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12023.07.

지난해 북한 3대혁명전시관에서 진행된 ‘여성옷전시회-2022’. 북한 노동신문은 “나라의 피복공업 발전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AP=뉴시스)

평화통일 창

북한 ‘여성옷전시회 2022~23’ 통해 본 풍경 셋

‘다종화 ·다양화 · 다색화’된 디자인
北 경공업과 지방산업 육성 성과로 이어질까

북한은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2주간 처음으로 ‘녀성(여성)옷전시회-2022’를 열었다. 이른바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의 업적을 전시하는 3대혁명전시관에서 대규모로 진행했다. 북한이 왜 갑자기 이런 대규모 옷 전시회를 연 걸까? 북한은 전시회 개최 이유에 대해 “옷차림 문화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처음으로 진행되는 여성옷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300여 종에 1300여 점을 준비했다”(대성무역지도국 부원 최은아)거나 “몇 달 전부터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해 300여 종에 3000여 점의 제품을 출품했다”(진성합작회사 부원 김은영)는 참가자들의 북한방송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전시한 옷 종류와 제품의 수가 상당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전시장에 붙은 ‘경공업혁명’이라는 구호도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이번 전시회의 일차적 목적은 인민생활과 밀접한 경공업 분야의 성과를 과시하고, 내수와 해외 판매를 촉진하는 데 있는 듯하다. 또 주조(북한 주재) 라오스 대사 부인과 주조 수리아대사관 직원 등과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무역회사와 합작회사의 제품을 대량으로 전시하면서 전시회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대외 홍보에도 힘쓰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풍경 하나, 여성옷과 디자인 산업
이번 전시회 포인트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게, 새롭고 독특하게, 다양하게’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미감과 정서’는 인민 생활과 관련한 정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패션을 비롯해서 헤어디자인, 장신구, 화장, 언어생활의 기준이 사회주의 미감과 민족적 정서에 맞아야 한다. 찢어진 옷, 깊이 파인 옷차림, 염색한 머리, 장발, 스모키 화장이나 물광 화장, 진한 립스틱을 바르는 것, 오빠나 남친 같은 말을 사용한 것은 사회주의 미감에 맞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통제한다.

같은 미감이라도 ‘사회주의 미감’과 ‘현대적 미감’의 뉘앙스가 또 다르다. 현대적 미감은 상대적으로 ‘세련’된 것에 중점을 둔 표현이다. 이번 전시회 포인트 중 하나가 세련된 디자인이다. 디자인 산업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이후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분야 중 하나다. 북한의 디자인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인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달라진 사회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제품 향상을 강조한 결과가 어느 정도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구호는 ‘다종화·다양화·다색화’다. 표준화된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명분은 인민생활이다. 날로 눈이 높아지는 인민들의 요구에 맞춘 수준 높은 제품을 생산하라는 것. 우선 추진한 분야는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 제품이다.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이후 디자인의 변화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담배, 의류, 식품, 화장품 분야에서 확연하게 달라졌다. 맛은 차치하고 포장 디자인을 보면 다른 나라 디자인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향상됐다. 한국 제품이나 중국 제품에서 본 듯한 모방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북한에서는 ‘디자인’이라는 말보다는 ‘산업미술’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공식적으로 디자인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우리식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점차 일상으로 녹아드는 중이다.

최근 북한 디자인이 이전보다 한층 세련된 데에는 정책 역량을 투입하고, 기업 간의 경쟁을 유도한 효과도 있다. 전시와 사무를 겸한 ‘국가산업미술중심’ 정책에 따라 디자인 기관을 한곳에 모으고, 올해 2월에는 송신·송화지구에 ‘평양시 산업미술전시장’을 신설했다. 또 2월 9일부터 3월 9일까지 한 달 동안 산업미술 분야의 성과를 과시하는 ‘평양시산업미술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여성옷전시회 역시 정책적으로 추진한 산업미술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풍경 둘, 여성옷과 지방공업
‘여성옷전시회-2023’은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4일까지 11일간 평양 보통강반(변) 야외전시장에서 지난해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열렸다. 어떤 기업들이 참여했을까? 앞서 언급한 무역회사와 합작회사뿐만 아니라 지방공장의 옷도 보였다. 전시회 소개영상에는 “지방산업공장의 옷인데 마음에 꼭 든다. 깨끗하고 입기에도 편하다”면서 지방공장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인터뷰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북한 평양 보통강반(변)에서 올해 4월 24일부터 열린 ‘봄철여성옷전시회-2023’은 지난해 전시회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다.
전시회장에 옷을 보러 온 북한 주민들의 모습.

북한은 평양과 다른 지방 간 차이가 상당하다. 평양은 혁명의 수도로서 본보기 도시로 개발한 지역이다. 지방과의 차이는 신분증으로도 확인된다. 평양시민이라는 시민증은 공민증을 가진 평양 이외의 공민에게는 부러움 그 자체다.

