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06 Vol.215

<남으로 가는 길>의 장르적 경향과 제작 전략

보편적 인권 문제로 확장하는 ‘탈북 영화’의 새로운 지평 제시

“북한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는 ‘탈북(脫北)’이라는 단어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남한 및 동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에 따라 탈북민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는 이미 1990년대부터 제작되어 왔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담은 독립영화들이 주를 이뤘으나, 점차 상업영화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이뤄졌다. 2025년 4월 2일에 개봉한 <남으로 가는 길> 또한 그 계보를 잇고 있다.

남으로 가는 길
On the way to the South(2023)

개봉

2025-04-02

감독

김상래(한국),
바트돌가 소위드(Battulga Suvid, 몽골)

출연

박광현, 우수정, 최준용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존을 향한 투쟁기

<남으로 가는 길>에는 몽골을 경유하여 남한에 입국하기 위해 사선(死線)을 넘는 한 가족의 탈출기가 담겨 있다. 시간적 배경은 2004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반역자로 몰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주인공 명수(박광현 분)는 아내 지영(오수정 분)과 어린 아들 상욱(양희상 분), 그리고 어머니 혜숙(권남희 분), 형 호성(최준용 분)과 함께 브로커(신용훈 분)의 안내를 받아 중국-몽골 국경 지대의 고비사막을 통과한다. 그러나 브로커가 가리킨 길은 안전한 루트가 아니었고, 이들을 노리는 북한 공작원 태진(정종우 분)과 철승(조운 분) 일행이 거리를 좁혀 온다.

영화는 황량하고 척박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존을 향한 명수 가족의 처절한 투쟁을 기록한다. 동시에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 속에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준다. 혜숙은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나고, 호성은 태진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지만, 명수는 끝내 지영과 상욱을 지키며 살아남는다.

탈북 서사가 증발된 도주와 추격의 로드 무비

<남으로 가는 길>의 인물 구성은 비교적 단조롭다. 명수 가족을 중심으로 이들의 탈북 성공을 저지 혹은 방해하는 자들과 반대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인물들로 양분되어 등장한다. 각 인물의 성격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나뉘어져 있고, 호성을 제외하면 성격의 변화나 내적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영화 속에서 북한의 권력 구조, 통제 체제, 경제 상황이나 생활 양식 등이 서사의 동기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 고위직 관료로 보이는 지영의 아버지(이재용 분)가 정치적 위기에 몰려 사위인 명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을 데리고 탈출하라고 전한 뒤, 청산가리를 탄 차를 마시고 자결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후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관련 이야기가 중심 서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탈북의 동기보다는 명수 가족의 생사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태진과 철승, 그리고 이들을 안내하는 상철(강필선 분)과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사상이나 신념, 국가나 당보다는 각자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 명수 가족을 쫓는다. 그리하여 <남으로 가는 길>은 탈북 서사가 희미해진 채 도주와 추격이 이어지는, 탈북 서사가 탈색된 일종의 로드 무비와도 같은 장르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합작을 통한 영화적 특수성의 획득, 그리고 보편성의 확보

<남으로 가는 길>은 첫 화면에 “이 이야기는 탈북민 가족과 몽골 국경 수비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여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을 통해 작품의 차별성을 공표했다. 이 영화는 그간 시도된 바 없었던 몽골 측과의 합작을 통해 영화적 특수성을 확보했다.

영화에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중대장으로 부임한 어드(Samdanpurev Oyunsambuu 분)와 소령으로 진급해 도시로 떠나는 빌렉트(Erkhembayar Ganbold 분), 어드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롤(Zamilan Bolderdene 분), 마을의 어른 역할을 하는 할머니 돌마(Sarantuya Sambuu 분) 등 몽골 국경 수비대의 일원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명수 가족이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그러면서 영화는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를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제작 전략에 따라 <남으로 가는 길>은 ‘탈북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나아가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통일 담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역할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