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정착 이야기
서울대 로스쿨 공익법률센터 임철 변호사
탈북민 위한 법률 도우미…
이로운 세상 만들어갑니다
임철(34) 변호사의 첫인상은 소년 같았다. 앳된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가 담겨 있어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금세 다른 사람이 됐다. 목소리가 커지고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하나하나 쟁점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모습에서 ‘승부사 기질’이 엿보였다. 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 2019년 설립한 공익법률센터 소속으로, 주로 북한이탈주민과 이주 외국인 권리 옹호 활동에 매진한다.
요즘 임 변호사가 관심을 기울이는 사건 유형은 탈북민 대상으로 한 불법 다단계 사기사건. 물건을 구입하면 투자 금액의 5배까지 수익금으로 돌려준다는 말에 속아 투자금을 건넸지만 수익금은커녕 계속 물건을 구매하라고 강요를 받은 사건이다. 알고 보니 피해자가 투자한 해당 업체는 다단계회사였고, 고수익 약속도 사기였다는 게 피해자들 주장이다.
法이 北 변화시킬 거란 생각에 법조인 결심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탈북민들은 대부분 국내에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탈북민들입니다. 피해자들은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지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해요. 빨리 돈을 모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오고 싶었던 터라 통장을 깨 수천만 원을 투자했지만 찾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는데 수익금을 얻기는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죗값을 치르도록 피해자들 소송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시로 탈북민들을 만난다. 현재 남한 내 탈북민 유산 상속 문제도 돕고 있다. 2012년 시행된 남북가족특례법에 따라 북한 주민이 한국 법원을 통해 친생자로 인정받으면 남한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남한 내 탈북민의 재산을 남한과 북한에 있는 자녀들에게 전해줘야 하는데, 남한에 있는 자녀가 북한에 있는 자녀를 찾아 연락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가 현재 진행 중인 탈북민 관련 소송만 5개. 프로젝트 연구와 세미나, 입법운동, 연대활동까지 포함하면 관여하는 업무는 10개가 넘는다. 임 변호사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법이 사회를 빠르고 안전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에 법률가 길을 택했다. 변호사가 돼 조금이나마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임철 변호사. 글·김건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그가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부터다. 임 변호사는 1997년 함경북도 새별(경원)을 빠져나와 중국, 몽골 등을 거쳐 2001년 1월 한국 땅을 밟았다. 함경북도 아오지에서 태어나 줄곧 자랐으니 북한 실정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1990년 수많은 아사자를 초래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가족을 부양할 짐을 걸머진 어머니가 하루 몇 시간 자지 못하고 계속 일하다 늑막염 진단을 받고 목숨을 잃은 원인이 다름 아닌 북한의 사회제도와 독재정치 때문임을 알게 된 것. 게다가 먹을 것이 없는 북한에서 변변한 제사도 치르지 못하고 사람이 죽어도 관을 만들 나무조차 없을 만큼 북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임 변호사는 “탈북 당시 나는 꼭 법률가가 돼 북한 사회에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고 독재정치를 종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임 변호사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독학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했지만 이걸로도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서울 양천구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새벽 1시 30분까지 자습했다. 지난하고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꿈이 있어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은 전공도 적성에 맞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점점 남한 학생과 자신의 실력 차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학은 사실을 분석하고 관련 법률을 해석해 적용하는 능력을 기본으로 하는 해석학문이라 언어 이해는 기초 소양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핵심 내용을 파악하려면 평소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책을 읽어 독해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임 변호사는 3년에 이르는 탈북 과정 동안 수시로 학업이 중단돼 여러 분야의 전문서적을 읽으며 독해력과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을 새가 없었다. 학습 기초가 부실하니 스터디를 꾸려도 남한 학생들보다 예·복습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 여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당시 법조인이 되려면 사법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줄 알고 대학교를 휴학하고 사법고시 준비에 매달렸다. 공부한 지 6개월쯤 흘렀을 때였다.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이 2000원뿐이었다. 사시 준비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열등감에 빠진 적도 여러 번이었어요. 그때마다 법 공부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며 목표의식을 재점검했습니다. 그 시절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묵묵히 실력자 뒤를 따라가자며 내 마음을 다독인 덕분에 학업 스트레스와 경제적 고민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죠.”
