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02024.7·8

평화통일 칼럼

남북관계의 역사적 궤적과 현재

남북한 당국 간 회담은 2018년 12월 14일 개성에서 개최된 제2차 남북체육분과회담 이후 5년 6개월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북한은 남한 내 일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응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남한에 ‘오물 풍선’을 투하했고, 이에 대응해 남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여 만에 재개했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일부 구간에 장벽을 설치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사실상 분단됐고, 1948년 8월과 9월에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한에 정부가 각각 수립되며 분단이 확정됐다. 특히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3년여 동안 치열하게 이어지며 분단을 더욱 고착시켰다. 정치(이념)·군사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한 간 체제 경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국제적 ‘냉전(Cold War)’ 질서와 긴밀하게 연동됐으며, 1990년대 초반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승리로 냉전이 끝났음에도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이어지고 있다.

탈냉전은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이 사실상 남한의 승리로 귀결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북한은 탈냉전을 엄청난 위협으로 인식했으며,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북한의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군대를 모든 것에 앞세우는 선군정치’로 생존을 도모했다. 북한은 긴급한 인도적,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0년대 후반 남한이 내민 손길을 잡았고, 2000년 이뤄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간 교류·협력이 본격 추진됐다.

남북한 간의 본격적인 교류·협력이 사실상 종료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북한의 핵심 우방국인 동시에 남한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이 30년간의 개혁·개방을 통해 축적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에 지각변동을 야기할 수 있는 주요 행위자로 등장했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본격화됐다. 이렇게 시작된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를 예단하기 매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의 남북관계 역시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상하기 매우 어렵다. 김정은이 2023년 말 느닷없이 남한을 ‘전쟁 중인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뒤 북한이 매우 신속하게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남한과의 교류·협력 흔적을 지우는 동시에 대남정책을 관장했던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이른바 ‘대적지도국’으로 변경하고, 내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을 정리했다.

북한은 남한 대신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최근 돈독히 하며 김정은이 과거에 언급한 바 있는 이른바 ‘신냉전’ 구도를 최소한 한반도에서만큼은 북한이 주도해 만들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뤄 북한 비핵화뿐 아니라 남북한 간 교류·협력 재개 모두 꽤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정치·군사적 측면을 중심으로 남북한 간 체제 경쟁의 강도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장 철 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