김정은 지방도시 육성사업은 이상적인 본보기 도시 건설과 농촌 주택지구 개량, 지방산업 육성으로 구체화됐다. 몇몇 지역은 시범도시로 지정해 개발했다. 대표적인 시범도시가 양덕과 삼지연이다. 산간 내륙에 위치한 온천지역인 양덕은 온천을 테마로 한 문화휴양지구로 재개발했고, 삼지연은 사계절 관광이 가능한 ‘사회주의 이상 도시’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여러 농촌지역의 주거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지방산업의 육성은 지방공장 설립으로 시작한다. ‘황금산, 황금벌, 황금해’를 내세우면서 지방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을 중심으로 한 공장을 세웠다. 지방에 배추공장을 세우고, 임산물을 활용한 과자공장, 어업을 원료로 한 수산식품 가공공장을 세웠다.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분야도 있다. 원산구두공장의 ‘매봉산’, 송도원식품회사의 ‘송도원’, 삼일포특산물가공공장의 ‘삼일포’,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의 ‘삼지연’ 등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이자 북한이 국제기구에 등록한 상표다.

기업 간의 경쟁도 유발할 수 있다. 국가에서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공급하던 방식에서, 생활용품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경쟁’을 표방하면서 자율성을 늘렸다. 시장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시장 친화적 방식으로 기업 경영의 인센티브도 늘렸다. 국가가 담당했던 생산의 일부를 합작 방식으로, 일종의 아웃소싱도 이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기회도 많아졌다. 생활용품 라인업도 다양해졌고, 차별화를 위한 전략과 디자인도 한층 세련돼졌다. 능력껏 자본을 끌어들이고, 제품을 개발해 판매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다.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새로 생겨난 합작회사도 제법 있다. 지방공장의 경우에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어렵게 개발한 제품을 소개할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여성옷전시회는 그동안 강조한 지방산업 육성의 성과를 선전하는 자리이자 지방공장의 제품을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풍경 셋, 여성옷과 ‘우리 국가제일주의’
여성옷 제품의 차별과 경쟁력의 기본은 디자인이다. 세련된 옷차림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구매자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 북한 체제 특성상 디자인 소재나 디자인의 방향이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여성옷전시회에서는 어떤 디자인들이 주목을 받았을까? 참가자들은 서로가 자신들의 디자인을 자랑삼아 뽐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우리 국가상징물들을 옷에 형상하는 데 힘을 넣었다”, “소나무를 그림으로 형상하고 장식물로 솔방울을 형상화했다”, “목란꽃을 장식물로 형상한 옷이다”, “버들잎과 을밀대를 그림으로 형상하고 치마기슭단은 우리 민족 특유의 단청 무늬를 형상했다”는 등 다양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전시회장에 옷을 보러 온 북한 주민들의 모습.

공통점은 하나같이 국가 상징과 민족문화유산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소나무는 북한의 10대 국가 상징의 하나인 국수(國樹)이고, 목란꽃 역시 국가 상징인 국화(國花)이다. 북한의 디자인은 국가 상징을 비롯해 민족의 식물이나 자연과 관련한 것이 대부분이다. 제품에서 민족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국가 상징을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것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표방한 이후 일관된 방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기를 활용한 디자인이다. 한반도와 북한 국기를 활용한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은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에 애국심을 드러내는 실천적 행위가 됐다.

소나무를 활용한 디자인으로는 소나무 가전제품과 최근에 급부상한 ‘소나무 책가방’이 있다. 평양가방공장에서 생산하는 소나무 책가방은 소나무처럼 꿋꿋한 기상으로 잘 자라라는 의미로 김정은이 직접 명명하고 브랜드 디자인까지 지도했다고 선전하는 가방이다. 여성옷전시회에서도 소나무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거나 솔방울을 장식으로 단 옷들이 소개됐다. 옷에 국기를 있는 그대로 새기던 것과 달리 그 나름의 세련된 방식으로 민족과 애국을 담기도 했다.

버들잎과 을밀대는 민족문화유산을 활용한 디자인이다. 평양의 별칭 중에 하나가 류경(柳京)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의미이다. 버드나무 디자인은 평양국제공항 디자인에서도 확인된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계수나무’를 ‘버드나무와 참매’로 대체한 것이다.

북한의 디자인 수준과 브랜드 파워는 국제 경쟁력에서는 걸음마 수준이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고 디자인을 개선하면서 경쟁에 눈뜨고 있다. 여성옷전시회는 그렇게 달라진 디자인 수준을 선보이고, 지방 공업의 성과를 선보이며, 의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리로 마련한 것이다.

전 영 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북한연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