최선 다하는 이에게 ‘도움의 손길’ 건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8월 대학을 졸업했다.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됐으나 생활고를 겪었던 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로스쿨에도 장학제도가 많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목표를 사시 합격에서 로스쿨 입학으로 변경했다.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6개월 남짓. 법학적성시험(LEET)이 급선무였는데, 시중에 좋은 문제집이 많이 있어 그것을 가지고 혼자서 공부했다. 2014년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다.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임 변호사가 깨달은 것은 한국 사회는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는 사실이다.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그의 어깨를 짓누른 것은 학비 문제였다. 로스쿨은 한 학기 학비가 700만~1000만 원에 달한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학비 대다가 바닥나면 학자금 융자라도 받아야 할 형편이었다. 교재비, 식비, 교통비 등 생활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도저히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국내 장학재단과 기업, 학교의 경제적 지원으로 무사히 졸업증을 받았다. 등록금을 마련해주며 “포기하지 말고 뜻을 펼치라”고 격려한 것.
2018년 2월 26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위수위식 기념 사진. (임철변호사 제공)
“로스쿨에 들어와 보니 잘사는 사람도 있고 고학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 수혜 기회도 많고요. 또 이들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학업에 뜻을 가진 탈북민들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현실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삶에 한 번쯤 도전해보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로스쿨 수료 후 변호사시험에 연거푸 4번 낙방했을 때도 한국 사회의 후원과 선후배, 동료의 응원이 이어졌다. 현재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5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간절함이 더해져 5수 끝에 2022년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변호사 자격 취득 이후 국내 한 로펌에서 수습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로펌이었다. 당시 그에게는 변호사자격증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보상 심리’가 있었다고 한다. 배고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법률 전문가로서의 삶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면서도 가끔씩 ‘내가 꿈꾼 삶이 이런 거였나’ 회의가 들 무렵,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서울대 로스쿨이 설립한 공익법률센터에서 실무 능력과 공적 마인드를 갖춘 법조인을 선발한다는 것. 그때 전업 공익변호사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탈북민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로펌에서 편하게 일하다가 나이 들면 꿈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젊을 때 모험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진짜 돕고 싶은 의뢰인을 만날 수 있을 테니 탈북민 난민, 외국인 근로자 등을 위해 일하는 보통의 공익 전담 변호사 같은 삶을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공익법률센터행을 결심했죠.”
임 변호사는 요즘 탈북민의 실생활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인권활동가 못지않게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부채를 간신히 버텨오다 금리가 오르자 결국 개인회생, 파산을 결정한 탈북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자립에 힘을 쏟는 중이다. 자립 기반이 취약한 탈북민의 특성을 고려해 개인회생, 파산 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임 변호사 생각이다. 탈북민을 상대로 거래소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해 암호화폐(코인) 가격이 매일 오르내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수법으로 투자금을 탈취한 사기사건 피해자를 돕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변호사가 돼 조금이나마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임철 변호사는 “앞으로 탈북민 인권운동에 대한 법률적 자문에서부터 탈북민 관련 제도 개선, 입법 활동 등을 함께 벌여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지금은 탈북민 개인 구제 법률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앞으로 탈북민 인권운동에 대한 법률적 자문에서부터 탈북민 관련 제도 개선, 입법 활동 등을 함께 벌여나가겠다는 것이 임 변호사의 바람이다. 그는 세상에 수많은 사회적 쟁점이 있고,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 또한 수없이 많음에도 우리가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탈북민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몰라요. 탈북민이 남한 국민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건 곧 우리 자신을 위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