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12023.07.

임진각 망향대에서 바라다본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 글·김건희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걸어서 155마일

⑥ 경기도 파주

임진강 따라, 철책선 따라
통일의 노둣돌을 놓다

통통한 길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경기도 파주 문발동 입구 앞 카페 ‘쩜오책방’. 넓은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하나둘 앉은 사람들이 커피와 쿠키를 먹는 풍경은 여느 카페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카페 한쪽 구석의 아늑한 책장에는 특별한 책이 꽂혀 있다. 파주지역 작가모임인 문발작가협동조합과 파주시 중앙도서관이 협업을 통해 펴낸 책 ‘리비교와 장마루 사람들’이다. 단단하고 딱딱한 커버를 넘기자 6·25전쟁 당시 지역주민의 삶을 이어주던 다리 ‘리비교’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 당시 군인들이 리비교에 남긴 편지
리비교는 1953년 7월 4일 미 제1군단 사령관에 의해 임진강에 건설된 다리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임진강에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다리 11개를 세웠다. 정전협정 이후 모두 철거했으나 경기도 파주 파평면 장파리 인근 다리 1개만 남았다. 그 다리가 바로 리비교다. 리비교는 미군뿐 아니라 한국 군인, 피란민, 농민, 미군 클럽 종사자 등 수많은 이들이 이용했다. 파주시는 이 다리를 비무장지대(DMZ) 평화벨트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2016년 안전진단 결과 E등급(불량)이 나오자 2020년 봄 철거를 결정했다. 철거를 위해 상판을 걷어내자 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글씨의 정체는 군인들이 페인트로 쓴 낙서와 그리운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어요. ‘조국 통일’이라는 글씨가 그저 처연하게 느껴지더군요. 이때부터 문발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이 6·25전쟁 격전지와 미군 부대 기지촌, 민간인 학살터 등을 답사하고 리비교 주민들을 만나 전해들은 내용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문발작가협동조합을 이끄는 박인애 씨의 말이다. 박 씨는 파주 문발동에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출판인이자 작가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학생 논술 지도에 전념해온 그는 문발동으로 이사 오며 파주에 수많은 6·25전쟁 유적지와 전쟁 이야기가 있음에 놀랐다.

아이들과 후대에게 접경지역 파주에 깃든 전쟁과 분단 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2019년 12월 문발작가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첫 책은 ‘두루미 구출 작전’(2020).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모 세대와 분단 세상을 살아가는 2세대, 통일을 꿈꾸는 3세대가 함께 만든 역사동화다. 첫 책에 대한 반응이 뜨겁자 협동조합은 ‘리비교 가는 길’(2020), ‘소년과 늑대’(2020), ‘너도밤나무 아래 갈림길’(2021) 등 6·25전쟁 관련 사진집과 역사동화를 잇따라 발간했다.

문발작가협동조합과 파주시 중앙도서관이 협업을 통해 펴낸 6 ·25전쟁 관련 책들.

통일의 염원을 담은 리본들로 가득 찬 임진각 철조망.


현재 조합원은 10명 남짓. 문발동에 거주하며 전쟁과 평화에 관심을 가지고 협동조합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협동조합은 전쟁과 분단을 문학적 시선으로 재해석해 글을 쓰고 간담회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지역 내 평화통일 여론을 조성할 계획이다.

분단·접경 도시에서 평화·글로벌 도시로 변신
“책을 낸 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생생한 파주에 담긴 전쟁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됐고요. 그래서 파주에 대한 애틋함이 생겼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깃든 전쟁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평화를 지키는 게 중요한 일이란 걸 알려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오른다.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으로 향하는 자유로를 따라 행주대교에서 통일대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임진각이란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임진각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의 현장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반세기 이상 파주는 분단과 접경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그런데 32년 전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경기도가 임진각 건물 주변부지 9만5410㎡(약 2만8000평)에 대규모 안보 관광지 ‘임진각 국민관광지’를 세운 것이 계기다. 2015년엔 평화누리 부지까지 포함해 임진각 국민관광지 부지를 47만7894㎡(14만5000평)로 확대했다.

임진각 국민관광단지 입구로 들어서 도로를 달린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크고 작은 전시관과 체험 형태의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마치 테마파크에 들어선 느낌이다. 건물 너머로 임진강이 흐르고 병풍처럼 드리운 나무와 숲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임진각 국민관광단지가 들어선 후 분단과 접경의 이미지는 평화와 글로벌로 거듭났다. 경기관광공사 DMZ사업단 관계자는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자유로와 통일로 종단에 위치해 서울 서부지역과 고양시 등 수도권과 인접해 접근성이 매우 높아 연간 방문객이 200만 명 이상에 달한다”며 “군사분계선에서 7km 후방에 위치하고 민간인 통제구역선인 임진강과 인접해 외국인 방문객이 많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자유의 다리’에 걸린 애타는 사연들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이른 시각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외국인 관광객, 친구끼리 연인끼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옛 서울과 신의주를 잇던 기찻길 경의선이 끊어진 지점 가운데서 만나는, 전쟁과 평화가 풍기는 묘한 매력은 지나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드르륵~ 드륵륵~.’ 공중에서 울리는 미묘한 소리에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위로 곤돌라가 지나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2020년 개통한 파주임진각평화곤돌라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오가는 곤돌라다. 임진각을 출발해 민통선 내 군내면 백연리 상부정류장까지 850m를 오간다.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임진강 너머 북녘을 굽어보며 병풍처럼 드리운 저 먼 곳을 바라다봤다. 이 곤돌라가 이어져 개성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날이 언제쯤일까.

