풍군 출신으로, 분단 이후 북쪽에 남은 가족들과 생이별하셨습니다. 그런 사연을 들으며 자라난 저는 이산가족 3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인천시 연수구에 있는 GGVS국제학교에서 역사와 통일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6·25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외할머니가 살아 계시고, 외할머니의 형제인 할아버지 세 분은 6·25 참전용사이십니다.
저는 학창 시절을 북한에서 보낸 뒤 2008년 우리나라에 입국한 탈북민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친인척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이기도 합니다. 현재 남북사랑학교에서 다양한 탈북 배경을 지닌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족의 삶을 뒤흔든 전쟁과 분단
세 분의 조부모, 부모 세대는 전쟁 및 분단과 관련해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반동분자’로 분류됐습니다. 6·25전쟁 때 국군이 북진하자 마을의 지주 한 분이 국군을 도와 지역 치안대장 역할을 하셨고, 할아버지가 가까운 거리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도우셨어요. 휴전 후에 이 사실이 북한 당국에 알려지면서 할아버지는 간첩 혐의를 받아 감옥으로 끌려갔고, 모진 고문을 끝에 옥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심지어 시신도 돌려받지 못했죠. 이 일로 아버지와 일가친척은 ‘죽어서도 조선노동당에 충성하겠다’는 맹세와 할아버지의 일을 후대에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연도 모르고, 어릴 적 학교에서 북한에 유리하게 꾸며진 6·25전쟁 내용을 배운 뒤 아버지에게 “아버지도 전쟁 때 군대에 나가서 미국 놈들하고 싸웠어요?”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아버지는 이내 등을 돌리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이모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당시 등을 돌렸던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친가에서는 대고모부님이 6·25전쟁에 참전하셨다가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하셨고, 지금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외가에서는 외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하셔서 북한군과 싸우셨고, 전쟁 당시 큰 부상을 입고 상이용사로 전역하셨습니다. 이후 부상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197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외조부모님은 가족을 북에 두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산가족이기도 합니다. 대규모 중국군의 개입으로 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하던 당시 북한군이 내려오면 남자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외할아버지만 남쪽으로 피신하기로 했고, 외할머니와 친척들이 경의선 토성역으로 배웅을 나왔는데요. 세 살배기 딸을 안고 남편이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외할머니가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한 달 내로 돌아오겠다며 딸을 시누이에게 안기고는 함께 기차에 오르셨답니다. 안타깝게도 피난 이후 외조부모님은 두고 온 딸의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10대 때 6·25전쟁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전쟁 당시의 생생한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전쟁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은 외할머니 이웃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눈에 총상을 입은 그분은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안구와 시신경이 밖으로 돌출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분의 여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였는데도 전쟁의 참담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6·25전쟁에 참전한 세 할아버지 이야기도 많이 하셨는데요. 두 분은 전투 중에 전사하셨고, 한 분은 북한군에 생포돼 포로로 끌려가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해서 가족 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국가유공자의 후손이자 이산가족 3세로서, 저는 윗세대가 겪은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우리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교사로서 학생들이 평화통일을 이끌어갈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윗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든든한 다리가 되겠습니다.
- 진성민 수원제일중학교 교사
전쟁과 분단의 경험이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북한 당국에 충성을 맹세한 끝에 살아남았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잃었고 제사조차 지낼 수 없었습니다. 당의 용서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동분자의 후손이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본인은 물론 자녀들의 사회적 성장에도 제약이 있었죠. 어린 시절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깰 때마다 아버지는 벽을 마주 보고 앉아서 조용히 울고 계셨습니다. 그땐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현실이 막막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어릴 때 대고모님과 외할머니께 맡겨져 자란 적이 있는데요. 대고모님과 살 때는 매년 현충일을 전후해 국립서울현충원에 계시는 대고모부님께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외할머니와 살 때는 6·25전쟁 때의 경험담, 특히 외할머니의 딸인 큰이모와 헤어진 그 순간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들려주셨죠. 우리 가족은 이렇게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짊어지며 살아왔고, 참전용사의 후손이자 이산가족 3세인 저도 어른들이 겪은 고통을 상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할머니는 늘 전장에서 산화한 형제들을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6·25전쟁 때 국군에 힘을 보탠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저와 사촌들에게 ‘너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라, 전사한 할아버지들이 목숨을 바쳐 너희에게 준 선물’이라며 늘 감사함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죠. 그러면서도 전쟁을 직접 겪은 외할머니는 남북이 여전히 휴전 중이기 때문에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 모른다며 지금도 불안해하십니다. 외할머니 세대에게 있어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인 겁니다.
고정불변한 국가적 과제, 평화통일
전쟁과 분단이 세 분의 인생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자라면서 가족들에게 들은 전쟁과 분단의 경험담은 곧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나아가 역사 교사로서 미래 세대를 가르치게 됐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는 통일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통일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기에 폭넓은 통일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통일 정책 자문 및 수립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윗세대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됐고, 제가 이런 나라의 일원이라는 게 더욱 자랑스러워졌습니다. 한편으로는 휴전과 분단을 통해 남한만이 누리게 된 자유가 결국 ‘반쪽의 자유’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실감했는데요. 지금의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통일인 만큼 학교에서 역사와 통일을 교육하는 동시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도 펼치는 중입니다.
