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102024.7·8

북한 노동신문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태양절 112주년 기념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보도한 사진을 보면 ‘태양절’ 대신 ‘4.15’로 표기돼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北, 사라지는 ‘태양절’과 흔들리는 우상화

‘태양절’ ‘광명성절’ 언급
2020년 이후 급감
극심한 경제난에 우상화 통치 한계 시사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인 ‘태양절’과 ‘광명성절’은 북한 최대 명절로 꼽힌다. 매년 이날을 전후로 북한 사회는 한바탕 떠들썩해진다. 하지만 올해는 조용히 지나갔다. 반면 김정은은 자신을 ‘태양’으로 지칭하고 선대 지도자와 나란히 초상화를 내걸었다. ‘홀로서기’에 나선 것일까.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로,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3년 후인 1997년 김정일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북한은 문화예술축제와 군사 도발, 열병식 등 크고 작은 행사와 선전을 통해 그날을 기념해왔고, 2012년 들어선 김정은 체제에서도 지난해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보통 태양절을 전후해 5년 주기로 열병식과 같은 대규모 군 관련 행사를 진행하거나 2년 주기로 대형 문화예술축제인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등을 열어 김일성의 생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했다. 그런데 올해 태양절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대규모 행사가 예상되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대규모 군사 도발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2018년이나 2021년에도 조용히 지나갔기에 기념행사 축소 자체가 의외의 일은 아니다. 눈에 띄는 건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용어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언급이 줄었다. 대신 해당 월일을 표시한 ‘4.15’가 대대적으로 사용됐다. 이런 변화는 북한의 수령 우상화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정은 ‘김일성·김정일 신격화’로 결속 유도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선대 지도자와의 단절을 통한 김정은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김정은이 선대 지도자와의 단절을 통한 홀로서기를 추진하는 것일까?

먼저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 기념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로 기념하듯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 역시 ‘광명성절’로 지정하고 북한 최대 명절 중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는 ‘2월절’로 불리다가 사망 이후 후계자인 김정은에 의해 광명성절로 승격됐다. 동시에 ‘김일성·김정일주의’ 공포와 함께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영생의 지도자’로서 북한 내에서 신격화된 존재로 추앙됐다. 김정은은 신격화된 선대 지도자를 통해 유훈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집권 초기 수령 중심의 사회 결속을 유도했다.

그런데 태양절과 광명성절, 두 선대의 기념일에 대한 언급이 2020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약화된 추이를 보였다. 두 기념일에 대한 기념행사 역시 축소되는 추세다. (표 1, 2 참조)



사실 김정은은 2017부터 그간 생략했던 ‘령도자’나 ‘수령’과 같은 김일성에 대한 존칭어를 다시 부활시키며 선대 지도자 칭송을 통한 사상적 결집을 유도했다. 당시 북한은 핵 실험을 단행하며 ‘핵 무력 강국’을 선포하고, 국제사회의 비난 국면에 맞서 대내 체제 안정화를 위한 사상 교양 재정비에 나섰다. 그 중심에 정권 및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 강조 논리가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 82주년을 맞아 경제 부문에서의 성과를 독려했다. 사진은 만경대 남새농장.
(평양 노동신문=뉴스1)

경제난 심화로 정권 불신·회의감 가중
그런데 그 논리를 들여다보면 과거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최고지도자를 ‘무조건적’으로 우상화하는 내용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정권의 ‘수령의 위대성’ 관련 논의를 보면 김정일의 개인적 면모, 즉 성품, 신체 등을 비현실적으로 과대 포장하는 데에 집중한 반면, 김정은 정권의 관련 논의를 보면 김정은이 추진하는 ‘정책과 사업의 성과’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94년 1월 26일 자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일에 대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재적인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을 지니시고…”라고 칭송한 반면, 2022년 7월 4일 자 노동신문에서는 김정은에 대해 “위대한 김정은 시대는 우리 인민의 반만년의 숙원이 성취되는 영광의 시대”라며 숙원 사업에 대한 성과를 강조했다. 수령의 우상화 정책이 무조건적 신격화에서 통치 능력 찬양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를 해석하기 위해 현재 북한 사회에서 고조되는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 정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탈주민 대상 조사 결과 중에서 김정은이 집권한 2012~2022년 사이 북한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80% 이상의 응답자가 북한 경제 악화의 원인을 사회 내부 요인으로 판단했고, 그중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지적했다. 이를 통해 경제난 심화에 따른 김정은 정권과 정책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깊은 불신과 회의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 해외노동자들이 월급 불만으로 관리인을 살해하는 사례와 같은 직접적 불만 표출 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현재 북한 주민들이 사상 교양을 통한 정권 찬양, 특히 무조건적인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정권의 통치에 더 이상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김정은이 스스로를 ‘태양’으로 지칭하고 선대 지도자들과 나란히 자신의 초상화를 걸기 시작하거나 찬양 가요를 만드는 등의 행위를 보면, 김정은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정책들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80~2023년 노동신문을 중심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집권한 각각의 시기에 최고지도자에 대한 언급 빈도를 보면,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김정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최고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감소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고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우상화의 축소 동향이 언급 빈도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표 3 참조)

선대 지도자 우상화 축소 ‘김정은 홀로서기’?
따라서 김정은 정권에서 보이는 선대 최고지도자들에 대한 우상화 축소 움직임과 과거 정책의 폐지와 전환을 단순한 선대 지도자들과의 거리두기를 통한 김정은의 홀로서기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과거와 같은 사상 교양을 통한 정권 찬양, 특히 무조건적인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정책만으로 김정은 정권은 더 이상 안정적인 대주민 사회 통제 또는 정권 공고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 노동신문은 5월 22일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이 지난 21일 진행됐다”면서 “김정은 동지께서는 준공식에 참가하시고 준공 테이프를 끊었다”고 보도했다.
교실에 김정은 초상화가 선대 지도자와 함께 걸려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결과적으로 경제 악화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정책 수행 없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만을 통한 권력 공고화는 더 이상 북한 내에서도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 수 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