발걸음은 1953년 건설된 자유의 다리로 향했다. 길이 83m, 너비 4.5∼7m, 높이 8m로 목조와 철조를 혼합해 만들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에 한국군 포로 1만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다리라고 해서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70대 아들, 6·25전쟁 참전 용사를 할아버지로 둔 미국 소년…. 자유의 다리로 가는 길에는 애타는 사연들이 걸려 있다.

6 ·25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경의선 증기기관차 잔해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임진각평화곤돌라에 올라타면 임진강을 지나 민간인 통제구역에 도착한다.


임진각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개성까지 불과 21.1㎞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독개다리. 이 다리는 본래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와 장단면 노상리를 잇는 경의선 상행선 철교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돼 교각 5개만 남았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일부가 임시로 복구돼 국군 포로 1만2733명이 이곳을 거쳐 귀환했다. 1998년 통일대교 개통 전까지 민간인 통제구역 안쪽과 판문점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2016년 경기도가 옛 임진강 철교 독개다리의 교각을 활용해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를 만들었다. 이 스카이워크는 분단의 역사적 상징물인 독개다리를 길이 105m, 폭 5m 규모로 복원한 것이다. 남아 있는 교각을 활용해 6·25전쟁 이전 철교의 형태를 재현하고 방문객들이 걸어볼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는 투명 유리를 설치해 교각에 남아 있는 6·25전쟁 당시 총탄 자국과 임진강의 생태환경도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는 이곳이 70년 전 총성이 울리는 전쟁의 한복판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근엔 6·25전쟁 당시 경의선 장단역에서 폭격을 맞고 탈선해 멈춰 섰던 증기기관차도 복원돼 전시되고 있다. 총탄 자국 가득한 낡은 기차는 6·25전쟁 당시 참혹함을 잘 보여준다.

통일을 향한 하나의 노둣돌
이제는 잠시 쉬어갈 차례. ‘바람의 언덕’에 오르니 온통 바람개비 천지다. 빨갛고 파랗고 하얀 바람개비 3000여 개가 저마다 색을 뽐내며 동시에 힘차게 돌아갔다. 세계지도를 표현한 바람개비 사이로, 때마침 소풍 나온 아이들이 웃음을 흩날리며 하늘에 떠 있는 뭉개구름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김언경 작가의 작품 ‘바람의 언덕’은 한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그리고 있다. 작품 중심에는 노란색 바람개비로 한반도를 표현했다.

바람개비 옆에는 대나무와 철근으로 만든 최평곤 작가의 작품 ‘통일 부르기’가 서 있다. 북녘을 바라보는 듯한 형상 4개로 이뤄진 설치미술이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를 생각나게 한다. 푸르디푸른 언덕을 내려오며 북녘을 바라봤다. 어느덧 해는 뉘엿 서쪽으로 기울었다. ‘통일 부르기’가 통일을 향한 걸음 앞에 하나의 노둣돌이 되기를 바란다던 작가의 바람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함께 둘러보면 좋은 파주 여행지


지하 벙커 전시관 BEAT 131
6·25전쟁 당시 군사시설로 사용한 지하 벙커를 원형 그대로 살려 만든 전시관이다. 오르내리는 계단을 포함해 총 면적이 120㎡(약 36평) 규모.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대전차지뢰의 외형이 놓여 있다. 좀 더 내려가면 평평한 전시 공간이 나온다. 여기엔 전시 지휘부인 상황실을 재현한 공간이 입구 쪽에 있고 DMZ에 위치한 북한 기정동마을 영상과 DMZ 영상,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영상, 6·25전쟁 당시 군용물품으로 사용한 총기, 수통, 철모, 무전기 등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는 1000원.
임진각
1972년 12월 23일 실향민들을 위해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세워진 건물이다. ‘임진강의 누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상 1층에는 편의점 및 기념품점, 2층에는 식당, 3층에는 카페가 있다. 옥상에는 민간인 통제구역 마을인 해마루촌과 DMZ,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를 볼 수 있는 하늘마루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임진각은 1971년 4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방 시찰 때 1사단에서 사설 매점을 운영하는 장소에 임진각을 설립하라고 지시한 것을 계기로 건축됐다.
망배단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들이 매년 추석 때 임시로 제단을 설치해 북녘에 두고 온 부모와 조상에 대한 경모(敬慕) 행사를 거행했다. 상설 제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정부가 공사비 5억 원을 들여 1985년 9월 임진각에 지금의 망배단을 설치했다. 망배탑은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과 재이북부조(在以北父祖·북쪽의 부모와 조상)에 대한 명복을 비는 의미를 담았다. 망배탑을 둘러싼 7개 화강암 병풍은 이북5도 및 미수복 경기, 강원의 고적과 풍물, 산천 등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