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외전략과 한반도
美 ‘경제적 민족주의’ ‘동맹 재조정’ 전망
경제적 압박·북핵 대응전략 마련 시급
새롭게 출범한 트럼프 2기 정부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대외 개입 자제를 중심으로 한 외교 전략을 펼치며, 중국 견제와 동맹 재조정에 집중할 전망이다. 이는 한미 동맹의 부담 증가, 북핵 문제 해결 방식 변화, 대중 전략에서의 역할 변화 등을 통해 한국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제시할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과 전략을 모색해본다.
2024년 미국 대선은 미국 외교 대전략을 둘러싼 두 가지 비전이 충돌한 중요한 선거였다. 미국 유권자들은 인플레이션, 일자리, 이민 등 국내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트럼프 후보와 해리스 후보 간 외교 전략의 차이는 상당히 두드러졌다.
트럼프-바이든-트럼프로 이어지는 외교정책 흐름 속에서 공통점도 일부 존재하지만, 차이점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라는 이미 경험한 대통령을 다시 맞이하며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정책 변화에 긴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대외 개입 자제하나
임기 종료를 앞둔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2기 정부의 공통점은 미국 경제를 되살리려는 경제적 민족주의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중산층 회복과 제조업 부흥을 외교정책의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했다. 냉전 직후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추진하며 시장 논리에 기반한 세계경제 통합,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에 유리한 금융 부문과 기타 경제 부문에 국력을 집중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전략 경쟁 이후 좀 더 안전하고 자족적인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제조업은 국제적 경쟁력을 상당히 상실했고, 핵심 자원과 광물에서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다.
바이든 정부는 정치적, 안보적 요인으로 교란될 수 있는 공급망의 안정성과 탄력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국 산업 부흥과 부분적 보호무역주의를 병행했다. 이러한 대외 정책은 트럼프 1기 행정부와 공통점이 있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이 전략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산업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관세 중심의 대외 경제정책을 주장하며, 보편 관세 10%, 중국에 대한 60% 고율 관세, 그리고 멕시코·캐나다 등에 대해 25% 관세를 제시한 바 있다. 국무부 장관 지명자인 마이클 루비오 상원의원 또한 중국의 강력한 산업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안보 차원에서 미국의 국가 주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경제적 민족주의는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공통점이지만, 이를 외교 전략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중요한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바이든 정부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결합해 자국의 경제적 안보를 중시하면서도 기존 동맹 및 전략적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국제주의적 리더십을 외교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삼았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대외 개입 자제라는 리더십 전략을 병행할 예정이다.
미국의 외교 대전략은 매우 넓은 스펙트럼에서 전개되어왔다. 한쪽에는 국제 문제에 상시적으로 개입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국의 강력한 힘을 토대로 필요 이상의 개입을 자제하며,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에만 집중하는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또는 자제(restraint)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외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트럼프 2기 외교 전략이 기존의 자유주의적 패권을 완전히 포기하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패권 전략은 국력과 국내 여론에 따라 변동을 겪어왔다. 국력이 약화되거나 대외 개입에 대한 국민적 반대가 강할 경우, 미국은 대외 개입을 줄이고 동맹국들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했다. 반면, 경제력이 회복되고 대외 개입에 여유가 생길 때에는 다시 국제주의적 접근으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왔기에, 그의 정책이 미국 패권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는 여전히 보수적 국제주의를 주장하며, 국력 회복과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될 경우 전통적 리더십 전략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대중 경제적·군사적 견제 지속할 것
트럼프 2기 정부의 전략이 미국의 국력 회복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높은 관세 정책과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은 다른 국가들의 반발과 보복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고, 미국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속 가능한지, 효과적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중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국으로 정의했는데, 이러한 시각은 이미 트럼프 1기 정부에서부터 나타났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식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소다자 협력체를 마련했다. 또한, 점증하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항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군사 현대화 전략도 추진했는데, 이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관세와 같은 경제적 수단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것이 확실시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적 압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책 기조와는 별개로, 국방부와 미군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중시하고 있어 이러한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대한 안보 공약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양안 관계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남중국해와 동남아 지역에 대한 접근 역시 바이든 정부보다 훨씬 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경우, 트럼프 정부는 새로운 대응 방식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중국을 최우선 견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정책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22일 22일 경기 여주시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K1A2 전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
동맹과 국익 사이, 한국 외교 시험대
트럼프 정부가 한반도에 제기하는 도전은 매우 크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민족주의는 동맹국에 대한 부담금 증가 압박과 경제 부문에서의 공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 중이며, 이미 환율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추진했던 전례를 볼 때,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어느 정도 수위로 진행될지 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사업 등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어,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 방위비 분담 협정이 2030년까지 타결된 상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북한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전략을 채택할지가 핵심적인 변수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소위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을 추구하며, 현재의 국제 분쟁을 조속히 해결하고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중동에서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주요 과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핵 문제 역시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 유지에 따른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타협을 통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 본토 안보를 우선시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장기적인 외교정책 방향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대중 전략에서 한미 동맹은 중요한 전략적 수단이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며, 한미 동맹의 역할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한국은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트럼프 정부의 대외 경제 전략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혹은 언제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단임으로 4년 동안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해당 기간 동안의 대응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을 염두에 둔 전략적 예측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국제질서와 이에 부합하는 정책적 비전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전재성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