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카이치 정권과 동북아 국제 정세
보수 회귀의 일본, 격변하는 동북아 질서의 분기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등장으로 일본은 새 보수정권의 길로 들어섰다. 첫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협력과 신뢰의 복원을 강조했지만, 일본 내부에서는 헌법개정과 방위력 강화 등 보수적 기조가 뚜렷하다. 경제 회복과 안보 강화를 내세운 다카이치 내각의 행보는 동북아 정세에 미묘한 긴장을 불러오고 있으며, 이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한일관계와 지역 안보 균형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지난 10월 30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첫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이재명-다카이치 한일 정상회담
10월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국-아세안 정상회담, 10월 28일 도쿄 미일 정상회담, 10월 30일 경주 미중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10월 31일 중일 정상회담과 경주 APEC 회의 등, 그야말로 정상외교 슈퍼위크가 이어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세계의 관심은 한국에 집중되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간 첫 한일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통상환경 속에서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강화해가자고 하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이 서로 중요한 이웃이며, 한일, 한·미·일 간 공조가 더욱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셔틀외교를 지속하고,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자는 데에 공감하였다. 미국발 글로벌 통상 리스크, 심화되는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분쟁,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는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양국 정상이 실용외교에 기초한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월 24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안정적인 국제 질서가 세력균형의 변화와 지정학적 경쟁이 심해지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일동맹은 일본 외교 안보의 기축이며, 정상 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한·미·일, 필리핀, 호주와 안보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발언하였다. 아베 전 총리가 추진해 온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동지국,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로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비판하였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고자 북일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의 한국 친화적인 외교 제스쳐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치적 행보를 보면 야스쿠니 신사참배,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시마네현 독도의 날에 장관급 파견 주장 등 국내외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일본 우파의 오랜 목표인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한 방위력 증강, 북·중·러 간 연대에 대응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이나 영국 MI6에 해당하는 국가정보국 창설, 경제안보 등을 이유로 스파이방지법 제정, 외국인 규제와 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6년간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해 온 공명당은 평화정당으로 아베정권 우경화의 방파제 역할을 해 왔지만, 강경 우파 다카이치 총리는 공명당 대신 우파 정당인 일본유신회를 선택하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 24일
첫 국회 연설에서 “중요한 이웃 나라인
한국과는 정상 간 대화를 통해 관계 강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다카이치 내각의 정치경제
자민당 내 리버럴 세력인 기시다와 이시바 총리 4년 집권은 일본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매년 3%가 넘는 인플레와 심각한 물가난, 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고 한국보다 적은 평균 임금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정치자금 미기재로 특권을 누린 정치가들과 통일교에 연루된 자민당 의원들에 대해 단호한 처분은 없었다. 외국인 증가와 이민 현상에 대한 반감과 반발,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불편과 불만, 선진국에 비해 낮은 부동산 가격과 엔저 현상으로 늘어난 외국인 주택구입은 반이민 정서와 배외주의를 부추겨 왔다.
연립정권인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자립하는 일본’을 목표로 헌법개정과 안보 3문서 개정, 스파이 방지법 제정, 방위력 증강과 국회의원 정수 삭감, 오사카 부수도(副首都) 추진과 사회보장 개혁 등에 합의하였다. 참정당은 헌법개정과 방위력 증강은 물론, 일본인 우선주의와 외국인 규제를 강조하는 극우정당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우경화 작업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정권은 ‘결단과 전진의 내각’을 기치로 본격적인 경제정책과 방위력 증강에 집중하고 있다.