북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은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탈북민으로서 한국에 온 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두 분의 바람이 생각났는데요. 이왕이면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는 탈북민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통일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덕분에 남북사랑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통일 의식 고취에 앞장서는 선생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통일의 필요성을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미래 세대에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통일의 이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중 하나로 인권을 꼽습니다. 학생들에게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통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김정아 GGVS국제학교 교사
통일을 위해선 ‘먼저 온 통일’인 탈북민의 사회 정착과 화합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국민적 공감대도 확산될 수 있습니다. 탈북민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작은 통일’을 이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 조성애 남북사랑학교 교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시대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대한민국을 우리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와 민주주의가 남한을 넘어 한반도 전체에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평화통일 그 자체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평화통일은 우리나라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지상과제입니다. 하지만 통일을 향한 국민의 염원은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통일을 정치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통일의 불씨를 되살리려면, 통일을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결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권은 국가와 인종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민족으로 이뤄진 북한의 인권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권을 시대적 가치로서 끊임없이 고양시킨다면, 북한 주민이 더욱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의 원동력도 되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공존과 통합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여전히 분단된 채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안에서도 통일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줄곧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존을 추구해야 하며,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 힘을 합쳐 나아가는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존과 통합의 정신이 우리나라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한반도의 평화통일도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대를 초월한 모두의 평화통일’을 만들어 가다
세 분은 교육자로서 미래 세대에게 어떤 평화통일 교육을 하고 계신가요?
앞서 인권을 시대적 가치로 꼽았는데요. 이런 신념의 연장선상에서 제가 만나는 모든 학생에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영화 속 허구가 아닌 실존하는 참상이며,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기에 북한 인권 문제 또한 우리가 모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권과 통일을 연결 지어서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한결 긍정적으로 통일을 생각하고 바라본다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다.
학생들의 평화통일 감수성을 일깨우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통일에 관해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통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와 같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가족에게 응원 편지 쓰기, 평화통일 글쓰기, 전쟁과 분단 역사 유적지 탐방 등을 통해 평화와 통일에 대해 직접 고민하고 그 가치를 내재화시킬 수 있는 여러 계기를 마련하고 있죠. 아울러 타 학교와의 단합 체육대회와 공동 프로젝트, 지역 축제 참여 등을 통해 탈북민 학생들이 ‘일상 속 통일’을 되도록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쳐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을 기리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큰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이천호국원 등에 방문해 참배하고 나면, 순국선열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화통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확실히 높아집니다. 윗세대를 존경하는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활동이다 보니, 인성 교육이라는 효과도 함께 얻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내부 갈등을 넘어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소통을 중심축 삼아 통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실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과 탈북민 학생들, 다른 국적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다양한 것들을 함께 체험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경험의 장을 자주 마련하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통일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한반도에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알려주면, 이론적 교육보다 훨씬 더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생생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통일 교육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모 중학교에 통일 안보 교육을 나갔는데, 학생 500여 명에게 통일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원하지 않는다고 답해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학생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는 탈북민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화합할 수 있게 지원함으로써 ‘대한민국 속 작은 통일’을 경험하도록 이끄는 일도 중요합니다.
외할머니가 세 살 딸과 헤어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남북분단이 가족과의 생이별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훨씬 더 잘 공감하더군요. 이런 점에서 어른들이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경험을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불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 교육도 평생 교육 차원에서 꾸준히 시행돼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평화통일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한반도를 통일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전쟁과 분단을 겪은 ‘윗세대’와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미래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함께, ‘중간 세대’로서 어떻게 평화통일을 이뤄 나갈 것인지에 대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북분단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자 우리 가족의 실체적 어려움입니다. 윗세대가 이룩한 부강한 대한민국을 디딤돌 삼아 한반도가 새로운 희망의 한반도로 나갈 수 있도록 미래 세대가 통일에 대해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고민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저는 윗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중간 세대로서, 앞으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통일 교육을 시행해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미래 통일 인재를 양성해 나가겠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간직한 채 꿋꿋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윗 세대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미래 세대는 전쟁의 중심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하나 됐던 윗세대의 발자취를 교훈 삼아, 앞으로 평화통일이라는 희망적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 된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한층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저는 제가 머무는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성장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통일 공감대를 이루는 ‘작은 통일 사회’를 만들어가고 그 범위를 꾸준히 넓혀 나가겠습니다.
윗세대의 희생과 애국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민주 시민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미래 세대 여러분, 통일은 단순히 남북이 한 나라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통일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머무르지 않도록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이해하며, 공감대를 만들어 나갑시다. 저는 ‘남한 말’과 ‘북한 말’이 따로 없이 모든 학생에게 ‘한반도어’를 가르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아름다운 한국어와 통일의 중요성을 교단에서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