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12023.07.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월 28일 “당의 뜻을 받들어 질 좋은 경공업 제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자”고 촉구했다. 사진은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북한의 최근 소비품 실태와 함의

김정은 집권 이후 소비품 증산 뚜렷
지역 간 ·소득수준별 빈부격차 드러나나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만성적인 소비품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어난 각종 전시회들이 가장 상징적인 변화다. 그 배경과 이면을 들여다봤다.

올해 4월 북한은 ‘봄철녀(여)성옷전시회-2023’을 개최했다. 2022년 10월에 처음 열렸던 ‘여성옷전시회-2022’에 ‘봄철’이라는 계절을 더한 걸 보면 올해부터는 봄과 가을에 번갈아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연령별, 직업별 특성과 체형을 고려하면서도 발전 추세에 맞게 세련된 디자인들의 옷들이 출품됐으며 밝은 색상의 ‘달린 옷(원피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회는 북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제품에 대한 평가를 받아 소비자들의 호응 수준을 파악할 수 있고, 제품의 거래 및 계약도 이뤄졌기 때문에 최근 북한의 여성 의류의 추세와 생산 능력 등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에는 초기에 의식주와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필수소비품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점차 경제가 성장해 구성원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소비품들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생존을 넘어 소비 패턴도 다변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소비품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선호를 반영해 새로운 제품들을 출시하고 구매능력을 고려해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들을 판매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도 생존과 필요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서 자신의 다양한 욕망과 선호를 표출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소비품들의 생산 및 소비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만성화된 소비품 부족
북한은 주민들의 소비품 수요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정권 수립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필수적인 소비품들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지향했기 때문에 소비품 생산을 담당하는 경공업 분야에서 기본적인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경공업보다 생산 능력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중공업을 먼저 발전시키는 경제 발전 전략을 채택했다. 이후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군사력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국방공업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소비품을 생산하는 경공업은 후순위로 밀렸다.

북한은 또 주민들의 소비품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각 지방에 소비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건설해 지역 내 주민들에게 기초적인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하도록 했다. 1980년대에는 ‘8·3인민소비품창조운동’을 전개하면서 유휴자재와 각종 폐자재 및 부산물을 활용해 소비품들을 생산하도록 독려했다. 특히 ‘8·3인민소비품’의 경우 국가의 계획에 속하지 않는 생산물로서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적(私的)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만으로는 만성적인 소비품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고, 품질을 개선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1990년대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소비품의 생산을 담당했던 지방의 공장들은 가동 자체가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중국산 제품들을 구입해 생활했다.

2월 14일부터 평양 제1백화점에서 열린 ‘평양시 인민소비품전시회’에서 북한 주민들이 방한용 겨울옷을 살펴보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집권 이후 이러한 소비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다시 한번 강화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에 열린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2013년에 개최된 전국경공업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소비품의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를 도입하면서 각 기업과 공장들에 ‘실제적 경영권’을 부여해 기업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해야 하는 동기를 갖도록 했다. 각 기업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정한 제품들을 제외하고는 기업 차원에서 생산할 제품의 품목과 생산량, 품질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됐고 판매처 선정과 가격 설정 또한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금 또한 스스로 조달하도록 해, 기업과 공장은 여전히 국가 소유이지만 경영에 관련한 각종 권한은 기업과 공장이 갖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기업의 경영 환경을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중앙의 계획기구가 세운 계획에 따라 제품을 생산해 계획 지표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제품을 생산해 이윤을 확보하고 기업의 운영 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은 유사한 소비품들을 생산하는 다른 기업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또한 주민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선호하는 제품, 주민들이 원하는 품질을 갖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소비품 증산 정책과 효과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한의 소비품 생산량은 증가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각종 전시회에 출품된 소비품의 품목과 종류를 살펴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각종 인민소비품전시회에서는 출품한 제품에 대한 평가에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제품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근 북한은 소비품과 관련한 각종 전시회들을 전국 및 도 단위로 개최해 기업들로 하여금 소비품의 증산과 주민들의 선호가 반영되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개최하는 대표적인 전시회로 ‘전국인민소비품전시회’와 ‘전국 8월3일 인민소비품전시회’를 들 수 있다. 북한 매체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부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매년 개최된 전시회에 출품한 제품들의 종류와 가지 수는 증가세를 보였다. 전시회에 출품한 제품들 중에는 평가에 따라 상품화되지 못하는 제품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추세를 볼 때 과거에 비해 각종 소비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개선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2016년을 전후로 북한 시장 내에 북한산(産) 제품들이 증가했다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인터뷰 내용과도 부합한다.

4월 2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봄철전국상품전시회-2023’. 공업품, 식료품, 가정용품, 전자제품 등 3660여 종의 다양한 상품들이 전시됐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과 2021년에는 전국적인 전시회는 개최하지 않았다. 대신 각 도별로 전시회들을 개최하기 시작해 2022년부터는 기존에 개최해왔던 ‘평양제1백화점 상품전시회’, 봄과 가을에 열리는 ‘전국신발전시회’를 재개했고, ‘전국상품전시회’와 ‘녀성옷전시회’를 새롭게 시작했다. 다만, ‘전국상품전시회’의 경우 코로나19로 중단된 ‘전국인민소비품전시회’를 개칭한 행사일 수 있다.

이와 같이 김정은 집권 이후 소비품의 생산을 늘리는 데에는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북한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주민생활의 실제적인 개선을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제기했다. 즉 식, 의, 주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각종 소비품들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체제 안정을 위해 국방 부문을 우선 발전시킬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해 주민들의 삶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해왔던 것에서 탈피해 국방 부문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으니 이제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부문들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소비품 증산의 이면 ‘주민 생활수준 격차 심화’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품 생산 효과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있을까? 북한의 소비품들은 국영상점과 시장, 백화점과 온라인 전자상점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소득 수준에 따라 소비할 수 있는 제품들의 종류와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경우에는 다양해지고 있는 각종 제품들을 소비할 수 있으나, 농촌 지역 등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 또한 지역 간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각 지방에 위치한 공장과 기업소들에 생산능력을 향상시켜 지역 내 주민들의 소비품 수요를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방 차원에서 자력으로 생산능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각종 설비와 부품을 조달하는 데 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과거에 수입에 의존해왔던 소비품들의 생산능력을 향상시키면서 품목도 다양화됐고 품질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소비품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재료와 설비, 부품들 중에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봉쇄된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비품 생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교역이 재개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주민들의 소득수준에 따라 소비품 구매에 차이가 발생·심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기업들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구매력 있는 주민들의 수요를 우선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역 간, 주민들 간의 소비 수준의 격차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 은 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