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경쟁과 한국의 대응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본 AI와 외교·안보의 새로운 과제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기술을 넘어 안보·외교·산업 질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은 규범과 공급망, 거버넌스의 방향까지 재편하며 국제사회의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기술 강국을 넘어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본 글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AI 경쟁 구도를 살펴보고, 평화와 공존의 관점에서 한국의 대응 과제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미·중 기술 경쟁 속에서 각국은 주권 기반의 ‘소버린 AI’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셔터스톡
미-중 AI 기술 경쟁의 현황
오늘날 인공지능(AI)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과 사회적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범용 기술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AI 기술의 확보는 경제, 군사, 안보 측면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AI 관련 다양한 국제지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AI 관련 신규 투자 유치, ‘AI 활력도’1) 등에서 가장 앞장서 있으며, 그 뒤를 중국이 바짝 뒤따르고 있다. 특히 중국은 AI 머신러닝(ML)2) 부문에서 빠르게 성장해왔으며, 중국의 머신러닝 시장은 2023년 97억 달러 규모에서 2024년 151억 달러 규모로 1년 새 약 1.5배 성장하였고, 2030년에는 약 10배 성장한 시장 규모인 96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최근 주요 AI 성능 지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의 AI 기술력 격차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상위 AI 모델의 언어 이해(MMLU) 정확도, 멀티모달 이행(MMMU) 정확도, 수학 추론 정확도 및 코딩 통과율 등 성능 면에서 미-중 간 격차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3)
AI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거센 추격에 대하여 미국 산업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경계심을 드러내며 견제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 정치권에서는 AI 분야에서의 중국의 빠른 추격을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존 무레나르(John Moolenaar)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025년 7월 중국의 위협이 가장 시급하게 나타나는 첨단기술 경쟁 분야로 AI 분야를 지목하였으며, 9월 트럼프 행정부의 NVIDIA H200 칩에 대한 중국 판매 허용 결정을 비난하며 이로 인하여 중국이 AI 컴퓨팅 능력 부문에서 미국을 추격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한편, 현재 미국 내에서는 AI 기술 주도권의 핵심 요소인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출통제 정책을 둘러싸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 이후 중국에 대한 기술통제 정책을 강화하며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해왔으나, 중국의 자체 컴퓨팅 능력 및 반도체 개발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미국의 대(對)중국 기술통제 전략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정책이 조금씩 변화하긴 하였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장비의 대중국 유출을 막기 위하여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할 뿐 아니라 우방국의 참여를 독려하며 수출통제의 효과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은 자국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높이기 위하여 AI 반도체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과 중국의 AI 기술 추격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 정책 사이에서 명확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AI Index Report는 중국의 머신러닝 시장 급성장과 함께 주요 AI 성능 지표에서 미·중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https://hai.stanford.edu/ai-index/2025-ai-index-report] ⓒStanford HAI AI Index Report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과 함께 2025년 7월 ‘AI 행동계획(AI Action Plan)’을 발표했다.[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5/07/Americas-AI-Action-Plan.pdf] ⓒWhite HOUSE
AI 규범과 거버넌스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논의는 OECD, UN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크게는 인권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미국·EU와 주권 존중을 강조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양대 진영이 세력 확대를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4년 9월 미국과 EU 등 10개국을 중심으로 AI 분야에서 최초로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인 ‘AI와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관한 기본 협약’이 서명되었는데, 이는 AI의 개발, 배포, 폐기 등 전 주기에 대한 활동에 협약의 내용을 적용한다는 당사국의 법적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은 EU와 다른 AI 정책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2025년 7월 ‘AI 행동계획(AI Action Plan)’을 발표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AI 안전과 신뢰’를 중시하는 기조를 폐기하고 AI 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에 중점을 둔 ‘성장 가속화’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미국의 ‘AI 행동계획’은 혁신 촉진, 인프라 구축, 국제외교·안보 주도 등 3개 축을 기반으로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의 AI 발전 속도를 더욱 높이고 미국의 AI 관련 제품의 수출 확대를 통해 미국 중심의 AI ‘기술 블록’을 형성하고자 한다. 한편, EU도 AI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 약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하여 2025년 4월 ‘AI 대륙 실행계획(AI Continent Action Plan)’을 발표하여 유럽 전역의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혁신 및 산업 전략 방안을 포괄하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유럽의 핵심 가치인 신뢰할 수 있고 인간 중심적인 AI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EU 단일시장 내 명확한 규제를 운영하면서 혁신기업의 산업 참여를 위해 규제 통합 및 간소화를 추진하고자 한다. 반면, 중국은 2023년 10월 제3차 일대일로 정상 포럼에서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상’을 제안하였으며, 인권이 아닌 ‘인류의 권리와 이익’을 언급하고 AI 개발에 대한 타국의 주권 존중과 법률 준수를 강조하였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25년 9월 ‘AI 안전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2.0’을 발표하며 중국이 주도하는 AI 안전 거버넌스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구축하고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제규범 형성의 계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의장인 이재명 대통령은 글로벌 AI 산업을 선도하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대표와 만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도로 도약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한국의 AI 정책과 대응 과제
한국은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소버린 AI(Sovereign AI)’ 달성을 위하여 대규모 인프라 투자 및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24년 9월 ‘국가 AI 전략 정책방향’을 발표하며 4대 핵심 프로젝트로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대폭 확충, ▲민간 부문 AI 투자 대폭 확대, ▲국가 AX(AI Transformation) 전면화, ▲AI 안전, 안보, 글로벌 리더십 확보를 제시하였다. 또한 ‘AI 혁신 3법(AI 기본법, 데이터기본법, 인공지능균형발전법)’ 중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2025년 1월 제정되어 하위 법령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은 글로벌 AI 규범과 국제표준 형성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제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2024년 5월 영국과 공동으로 제2차 AI 안정성 정상회의인 ‘AI 서울 서밋’을 개최하여 AI의 3대 핵심 가치로 안전, 혁신, 포용을 제시하였으며, 2025년 12월 ‘국제 AI 표준 서밋’을 개최하여 안전하고 공정한 AI 활용을 위한 4대 AI 표준화 방향을 제시하고 AI 혜택을 모든 국가와 국민이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반영한 ‘AI 표준 서울 선언’을 발표하였다. 미-중 간 AI 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포용적인 AI 의제를 주도함으로써 중립적 선도국으로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25년 12월 2일, 국제기구와 우리 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첫 대규모 AI 표준 컨퍼런스 ‘2025 국제 AI 표준 서밋’이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이를 위해 무엇보다 AI 기술 발전의 핵심인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경쟁의 심화 속에서 한국은 반도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의 AI 반도체 기술(HBM 등)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방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며,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시도에 대해서는 우리의 반도체 핵심기술 보호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 한국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AI 인재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AI 반도체 및 데이터 센터 등 핵심 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AI 기술 발전을 위한 기반을 탄탄하게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은 정부가 목표로 한 ‘글로벌 AI 3대 강국’을 향한 첫걸음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