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에 비친 북한의 도시 변화,
리질리언스의 빛
지난 15년 동안 필자는 북·중 국경을 따라 수차례 현장을 답사해 왔다. 2,334km에 달하는 국경 너머에는 도시와 농촌, 산촌과 광산, 공장 지대가 뒤섞인 다층적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 그곳에서 눈에 띈 변화 중 하나가 낮의 색 변화와 밤의 빛 변화, 다시 말해 ‘색 혁명’과 ‘빛 혁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미적 변화를 넘어 에너지 체계와 생존 방식의 재편을 의미한다. 중국으로부터 공급되는 태양광 설비는 북한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며, 이제는 가정용 조명에서 산업 현장의 자립형 전력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위성이 포착한 북한의 빛 분포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확산이 어떻게 도시의 형상과 주민 생존 방식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그 변화가 단순히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제재와 단절 속에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리질리언스의 징후임을 조명하고자 한다.
국경에서 시작된 빛의 변화, 북한 도시의 새로운 얼굴
최근 북·중 접경지역을 찾으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밤 풍경이 펼쳐진다. 신의주에서 만포, 혜산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국경도시는 이제 어둠에 잠겨 있지 않다. 압록강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이 강변을 따라 이어지고 그 빛은 도시 외곽까지 스며든다. 놀랍게도 그 불빛은 태양광 패널이 달린 독립형 조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농촌 산간 마을에도 볼 수 있다.
2025년 9월 혜산시 중심 야경과 아파트 불빛들 ⓒ중국 현지인 제공
국경의 또 다른 풍경, 에어컨이 달린 창문들
북·중 국경도시의 또 다른 변화는 건물 외벽의 모습에서 포착된다. 신의주나 혜산 시내 주택과 상가 건물에는 이제 태양광 패널뿐 아니라 에어컨 실외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15년 전만 해도 필자가 같은 지역의 중국 측 도시를 방문했을 때는 여름에도 선풍기조차 필요 없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한때 ‘정전의 상징’으로 불리던 북한 도시에 실외기들이 빽빽이 늘어서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활수준 향상을 넘어, 전력 공급 안정화와 에너지 자립의 조짐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며, 주민들의 생활 방식과 도시의 미적 감각까지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의주시 아파트 2025년 가을
혜산시 아파트 2025년 가을
국경 지역 북한 도시의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중국 현지인 제공 사진에 의해 저자 작성
공장 지붕 위의 태양, 에너지 전략의 전환 징후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또 하나의 변화는 태양광 패널의 설치 대상이 가정집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 지역의 북한 도시에서는 공장 주변의 차량 이동과 인적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위성 자료 분석 결과, 이는 단순한 산업 재가동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확충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아파트 옥상뿐 아니라 병원, 관공서, 군부대, 놀이시설, 호텔, 식당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 및 공공건물 지붕에도 태양광 패널이 광범위하게 설치된 모습이 관찰되었다.
특히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가정용 소형 패널 중심에서 공장·기업소 단위의 대형 태양광 설비로 중심이 이동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경공업 생산시설의 전력 보조 수준을 넘어, 자립형 에너지 공급 체계 구축과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을 위한 전략적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태양광을 단순한 ‘보조 자원’이 아닌 ‘산업 기반 인프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평양교육도서인쇄 공장(2024.3)
평양제약공장(2024.3)
평양화장품공장(2024.3)
평양 진달래손전화기 공장(2024.3)
평양 고부가가치·에너지 절약형 산업 공장 태양광판 설치 ⓒGoogle Earth 위성 자료에 의해 저자 작성
도시 변화의 동력, 리질리언스와 태양광의 결합
이상 북한의 도시들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변화를 겪고 있다. 한때 어둠으로 덮여 있던 국경의 밤은 이제 작은 불빛들로 점점 물들고 있다. 그 빛은 주민들 스스로가 설치한 태양광 패널과 축전지의 불빛, 즉 생존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흔적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이 불빛이 단지 생활의 편의를 넘어선다. 가정의 지붕에서 시작된 태양광이 공장과 상점, 병원과 놀이시설로 번지며 도시의 전력 구조와 생산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도시는 중앙 집중형 체계에서 분산형·자립형 에너지 구조로 이동하는 과도기적 형태를 보인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주민과 기업소의 리질리언스, 즉 제재와 부족 속에서도 스스로 대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힘이다. 그 힘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밝히고 그 도시가 다시 사회의 에너지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이 작은 불빛들이 모여 만든 이 새로운 도시의 풍경은 북한이 어둠을 견디며 만들어낸 자립의 궤적이자, 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신호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