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기조 下
해외 원조 축소와 글로벌 취약국가의 위기
소프트파워의 불확실한 기대효과가 아닌 실제적 국익을 추구하는 트럼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에 입각한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부채 문제를 해소하고,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며, 국가 이익을 실질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하드파워(물리적 영향력) 증진에 방점을 두고 패권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그동안 전방위로 전개됐던 미국 공공외교의 상당 부분을 폐기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해외원조 및 개발 협력 활동은 여러 지역의 보건 안보와 안정성 유지를 통해 미국에도 상당하게 기여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폐지한 것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 운영에 기댄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과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소프트파워의 불확실한 기대효과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의 호감과 찬사를 받으며 사랑받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모두가 미국을 싫어하더라도 중국의 부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미국의 세력 회복과 진정한 패권 지위의 공고화에 집중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USAID 폐기의 여파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취임과 동시에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고,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미국 영토로 만들겠다는 언급으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불법 이민자 추방, 범죄 카르텔 척결 및 소수자 우대 정책의 폐기 등을 강력히 추진했으며, 바이든 행정부의 수많은 행정명령을 뒤엎는 새로운 행정명령, 각종 각서와 포고령 등 수많은 대통령 행정조치에 서명했다. 가장 극단적이지만 우방과 동맹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관세정책의 대표적 사례인 중국에 대한 관세정책, 타국 영토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어젠더, 그리고 중국의 기술굴기를 무력화하려는 과학기술정책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고립주의’보다는 ‘신팽창주의’ 혹은 ‘일방주의(unilateralism)’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관료주의에 따른 국가 예산 낭비와 부패 청산, 행정 효율 극대화를 목적으로 ‘정부효율부(DOGE)’를 설립했고, 가장 먼저 미국의 해외원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USAID는 1961년 외국원조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독립 기관으로, 2023년 회계연도 기준 연간 예산이 400억 달러(59조 원)에 달한다. 미국 해외원조 총액의 60%는 USAID가, 30%는 국무부가 담당하며, 전체 해외원조 규모는 약 630억 달러에 이른다. USAID의 지출이 최근 급증한 것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인도적 지원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4일 USAID의 해외원조 관련 새로운 지출을 90일간 동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이 미국의 핵심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부패했으며, 잘못된 우선순위로 예산을 낭비해 왔고, 미국이 아닌 적들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이유로 USAID 폐지를 추진했다. 그는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탈퇴했다. 2025년 2월 1일 USAID의 홈페이지가 폐쇄된 데 이어 2월 3일에는 워싱턴 D.C. 본부 사무실도 폐쇄되었고, 직원 1만 명이 강제 휴직 처리되었다. 당초 90일로 계획된 USAID 폐지 검토는 계획보다 앞당겨 6주 만에 완료되었으며,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해외원조 계약의 83%를 취소하고, 총 6,200개 프로그램 중 1,000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설립 74년 만에 폐지된 USAID는 올 해 7월 1일까지 특정 기능이 국무부로 이관될 예정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외원조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로서, 2023년 한 해 동안 720억 달러를 지출했다. UN의 2024년 전체 인도적 지원액 중 40%를 미국이 부담했으나, 현재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대한 군사 지원과 긴급 식량원조를 제외한 모든 UN 기여금이 중단된 상태다. 수단, 에티오피아, 콩고, 소말리아와 같은 국가에서는 USAID의 폐지가 국가 위기나 다름없으며, 남아프리카, 케냐,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등에서는 보건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실험용 병원균이 통제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전염병 감염 검사가 중단되었으며, 검역 없이 동물이 이동하고 있어 전염병의 예방·진단·치료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USAID는 그동안 지원하는 민간단체에 대해 지원금 사용과 관련된 회계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이번 조치로 인해 USAID의 지원을 받던 OneAID는 가자지구, 아이티, 레바논, 나이지리아, 시리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 예산이 삭감되었다. 미국의 지원금이 테러단체인 후티 반군과 탈레반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예멘에 대한 지원은 전면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주민들은 무장단체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무장단체는 미국을 비판할 구실을 얻게 되었다. 내전, 쿠테타, 재난재해가 빈번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이 중단된 것은 보건 위기와 인권침해 문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USAID 폐지 이후, 미국이 잃는 것들
미국 국무부 해외원조실의 USAID 협력관으로 근무했던 퇴직 외교관 스티븐 헨드릭스(Steven E. Hendrix)는 최근 국무부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USAID 폐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USAID의 많은 원조 프로그램이 단순한 소프트파워를 넘어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기여해 왔다며, 이번 폐지가 미국의 손해라고 주장했다.
