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아 수교···
중동 외교 재편의 신호탄일까?
북한 견제와 재건 협력의 전략적 교두보 마련
2024년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시리아는 60년간 이어진 강압 통치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동시에 전후 재건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13년 내전과 국제 제재, 경제 붕괴로 시리아는 GDP 60% 감소, 실업률 63%, 인구 절반 이상 난민화라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아흐마드 알-샤라 과도정부는 무장 세력 통합, 종파 갈등 해소, 초인플레이션 극복 등 복합적인 난제 속에서 국가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EU의 제재, 이스라엘의 공습, 러시아 군사기지 잔류 등 외부 변수도 여전하며, 약 4,500억 달러로 추정되는 재건 비용은 국제 협력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시리아의 수교는 양국 모두에 외교·경제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한국은 마지막 미수교국이던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의 중동 내 영향력 견제와 외교 다변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리아 역시 한국의 발전 경험과 기술을 통해 재건의 실질적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수교는 상호 신뢰와 협력을 위한 첫 걸음이자, 시리아 재건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 점진적 재앙
시리아의 정권 교체는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진 ‘충격적 붕괴’와는 다른 양상이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러시아 망명은 급작스러웠지만, 시리아의 통치 체제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무너졌다. 아랍의 봄 이후 13년간 이어진 내전, 구조적 부패, 잘못된 경제 정책은 아사드 정권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무력화시켰다. 2024년 현재 시리아의 GDP는 전쟁 전(2011년) 대비 60% 감소했고, 실업률은 63%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리아의 화폐 가치는 2011년 대비 98% 폭락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 인구 2,300만 명 중 53%에 해당하는 약 1,200만 명이 국내외 난민 신분으로 확인됐다.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난민촌에서는 하루 한 끼 식사조차 어렵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기반시설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세계은행은 시리아의 기반 시설 중 70% 이상이 파괴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전력 공급률은 23%에 불과하며, 안전한 식수 접근율은 41%로 집계됐다. 세계은행은 시리아 재건 비용이 최소 4,500억 달러(약 630조 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즉, 오랜 전쟁과 아사드 정권의 무능은 시리아 경제와 사회 전반을 서서히, 그러나 철저히 붕괴시켰다. 정부는 더 이상 전기, 깨끗한 물, 의료 등 기본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아사드 정권은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 강압 통치, 지친 국민의 마지막 자원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해 왔다. 새롭게 수립된 샤라 과도정부는 국민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된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너진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정치 통합, 경제 회복, 사회 안정이라는 세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취약한 새로운 질서: 과도정부의 시리아 통합은 가능할까?
시리아의 새로운 실질적 지도자 아흐마드 알-샤라는 통합과 포용을 내세우며 과도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취임 후 첫 TV 연설에서 “모든 시리아인을 대표하는 포괄적인 과도정부”를 약속하며, 안정을 회복한 뒤 자유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비전을 실현하는 길은 절대 순탄치 않다.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수많은 반군 단체를 통합해 국가 군대로 재편하는 것이다. 일부 세력은 새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여전히 소외나 보복을 우려하며 경계하고 있는 무장 세력도 많다. 과도정부의 주도 세력인 ‘헤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이들브 지역에서의 통치 경험은 있지만, 국가 전반을 관리할 행정 역량과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지역적이고 즉흥적인 통치 방식이 국가적 차원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시리아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관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장기간의 내전은 시리아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종파 간 갈등과 부족 간 경쟁, 대규모 난민 사태로 인한 사회적 분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는 수니파, 알라위파, 쿠르드인 등 다양한 집단에 새 정권이 아사드 체제의 권위주의를 답습하지 않을 것임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 회복은 단순한 수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과도기적 정의 또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수백만 명의 시리아인들은 과거 정권이 자행한 전쟁 범죄, 고문, 실종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권 충성 세력의 반발을 우려해 이를 지나치게 밀어붙이기는 어렵고, 반대로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새로운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과도정부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이 사안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에 올라있다.

경제적 재앙: 과도정부는 시리아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을까?
