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얼 스토리
북한 외교관은
왜 험난한
탈북길에 나섰나
가면을 벗긴다
김중근지음/300쪽/기파랑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표로 함경남도 금호지구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2001년부터 2년간 상주했던 김중근 전 인도대사가 북한의 실상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어느 나라나 외교관은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특히 외부세계와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북한에서 해외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선망의 대상이다. 평양 최고 엘리트 북한 외교관들이 1990년대부터 탈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외교관과 해외주재원, 유학생 등 10명 내외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열악한 처우와 한계에 다다른 북한 내부 사정으로 볼 때 앞으로도 외교관 탈북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장성택 동지가 어제 처형되었다 하오. 오늘 새벽 나의 평양 비밀 연락책이 전해주었소. 당 간부와 군 수뇌부가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당했다 해.
배신하면 너희들도 이렇게 된다는 경고인 거지. 처형에 사용된 무기는 고사기관총이라고 해. 그의 시신은 형체도 없이 찢겨나갔고 남은 잔해는 화염방사기로 불태워져 재만 남았다 하더군.”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최현준 대사의 말에 강철민 서기관은 숨이 턱 막혔다. 최 대사와 철민의 부친이 비밀리에 장성택을 보좌해왔기 때문에 둘의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철민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평양에 두고 온 아내 미옥과 딸 영애, 아들 영석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어지는 최 대사의 말은 더 믿기 어려웠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을 즉각 시행하기로 했소. 나는 공화국을 탈출할 겁니다.’ 철민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아 우뚝 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날 오후 세 명의 낯선 사내들이 대사관에 들이닥쳤다. 철민은 온종일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아내와 자식을 남겨둔 채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이며 탈출 후의 삶은 어찌 될 것인가. 주중 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벤츠를 탔다. 최 대사는 단골 약국 앞에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인슐린 주사약 몇 개를 사오라고 시켰다. 기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대사는 운전대를 잡았다.
“나를 믿고 동행합시다. 나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지금 내 나이가 칠십에 가깝고 건강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아. 당신과 내가 지금까지는 각별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는 공동운명체가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아비의 죄를 자식이 뒤집어써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업보야. 당신 자식들은 외할아버지가 보위사령관이니 그래도 큰 화는 면할 거야.”
탈출 대장정이 시작됐다. 라오스 국경으로 가려면 쿤밍 시에서 계속 남서쪽으로 나아가야 했다. 최 대사와 철민, 같이 출발한 에이미도 말이 없었다. 에이미는 최 대사가 삼합회와 마약 거래를 연결해온 인물이다. 그사이 발칵 뒤집힌 북한의 요청으로 베이징 공안국 왕 총경이 이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차를 버리고 육로를 택했다. 수색조에 발각될 수 있어 밀림으로 접어들었다.
가이드의 정글 칼 공격에 최 대사가 쓰러졌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가이드와 운전수가 변심한 것이다. 에이미가 쏜 총에 둘이 맞았다. 철민과 에이미는 나무 잔가지와 낙엽을 세 구의 시신 위에 두껍게 덮었다. 대사의 지갑에서 은행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부터 챙겼다. 그리고 노트북과 컴퓨터를 꺼냈다. 그 안에 비자금을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라오스 비엔티엔 시내에 들어서자 철민은 운전수에게 미국 대사관으로 가자고 했다. 대로에 접어들자 멀리서 성조기가 펄럭였다. 철민과 에이미도 보안 검색대 앞의 긴 줄에 합류했다. 순서가 되자 철민은 보안요원에게 “노스 코리아 외교관입니다. 망명을 요청합니다”라고 했다. 철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관 여권과 각종 신분증을, 에이미는 다른 증명서를 제출하면서 신원을 밝혔다. 신문관들은 탈출 과정과 망명 동기를 물었다.
델타 항공기는 위싱턴D.C. 근교에 위치한 덜레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그들을 태운 검은색 차량은 66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CIA는 그들에게 랭글리 본부 내 안가를 임시 거처로 제공했다. 한 달 만에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손에 사회보장카드와 미국 여권이 주어졌다. 로스앤젤레스 교외 산타모니카 해변의 작은 단독 가옥에 거처를 마련했다.
둘 사이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탄 자정 미사에 참석한 에이미와 집으로 가는 도중 철민은 뒤따라오는 오렌지 빛 헤드라이트가 성가셨다.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고 직감했다. 액셀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 급커브를 돌면서 오른쪽 산비탈을 치고 말았고 쫓아오던 검정색 차가 옆구리를 박았다. 차는 해안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에이미가 그렇게 떠났다. 아직 꽃망울도 피워보지 못한 아기와 함께.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막식 장면을 보았는데, 나의 장인인 장수일 보위사령관이 아직 건재하더군요. 아직 나의 처와 자식들이 무사하다는 의미지요. 나는 북한으로 갈 겁니다. 가서 처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겁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는 거짓말이 얼마든지 정당화되고 합리화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가족을 괴물사회에 방치해둘 수는 없습니다.
철민은 마침내 입북 준비에 착수했다. 드림 NK 측에 부탁을 해 북한 식량 지원 ‘월드비전’ 구호팀의 일원으로 포함된 것이다. 북한 당국이 도착 일을 4월 14일로 지정했다. 다음 날 김일성 탄생일 행사를 고려한 것으로 보였다.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췄다. 베이징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 온몸에 엄습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당 깃발을 새겨 넣은 초상 휘장을 가슴에 단 안내원들이 대표단을 맞았다.
저녁에 외출을 나가 산책을 하다 어둠 속에서 같은 요원 광복에게 은밀하게 대포폰을 받았다. 철민은 감시원을 따돌리고 아내 미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석 어머니, 저 먼 친척 장백천입니다.” 흠짓 놀란 미옥은 4년 만의 통화에서였지만 단숨에 남편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내일 저녁 9시경 만수대 원수님 동상 앞에서 물건으로 전하려고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마침내 만남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통일의 길목에 벽돌 한 장 놓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현장의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은 다큐같이 생생하다.
글 · 윤 융 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