다카이치 정권의 경제정책은 뉴아베노믹스 또는 사나에노믹스로 불리우고 있다. ‘책임 있는’ 적극재정으로 추가 국채를 발행하고,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하여 자금 순환을 늘리고, 엔저와 저금리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AI와 반도체 등 14개 전략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도쿄 닛케이 지수는 적극재정 추진에 힘입어 10월 말 현재 역대 최고치인 52,000선을 돌파하였다. 대미관세 15%가 결정되면서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출 확대를 기대하게 되었지만, 일본의 5,500억 달러 대미투자에 따른 압박, 엔저 효과를 갖춘 자동차, 반도체, 조선업 분야에서 일본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내각의 외교 안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일동맹 강화와 방위력 증강, 안보 3문서 개정, 중일 갈등과 대만 문제, 북일 간 교섭 재개 여부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안보 3문서 개정, 무기 수출 규제폐지, 핵추진 잠수함 건조, 국가정보국 창설 등은 한국과 동북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린 시진핑-다카이치 중일 정상회담은 상호 간 불신과 긴장을 여실히 드러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역사 인식을 강조하고 대만이 중국 국내문제라는 기존의 중일 간 약속을 상기시켰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대만과 파트너십을 중시해 온 다카이치 총리는 동중국해 분쟁, 중국의 희토류 규제, 중국 내 일본인 안전보호, 신장위구르 인권탄압까지 지적하면서 중일 갈등을 예고하였다.
다카이치 내각이 추진하는 스파이방지법과 외국인 규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2002년부터 검토해 온 스파이방지법은 중국, 북한 등의 적성국가를 상정한 정보와 기술 안보를 법률로 제정하는 것이다. 국가 중요기밀 획득과 누설, 자위대 관련 군사정보를 수집하거나, AI와 반도체 등 첨단 기술정보를 누출하는 산업스파이에 대응하는 것이다. 경제, 안보, 기술 분야 정보규제가 강화되면서 2024년 4월 라인 사태와 같은 한일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 외국인 규제는 재일교포의 생활 안전과 한국인의 일본관광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정권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보장 재검토, 외국인 학교와 유학생 지원 축소, 일본 국적 취득 요건 강화, 오버투어리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면밀히 주목하면서 필요시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오른쪽)가 10월 31일
APEC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X
2024년 4월, 네이버 라인 사태는 네이버가 지분을 보유한 라인(LINE) 메신저의
대량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일본 총무성이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압박하면서
촉발됐다. ⓒ셔터스톡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
10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다카이치 총리간 첫 만남은 관세 협상과 방위비 증액에 집중되었다. 미일 양국은 5,500억 달러의 미일 관세협정서에 서명하였다. 미국 내 AI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구축은 물론, 조선업과 희토류 개발에 투자하기로 하였다. 한국은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시켰고, 일본보다 더욱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다. 3,500억 달러 투자에 매년 200억 달러 상한이며 재조정이 가능하다. 일본에 없는 ‘상업적 합리성’ 문구를 추가하고,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은 것은 매우 놀라운 성과였다.
일본은 2022년 3월 제정된 안보 3문서(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를 2년 앞당겨 개정하고, 2025년 회계연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를 현재 1.8%에서 2%로 올리기로 하였다. 2027년 일본 방위비는 84조 원으로 올해 한국 국방비 61조 원보다 훨씬 많아진다. 한국도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3.5%로 추진하고자 하지만, 우선 당장 미국의 국방비 증액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아울러 한일 양국의 국방비 증액과 군사력 증강은 동북아 지역 내 군비경쟁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얻어낸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위한 엄청난 승부수이지만, 일본도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연립정권인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장거리 잠항과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한 적기지 공격 능력을 갖춘, 사실상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합의하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대신도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검토하겠다고 공식화시켰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 대북 견제용 핵잠수함 건조는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크게 뒤흔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평화헌법과 전수방위 원칙에 위반된다. 방위예산 부담이 크고, 야당 반대가 예상되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카이치 내각이 추진하는 방위장비 수출규제 철폐는 사실상 무기 수출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다. 일본은 평화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지키고 분쟁지역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내각은 방위장비 수출을 규제해 온 구난, 수송, 경계, 감시, 소해 등 5개 분야의 용도 제한을 철폐하기로 하였다. 일본의 무기 수출 규제가 완전히 풀리면, 한국은 방산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5년 8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호주해군이 발주한 차세대 전술 구축함 11척, 65억 달러 사업 수주에 성공하였다. 한일 양국 간 방산시장을 둘러싼 기술력, 생산관리, 고객 중심 솔루션 등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유럽과 중동, 아태 지역에서 크게 활약해 온 K-방산이 새로운 경쟁자인 일본을 맞아야 할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다카이치 내각의 방위장비 수출규제 철폐는 일본의 무기 수출을 전면 허용해
K-방산과의 글로벌 경쟁 격화를 예고한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