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12023.07.

5월 치러진 튀르키예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환호하고 있는 정의개발당(AKP) 지지자들. (AP/뉴시스)

국제

튀르키예 에르도안 재집권 성공의 의미와 향후 전망

러시아와 강력한 유대관계 지속 전망 속
인플레이션 해소 위해 ‘저금리 정책’ 변화 암시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 의미와 향후 국제사회 및 튀르키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해봤다.

지난 5월 28일 치러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정의개발당(AKP) 대표이자 현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후보가 52.14%를 득표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야권 단일후보였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Kemal Kilicdaroglu) 후보는 47.86%를 얻어 4.28%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당초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고물가와 리라화 가치 하락, 대지진 등으로 집권 여당과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5월 11일 여론조사기관 콘다(Konda)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클르츠다로을루에 대한 지지율이 49.3%로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43.7%보다 높았다. 다른 여론조사기관 메트로폴(Metropoll)의 조사에서도 클르츠다로을루 후보 지지율 49.1%,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율 46.9% 등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위기를 느낀 에르도안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가스 무료 제공, 농민 보호정책 등 민생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야권 단일후보 지지 세력에 쿠르드(Kurd)계 정당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활용해 보수층의 민족주의 감성을 자극했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세계 최대 유랑민족으로, 튀르키예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어 보수층의 반감이 크다.

결국 에르도안 대통령과 AKP의 재집권이 가능했던 건 안정적 국정 운영을 선호하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이후 튀르키예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물가·환율 안정이 향후 튀르키예 경제 향방 결정
최근 몇 년간 튀르키예 경제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22년 11월 3일 튀르키예 통계청(TUIK)은 10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85.5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91%를 기록했던 1998년 6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2022년 11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84.39%를 기록한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그 이후 다소 하향 안정화됐으나 올해 5월에도 39.59%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적극적인 물가 안정책으로 올해 인플레이션이 안정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소매업체 가격 동결과 최저임금 인상 등 고물가로 심화된 민심 이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튀르키예 재무부 장관은 “인플레이션이 둔화 추세에 진입했으며, 국민들이 이미 일상에서 인플레이션 완화를 체감하고 있고 연간 인플레이션율도 2023년 중반기 내 40%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2023년에 인플레이션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며, 인플레이션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올해 1월 최저임금 55% 인상을 발표했으며, 필요에 따라 연중 최저임금을 다시 인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화폐인 리라화의 가치는 2022년에만 달러 대비 42.5% 하락했고, 최근까지도 그 하락세는 이어졌다. 2022년 1월 3일 미 달러당 13.13리라였던 환율은 12월 30일 18.71리라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올해 1월 2일 18.72리라에서 시작한 달러당 환율은 6월 8일 현재 23.3리라까지 상승했다.

이처럼 급격한 리라화 가치 하락은 튀르키예의 고물가와 달러 강세의 영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나, 최근 리라화 가치 하락은 에르도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전망으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리라화 환율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다소 안정세를 보였으나,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이 유력해지면서 그리고 재집권이 결정되면서 리라화 환율이 급상승한 것은 향후 저금리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이 반영된 결과다.

중동·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 주력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외교 부문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우선 러시아와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지속하면서 중동 지역은 물론 흑해 연안 및 중앙아시아 등에서 영향력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렵연합(EU) 등 서방과의 관계 역시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는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승인과 미국산 신형 전투기 구입을 조율하고, EU와는 시리아 난민 캠프, EU 가입 등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는 등 지금까지 튀르키예가 보여준 지정학적 외교 노선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가 예상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내수 진작과 투자 촉진 등을 통한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저금리 기조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제 변동성이 높아지리라는 것은 최근 리라화 환율은 물론 튀르키예 주가지수 추이에서도 확인됐다.

올해 2월 대규모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남부 사만다그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사이를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승리 연설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국가의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경제 관료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혀 소폭의 정책적 변화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새로 임명된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경제 전문가 메흐메트 심섹(Mehmet Simsek) 재무부 장관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전통적 경제 정책을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 기반의 금융가 게이 에르칸(Gaye Erkan)을 중앙은행 총재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기대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임 경제 관료와 중앙은행 총재에 얼마나 많은 독립성을 보장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튀르키예 경제가 물가 상승 압력, 리라화 가치 하락 등으로 저금리 기조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세계경제 환경, 원자재 가격, 국내 경제 상황 등에 따라 정책 기조의 변동 가능성도 상존한다. 재정수지와 정부부채 측면에서는 튀르키예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정부부채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경상수지 측면에서는 고질적인 적자 누적이 외채와 환율 부문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국과 유럽 소비시장 ‘회랑’ 역할
튀르키예는 고성장 경제, 시장의 성장잠재력, 인구 구조 등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흥시장이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고, 거대 내수시장을 보유해 시장잠재력이 막대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양질의 노동인력이 풍부하다. 우리 기업의 EU 내 생산거점인 중동부유럽 국가가 인구 감소와 서유럽으로의 고급 인력 유출이 심각한 점을 고려할 때 EU와의 관세동맹으로 유럽시장의 생산거점이 될 수 있는 튀르키예의 이 같은 풍부한 노동력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튀르키예의 대규모 건설, 유통, 금융 기업이 아프리카와 중동은 물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거 진출해 있고, 인근 에너지 생산국에서 최대 에너지 소비시장인 유럽으로 향하는 주요 에너지 회랑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사드아바드궁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양국 간 강력한 유대관계는 지속될 전망이다. (AP/뉴시스)

다만 거시경제 측면에서 펀더멘털의 취약성에 자주 노출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튀르키예는 젊은 인구구조와 노동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 대외수지 불균형 심화를 감수하면서 내수 중심의 고성장 경제개발정책을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과도한 경상수지적자 누적, 대외의존도 심화 및 고물가 등으로 개도국 화폐 가운데 환율 불안정성이 가장 높은 통화가 바로 리라화다. 이와 함께 튀르키예가 최근 들어 미국, EU 등 서방과 대립 및 갈등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외적인 요인에 튀르키예 거시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이에 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철 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