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간은 새로운 삶을 위한
신의 뜻이었으리
처음 소개를 받을 때는 아나운서라고 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북에서 ‘방송원’이라 불리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으로, 우리로 치면 아나운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어릴 적부터 말솜씨가 뛰어나 자연스럽게 그 길을 선택했고, 이제는 남쪽에서 북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일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송지영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강사
앞서 온 사람으로서
잘 살아야죠.
그래야 뒤에 오는 이들의
본보기가 될 테니까요.
화술 좋기로 소문난 재주꾼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송지영 씨는 기업의 방송원이었다. 북에서는 선전 활동을 위해 정식 방송이 아닌 기업에서도 방송원을 운영한다. 송지영 씨는 2급 기업의 방송원이었다고 했다. 1급 기업은 5천~1만 명 규모의 기업, 2급 기업은 4천~5천 명의 노동자가 있는 기업을 일컫는다. 우리로 따지면 중견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송원은 일반 인민보다도 자유가 더 없어요. 조직 생활을 잘 해야 하고 화술이 좋아야죠. 평양이 아니라면 지방의 방송원은 대학을 나올 필요도 없어요. 뽑을 때도 신문을 읽어봐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봐라 이 정도예요. 그리고 집안의 성분을 따지죠. 3대까지 조사를 하니까.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였는가 하는 것도 보는 겁니다.”
함경도 경원군 출신의 그가 방송원의 길을 선택한 건 어릴 때부터 화술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게 계기가 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방송원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비교적 기회도 쉽게 잡았다. 기존의 방송원이 결혼을 하면 새로 사람을 뽑는데, 매일 출근해야 하고 비서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하니 자유롭지도 않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군대의 방송원을 꿈꾸던 차였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데다 키가 작아 가지 못했다.
“한때 탄광 검탄원을 꿈꾸기도 했어요. 가스도 측정하고 석탄의 질도 검사하고 그러는 거예요. 전문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너무 배고팠어요. 난방도 안 되는데 먹을 게 부족했거든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4명이 침대에 모여 앉아 먹는 얘기만 했어요. 내일 네가 백 리를 걸어 집에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와라, 떡을 가져와서 소금물에 비벼 먹자. 이런 얘기만 했어요. 밤에 넷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근처 천막에 몰래 가서 두부를 풍로에 구워주는 걸 사 먹기도 했고요. 그러다 선전대 생활을 시작했죠.”
어릴 때부터 화술이 좋았다는 게 선전대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선전대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해야 했다. 어떤 때는 북을 치다가 플롯을 불었다. 화술은 당연. 학교 다닐 때 익혀둔 바이올린 연주도 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방송원으로 뽑혔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마중물이 되고 싶어요
송지영 씨의 탈북은 둘째 오빠가 먼저 북한 땅을 떠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군에서 결핵에 감염돼 강제로 제대해야 했던 오빠가 중국을 거쳐 먼저 남한으로 떠났고, 뒤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이 탈북을 시도했지만 붙잡히고 말았다. 남북관계가 한창 좋았던 시기여서 다행히 큰 고초를 겪지는 않았지만, 끝내 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하는 여동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송 씨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동반 탈북을 결심한 것.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됐다.
지금 송지영 씨는 많은 일을 병행하며 지낸다. 주로 통일부 강사로 활동하고 가끔은 라디오 방송에도 나간다. 주말이면 파주 오대산 통일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을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대학교 글로벌 평화통일 남북통합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송 씨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이 행복하단다.
“성경을 읽는데 가슴에 와서 박히는 문구가 보이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는 통일을 위해 먼저 온 사람이구나. 내가 겪은 고난은 모두 새 세상에서 살게끔 하기 위한 예비과정이었구나. 앞으로 자유를 찾아올 다른 이들을 위해 마중물이 되어야겠다. 그게 지금 저의 꿈이자 바람이에요.”
그 말을 남기던 순간 송지영 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의 의미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그의 마음만은 느껴지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