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평화통일 Vol 2132025.01·02

국제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지구적 안보 불안의 개막

흔들리는 국제 규범과 안보 질서
‘우크라이나 휴전’ 타이완 해협 흔드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맞으며 국제 질서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러시아의 영토 점령과 미국의 휴전 협상 제안은 국제 규범을 뒤흔들며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번 전쟁의 종결 방식에 따라 유럽을 넘어 동아시아까지 안보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논의되는 다양한 휴전 조건과 종전 구상, 그리고 그 파급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본다.


지난해 11월 19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맞이했다. 유엔에 따르면 10월 현재 우크라이나는 동부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동남부의 자포리아와 헤르손을 포함해 자국 영토의 약 20%를 러시아에 점령당한 상태다. 또한 인접 국가로 피난을 떠난 난민 670만 명을 포함해 자국 인구의 약 25%를 잃었다. 이는 13만 ㎢의 영토와 약 1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그리스 규모의 국가가 이 전쟁에서 소멸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전쟁의 조기 종식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월 20일 출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전쟁을 “절대 시작돼서는 안 됐고,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광기를 멈추기 위한 협상을 원하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휴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0일이 지났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루한스크 지역 리시찬스크 건물. (뉴시스)
“영토 양보할게, 나토 가입시켜달라”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휴전 협상의 내용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휴전 협정 논의에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그 전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가 점령 중인 영토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2045년까지의 세계 군사 및 정치 상황을 예측한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동부 점령 지역(공식 합병), 중부 친(親)러시아 지역(러시아 군대 주둔), 그리고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가 관여하는 서부 분쟁 지역으로 나누는 해체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완전히 부인하는 제안으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세력권에 확실히 편입시키는 한편, 미국과 유럽이 나토 동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 군이 크림반도 등 일부 영토를 탈환할 힘이 부족하다. 이것이 진실”이라며 개전 이후 처음으로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아, 헤르손 등 영토 회복 없이 휴전 협상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외교적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고 인정하며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영토 회복 전에라도 휴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멈추고 싶다면, 우리 통제 아래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나토의 보호 아래 둬야 한다”며 “빨리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우크라이나 점령지는 외교적 방법으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쟁의 과열 국면을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휴전 조건은 영토 할양의 대가로 나토 가입을 이루겠다는 구상으로, 이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2014년 1차 민스크 협정, 2015년 2차 민스크 협정 등에서 드러난 과거의 안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외교정책 고문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20%를 점유한 현재 전선을 그대로 동결하고, 우크라이나에는 나토 가입 노력을 유예하도록 압박하는 방안을 인수위원회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상은 우크라이나가 최소 20년 동안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억제할 무기 지원을 지속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현재 전선을 고정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1290km 길이의 비무장지대를 조성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무장지대를 감시할 평화유지 병력에는 미국 병력이나 유엔 병력이 배제되고, 유럽 국가 병력만 배치하도록 제안됐다. J. D. 밴스 부통령 당선자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양보해야 하며, 미국은 무한정 백지수표를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미국 우선주의 외교 노선을 강화했다. 이러한 미국의 휴전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사실상 반대한다는 점에서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병력의 파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 노선과도 부합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2월 7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휴전 조건 ‘국제법 규정’ 완전히 붕괴
미국과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휴전 조건 및 종전 구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할양은 세 나라 모두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토 회복을 휴전의 전제 조건에서 철회한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외교적으로 큰 양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 정치의 차원에서 군사적 역관계를 수용한 결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어쨌든 세 나라가 제시한 휴전 조건은 이미 유엔 헌장 제2조 4항에 명시된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 관계에 있어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거나,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무력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가야 한다”는 국제법 규정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이는 21세기의 국제 관계가 전쟁을 불법화했던 20세기를 벗어나 전쟁을 국가의 정당한 정책 수단으로 인정했던 19세기의 국제 관계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영토 할양을 조건으로 나토 가입을 이루려는 시도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침공은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를 방지하고, 친러시아화를 도모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됐다. 크림반도 병합, 돈바스 전쟁,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의 세력권 유지라는 대전략의 일환이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타협 가능한 의제가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미국 병력을 사활적 이익이 걸리지 않은 지역에 투사하지 않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만약 미국의 휴전 조건 및 종전 구상대로 전쟁이 종결된다면, 미국의 동맹국과 제휴국들은 워싱턴의 안보 공약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 및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규모 국가들의 안보 불안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미국의 제안대로 영토 할양과 나토 가입 유예를 조건으로 휴전이 성립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증이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안전을 보증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프랑스와 독일이 안전을 보증한 1차 및 2차 민스크 협정 모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토 가입 유예는 안보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종전 구상은 미국 병력의 우크라이나 주둔을 명시적으로 부인하며, 유엔 평화유지군의 주둔 또한 배제하고 있다. 이는 휴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최근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로 임명된 카야 칼라스가 휴전 성립 시 유럽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토 가입 보장을 강조했지만, 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단일하지 않다. 발트 3국과 폴란드 등 동유럽 소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같은 서유럽 대국들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하며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증은 과거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동중국해에서 해상 합동훈련 중인 중국과 러시아 해군. 미국과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매년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AP=뉴시스)
휴전 협상 결과 따라 국제 질서 대전환
넷째,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방식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는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타이완 문제 해결 과정에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 양상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종전 협상에서 영토 할양이 기정사실화되고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회피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중국은 타이완 침공 구상에서 더욱 대담한 군사 전략을 기획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법을 위반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 중국의 모험주의적 군사 작전의 여지도 커질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중국의 타이완 정복과 관련한 외교적 손익 계산을 더욱 낙관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종전은 타이완해협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높이며, 중국의 개전 의지를 강화할 가능성을 키운다.

요컨대 미국의 제안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다면, 유럽과 동아시아 모두에서 안보 불안이 증폭될 것이다. 주권과 영토 보전을 중시하던 국제 규범이 흔들리고,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억제하려던 미국의 안보 대전략이 재편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의 결과는 국제 질서의 대전환기에 지구적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김 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