먼저, 해외에서 근무하는 USAID 직원들은 대부분 위기 지역에 파견되므로, 미군이 개입할 수 없는 지역에서 분쟁과 질병 확산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해왔다. 즉 USAID는 평화유지군이 가지 못하는 곳에서 지역의 안정에 기여한다. 식수와 의료품이 절실한 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전쟁이 지속되는 수단,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이 전 세계적 팬데믹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조기 감시와 대응을 수행해 왔다.
한편 USAID의 해외 식량원조 프로그램 예산은 미국 농수산물 수출의 약 1% 미만이지만, 약 20억 달러 규모의 안정적 시장을 제공하며 1만 5천~2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 따라서 해외 식량 원조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은 미국의 식품가공, 제조, 운송 등 관련 산업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쳐 이들 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헨드릭스는 USAID 폐지로 이미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 국무부가 해외원조 업무까지 추가로 맡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USAID가 축적해온 해외원조 분야의 행정·관리·감독에 관한 전문성을 무용지물로 만들 뿐 아니라, 관료적 공백까지 초래해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파워보다 실익? 트럼프의 공공외교 재편 전략

트럼프 행정부의 USAID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소프트파워를 경시한 결과라기보다는 현재 미국의 국가 재정이 극도로 열악하다고 판단한 그의 위기의식이 더 근본적인 배경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원조 기관뿐 아니라 ‘우드로윌슨국제학술센터’, ‘전미민주주의기금(NED)’, ‘연방 조정·화해 서비스(FMCS)’, ‘박물관·도서관 서비스(IMLS)’, ‘정부기구간 홈리스 대책위원회’(USICH), ‘커뮤니티개발금융기금(CDFIF)’, ‘소수계비즈니스개발청(MBDA)’ 등 수많은 미국 내 기관의 기능과 인력을 최소화하고 있다.
2024년 회계연도에서 미 연방정부는 1조 8천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국가 부채 이자만 해도 국방부 예산을 넘어섰다.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국가부채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3년 내 국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세청 직원을 4만 5천 명 해고하며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고, 보훈부 등 여러 정부 기관도 축소시키고 있다. 심지어 향후 5년간 매년 국방 예산을 8%씩 삭감할 계획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관세정책을 펼치는 이유도 예산 적자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이처럼 심각한 부채 상황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효과가 불확실하고, 장기적인 노력과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공공외교 활동에 이전과 같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공외교 차원에서 보면, USAID의 폐지보다 더 충격적인 조치는 미국 국무부 산하 ‘글로벌미디어국(USAGM)’ 활동이 대폭 축소된 일이다. USAGM은 ‘미국의 소리(VOA)’,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자유유럽방송(RFE)’ 등 관영매체의 모든 활동을 2025년 3월 중순에 중단했다. 이어 4월 중순에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3억 명의 시청자를 보유한 아랍권 유일의 미국 방송인 ‘알후라(Alhurra)’의 활동도 대폭 축소했다. 이들 매체는 특히 권위주의 국가의 대중을 대상으로 국제정치의 주요 현안과 각종 쟁점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전달하고, 자유주의 진영을 선전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욱 컸다.
소프트파워는 부족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는 공공외교의 실익
탈냉전 이후 미국의 공공외교는 각 행정부가 내세운 외교정책이나 국제적 어젠더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자 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즉 타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협조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타국 여론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은 공공외교에 진심이었다.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원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동맹 및 우방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전방위적인 공공외교를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이나 빈곤퇴치와 같이 다자주의의 역할이 절대적인 국제적 어젠더 자체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형태의 국익에 손해를 끼친다고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외교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해외 대중에게 호소할 유인 자체가 없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원조와 같은 공공외교 부문에 다시 관심을 갖거나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정책 기조에서 돌아서게 될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 변수는 단 하나로 보인다. 과거 미국은 이슬람권의 반미 정서가 미국 시민에 대한 테러로 표출된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대감을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가 국익을 증진시키기보다 오히려 손해를 끼친다고 인식하게 될 경우, 그는 아마 미국의 하드파워와 패권적 지위가 세계와 인류에 유익하다는 점을 설파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공공외교를 다시 펼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