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12023.07.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1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특집


윤석열 정부 통일 · 대북정책 추진과제 제안

국민·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통일준비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동아시아
‘자유 · 평화 ·번영 공동체’ 구축 필요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다.
이를 위한 다섯 번째 중점 추진과제인 ‘국민·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통일준비’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봤다.

6월 첫째 주,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신통일미래구상’ 해외 공론화를 위해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다녀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이뤄진 미국 방문이라 다소 긴장이 됐다. 미국 국무부와 유엔 정무평화구축국(DPPA)을 비롯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스팀슨센터,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및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 주요 연구소와 싱크탱크 조직을 집중 방문했다.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관계자와도 만나 “한국 정부가 새로운 통일구상을 준비하고 있으니 제언이나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2045년이 되면 분단 100년이 되며 미래 세대에게 분단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언급하자 대부분 “분단의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됐느냐”며 놀라는 눈치였다.

5박 7일간 15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서 북한 및 북핵 문제에 대한 워싱턴 국제정치계의 관심이 트럼프 행정부 당시보다 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보다는 대만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새로운 통일 주체 ‘청년세대’의 등장
올해로 한반도 분단은 78년을 맞았다. 각기 다른 체제로 남북한이 출범한 지는 75년째가 된다. 그간 우리는 심각한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분단으로부터 야기된 숱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대립과 갈등, 미움과 배제가 한반도 구성원의 삶과 마음속에 드리워진 시간이었다. 새로운 통일미래구상은 다양한 청자(聽者)를 포함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대상은 국민과 국제사회인데, 주목할 것은 지금 이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우리나라는 새로운 통일 주체의 등장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청년세대의 등장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발표된 1994년 이후 출생한 인구가 차치하는 비율은 약 28%. 그런데 청년층으로 볼 수 있는 15~34세 인구비율은 29%,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Z세대(Z Generation)’를 합친 MZ세대(18~43세)의 인구비율은 34%나 된다.

먼저 청년세대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일의 기본철학과 인식, 과정, 미래상 등과 일치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전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은 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7·7선언 체제의 기본 원칙과 민족공동체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1988년 7·7선언 체제가 시작되고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발표된 1994년 이후 우리나라 청년세대는 주목할 만한 인식 변화를 보인다. 첫째, 청년세대는 이전 중·장년 및 노년 세대와 비교해 통일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1994년에는 20대의 88.8%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0대 이상에서도 98.5%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거의 모든 세대가 통일은 필요하다고 강하게 공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20대는 39.1%에 그쳤고, 60대 이상에서도 66.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모든 세대에 걸쳐 감소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단순히 MZ세대에서만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랜 시간 분단이 지속되고 남북한 각각의 정권과 지도자 교체로 이질화가 심화하면서 우리 국민이 느끼는 한민족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개념의 심리적 거리감이 커진 탓이다.

셋째, 모든 세대에서 통일보다 평화적 분단 상황을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보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대 청년세대의 경우 18.4%가 한반도 문제에 무관심하고, 55.7%는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민족이어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은 2007년 50.6%에서 2022년 42.3%로 감소했고, 반면 남북 간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007년 19.2%에서 2022년 31.6%로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로 전쟁 위협이 증가했고, 국민들은 안보 관점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7·7선언 체제 이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논의되던 시기는 우리나라가 민주화에 성공하고 처음으로 문민정부가 수립돼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평화로운 여야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기반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정치 발전까지 성공한 보기 드문 사례가 됐다. 19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비전과 방향에 대한 논의 또한 민주주의적이고 참여적인 접근을 통해 진행됐는데 당시 여야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논의와 협상을 거쳐 이루어졌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완성을 위해 정부와 언론, 국회와 정당, 학계, 종교계, 교육계, 시민단체 등이 공청회, 간담회, 세미나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논의 과정에 참여했다.

우리나라 국내 정치와 통일 환경 변화
그러나 경제와 정치 발전, 민족공동체 통일 논의를 모두 이뤄낸 우리나라의 국내 정치 상황은 2023년 현재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민족공동체라는 울타리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정권 교체가 정치 발전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최근 국내 정치는 이념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양극화(polarization)가 심화했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대화와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여야 정권 교체 과정에서 오히려 경쟁은 과도해지고 상대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며 7·7선언 체제 수립 당시 정치 엘리트들이 보여준 소통의 지도력은 사라졌다. 정치 엘리트의 정치적 편향과 양극화는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르고 정파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남남갈등의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이 지속 가능한 동력을 지니려면 국민적 숙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할 필요가 있다. 특정 정파나 행정부의 이익이나 선호가 반영된 것이 아닌, 국민 다수가 원하는 통일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다양한 의견들을 조화시키고 수렴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은 4월 13일 고체연료를 사용한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형(화성-18형)’을 발사해 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통일은 진영과 정파의 이익을 초월한 국가의 대업이다. 정부는 국회에 정중히 요청해야 하고 국회도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한 초당적 대북정책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초당적 논의기구 ‘통일미래여의도포럼’(가칭)의 구성을 제안해본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주도할 일이지만, 세계의 도움 없이는 이뤄낼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야기된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은 세계가 더 좋아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등 관계국가 사이에 협력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통일미래 실현 과정은 곧 한반도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평화 완성의 과정이며, 한반도가 허브로 기능함으로써 번영의 시대를 열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한반도 통일
첫째,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 전이라도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사이 관계 정상화를 적극 지지할 의사가 있다. 7·7선언을 통해 우리가 제기했으나 탈냉전기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교차승인’을 완성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 완료를 촉진하고, 한반도에 평화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이 평화의 토대 위에 관계국 간 건설적 협력이 이뤄지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세계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도전과제에 함께 대응하고, 동아시아 평화·번영 공동체 구현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역내 국가들에 제안한다. 기후변화, 감염병, 재난재해, 자원부족 등 핵심 과제들을 중심으로 과학, 기술, 혁신, 연대라는 기조 아래 협력의 경험을 축적해나가야 한다. 나아가 동아시아의 과다한 군비경쟁을 축소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MZ세대(2030) 공무원과의 간담회와 오찬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당면하여 ‘2050 동아시아 비전포럼’의 창립을 제안한다. 이 포럼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협력포럼’을 확대·발전시키는 형태로,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평화와 안보 분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미래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장기과제로는 △북한의 대미·대일관계 정상화 수립 지원 △동아시아 자유·평화·번영의 공동체 구현 등이다. 요컨대, 교차승인의 추진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보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또한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한 공동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동아시아 에너지·물류 허브화, 동아시아 지하자원·수자원 연계구조 형성, 회복력 있는 지속 가능 생활환경 조성 협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우리 역량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만큼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우리 힘은 커졌고 세계도 변했으므로, 통일미래에 대한 상상력도 달라져야 한다. 상호 개방과 연대를 추구하는 열린 시대에 한반도만이 냉전시대 문법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미래를 철조망에 가두어둘 이유가 없다. 선배들이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눈부신 성취를 바탕으로,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새로운 통일미래의 모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한다면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한반도의 더 나은 미래’는 세계의 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켜온 ‘가치’와 대한민국이 이뤄낸 ‘성취’, 그것은 곧 7600만 우리 민족과 이웃 국가의 지지 속에 세계시민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생명력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긴 호흡을 갖고 변치 않는 단단한 가치에 기초하되, 닥쳐올 많은 변화와 기회들에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통일미래의 큰 줄기(大綱)’를 세워야 할 때다.

남 성 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18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