시리아 경제는 사실상 붕괴 상태다. 13년이 넘는 내전과 국제 제재는 산업 기반을 파괴했고, 농업을 마비시켰으며, 화폐 가치를 폭락시켰다. 공식 금융 시스템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현재 시리아 경제의 약 70%가 비공식 경로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 즉,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암시장, 현금 거래, 물물교환 등으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의 제재는 여전히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제24호 일반 허가를 통해 일부 인도적 지원과 에너지 보조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중앙은행과 금융 부문에 대한 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제재가 완화되지 않으면 대규모 재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제재 완화가 과도정부 내 강경 세력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내전 동안 시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였고, 경제는 국제기구와 지역 NGO 등 외부 지원에 의존해 겨우 유지됐다. 민간 부문은 일자리, 식량, 태양광 마이크로그리드를 통한 전기 공급 등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의 붕괴를 막아왔다. 그러나 현재 민간 기업들은 제재와 외국인 투자 부족, 고물가로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시리아 정부는 공공 부문 임금을 400%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세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는 지속 불가능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 경제 회복 없이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경우, 초인플레이션과 대량 실업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과도정부의 정치적 안정성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전환기 시리아와의 협력: 한국의 중동 외교 확장과 협력의 새 장
한국 정부가 유엔 회원국 중 마지막 미수교국이던 시리아와의 수교를 확정했다. 최근 시리아 과도정부와의 협의를 마친 한국은 국무회의를 거쳐 조만간 공식 수교 절차에 들어간다. 이로써 한국은 북한을 제외한 191개 유엔 회원국과 모두 외교관계를 맺게 되며, 교황청, 쿡제도, 니우에 등을 포함하면 시리아는 한국의 194번째 수교국이 된다. 시리아는 과거 북한의 대표적 혈맹국으로, 1967년과 1973년 중동전쟁 당시 북한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았고, 이후 탄도미사일과 화학무기 관련 기술 협력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3년 내전 끝에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고, 과도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이 가능해졌다.
지난 2월 한국 정부 대표단은 22년 만에 시리아를 공식 방문해 과도정부 외교장관과 회담했다. 양측은 수교에 뜻을 모았으며, 시리아 측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북한과의 관계를 최소화할 의향을 밝혔다. 현재 시리아는 이슬람 무장조직 HTS(헤이아트 타흐리르 알-샴)가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통치 중이다. HTS는 과거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단체로 지정됐으나, 현재 지도부는 극단주의 노선을 부인하며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최근 쿠르드계 무장조직 SDF가 정규군에 합류하기로 합의하는 등 내부 통합도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는 신속한 수교 추진으로 북한의 방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이후 쿠바, 시리아와의 수교는 북한의 개입으로 장기간 지연됐지만, 지난해 쿠바와 수교를 성사시킨 데 이어 이번에는 시리아와의 관계에서도 전환점을 마련하게 됐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장기 내전과 국제 고립을 겪은 시리아는 과도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수교는 한반도 외교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뿐 아니라, 향후 중동 지역에서의 협력 확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시리아 경제협력의 가능성과 국제정치적 함의
한국과 시리아의 수교는 양국 모두에게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었다. GDP 60% 감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된 극심한 피폐 속에서 시리아는 약 4,5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수요를 안고 있다. 한국은 시리아 재건을 위한 실질적 협력에서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 ICT, 의료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의 태양광 및 마이크로그리드 기술은 시리아의 전력망 복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시리아의 전력 공급률은 23% 수준으로, 분산형 전력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 디지털 인프라 부문에서 한국의 ICT 역량은 전자정부, 모바일 뱅킹 등 시리아 공공 영역의 디지털화를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시리아의 행정 효율성 제고는 물론, 부패 방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의료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모바일 클리닉 시스템은 시리아 난민과 저소득층에게 신속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병원 재건 프로젝트로도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선 국제 제재라는 장벽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시리아는 미국과 EU의 제재로 국제 금융망에 접근이 제한돼 있다. 한국은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제재 완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주도하고, 인도적 지원 예외 조항(제24호 일반 허가) 확대를 주도할 수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시리아 재건 특별 프로그램’을 제안해 단계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EU FTA를 활용해 유럽의 시리아 재건 기금과 한국의 건설·플랜트 기술을 연계하는 다자 협력 모델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동 내 한국의 경제·외교 입지를 동시에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시리아가 북한과의 군사적 유대를 끊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특히 건설 인프라와 기술 협력을 통해 북한의 불법 노동력 수출 통로를 차단하고, 한-시리아 공동 과학기술연구센터 설립 등을 통해 북한을 대신할 기술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초기 협력 단계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시리아 긴급 재생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3년간 약 3,000만 달러가 투입돼야 하는 이 프로그램은 ① 전력 인프라 복구 ② 의료시설 지원 ③ 직업훈련센터 운영 등을 핵심 과제로 설정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베이루트 무역관을 시리아 사무소로 확대·전환해 현지 기업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다만, HTS가 테러단체로 지정된 전력이 있는 만큼, 미국과의 협력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민간 주도의 협력 채널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 한국과 시리아의 협력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를 넘어 전후 국가 재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기회다. 6·25전쟁 이후 폐허에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경험은 시리아 국민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인 협력을 위해서는 제재 완화를 위한 국제사회 설득과 현지의 복잡한 안보 상황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번 수교가 한국의 중동 외교 지평을 넓히고, 북한 고립화 전략에도 기여하는 실질적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